생명이 위급한 상황이 아니면 119는 출동하지 않는다. 식물인간인 아빠가 일주일 넘도록 고열에 시달리고 기침을 토해내도, 그들의 매뉴얼엔 '응급'이 아니었다. 뉴스에선 취객의 신고에도 온다던데, 우리 지역 119는 냉정하리만치 원칙적이었다. 결국 우리는 집안 사정에 과분한 사설 구급차를 불러야 했다.
아빠는 말랐지만 전신이 굳어있기 때문에 한 명이 옮길 수 없었다. 그래서 꼭 두 명이 와달라고 신신당부했다. 나와 동생은 학교를 가야 했고, 엄마만 혼자 남아 구급차를 기다리고 있었다.
사설 구급대원은 한참이 지나서야 '혼자' 도착했다. 오자마자 인상을 찌푸렸다. 입에는 계속해서 욕을 달고 있었다.
"아이씨. 이런 환자는 혼자서 못 데리고 가요."
"그래서 두 분이 와주셔야 한다고 전화로 말씀드렸는데...."
"둘이 오든 셋이 오든 안 된다니까요. 아, 무거워서 못 들어. 다른 데 연락하세요."
그는 돌아설 기세였다. 다른 업체에는 차가 없다는 걸 뻔히 알면서도 부리는 배짱이었다. 엄마는 그가 정말로 그냥 가버릴까 덜컥 겁이 났다. 남편은 숨이 넘어가는데, 이 사람이 가면 끝이었다.
그는 돈을 추가로 달라는 말은 직접적으로 하지 않았다. 하지만 계속해서 "힘들다", "못 한다", "이건 내 알 바 아니다"라며 돌아서려는 시늉을 했다. 엄마는 그의 짜증 섞인 말투와 눈빛에서 '돈을 내놓으라'는 무언의 협박을 읽어야만 했다.
결국 엄마는 비상금 10만 원을 꺼내 그의 손에 쥐여주며 사정했다.
"더 챙겨드릴 테니까, 제발 부탁드립니다. 사람 좀 불러주세요."
돈을 받아 든 그제야 그는 표정을 풀고 동료를 불렀다. 그러나, 아빠를 마치 '짐짝'을 던지듯 다루었다. 엄마는 그 모습을 보며 몸이 벌벌 떨렸다고 했다. 아픈 남편이 모욕당하는 걸 보면서도, 혹시나 그가 마음을 바꿀까 봐 항의 조차 하지 못한 자신이 너무도 비참해서.
이후 다시 그 사설 구급차를 부를 수밖에 없었을 때, 엄마는 그 구급대원만큼은 제외해 달라고 말했다. 그러나 또, 그가 왔다. 엄마는 단번에 그를 알아봤다. 사시나무 떨듯 떨면서도, 현관문을 가로막고 섰다.
"돌아가세요. 당신이 우리 남편을 다시 만지게 할 수 없어요."
엄마는 그날의 치욕을 하나도 잊지 않고 있었다. 새로운 구급대원이 오고 나서야 구급차는 출발할 수 있었다.
아빠가 생사를 오갈 때마다 우리는 사설 구급차를 불러야 했다. 그때마다 엄마는 미룰 수 있을 만큼 미루려고만 했다. 돈으로 존엄을 구걸해야 했던, 그 끔찍했던 기억을 다시 마주하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