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가 돌아가셨다

by 히읗

1년이 조금 지났다. 브런치에 아빠에 대한 글을 올리고 나서 불과 2개월 남짓이 지난 후 아빠가 돌아가셨다. 당시 나의 직감이 아빠에 대한 글을 써야 한다고 외쳤었나 보다.


그 2개월 동안 아빠의 상태가 좋지 않았고, 나는 글을 쓸 여력이 없었다. 동시에 회사에서는 타지역으로 발령 받아 서울까지 장거리 이사를 해야 했다. 그리고 일주일 간의 해외 출장까지 다녀온 바로 다음날, 새벽 세 시가 넘은 시각이었다.


'아빠가... 갔어....'


이 새벽에, 동생에게서 걸려온 전화가 무엇을 뜻하는지 받기 전부터 알고 있었다. 동생과 엄마의 울음소리를 들으며, 나는 두 사람을 안심시킨 뒤 전화를 끊었다. 온몸에 찬물을 끼얹은 것 같았다. 머리가 맑았으며, 몸이 부들부들 떨렸다. 눈물이 나지는 않았다. 나는 떨림을 진정시키려고 몸을 웅크린 채로 심호흡만 수십 번을 했다. 그리고 첫차로 출발하는 기차표를 예약하고, 시간에 맞추어 택시를 탔다. 무슨 생각으로 기차를 타고 내렸는지는 기억이 나질 않았다. 다만 장례식장으로 향하는 택시 안에서 들었던 기사님의 말은 분명히 기억이 난다.


"무슨 일이 있는지 모르겠지만, 힘내세요. 얼굴이 너무 안 좋네."


병원 앞에 내려달라고 해서 모르는 걸까. 장례식장에 내려달라고 했어야 했나. 나는 격려를 오지랖으로 받아들이며 병원 입구에서부터 장례식장까지 걸었다. 장례식장에는 엄마와 동생과, 고모와, 아빠의 오랜 친구가 와있었다. 아빠의 영정사진은 가장 최근에 찍은, 흰머리도 없는 젊은 40대의 모습이었다.


아빠를 처음 보는 조문객들은 아빠가 잘생겼다고 했다. 아빠를 잘 알고 지냈던 사람들은 아빠 같은 사람이 없다며 여리고 선한 사람이었다고 했다. 나는 그들에게서 아빠의 에피소드를 듣는 것이 좋아서 자꾸 물었다. 아마 이렇게 아빠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있는 것도 마지막이리라. 그것들을 기억해 두려고 애썼지만, 어쩐지 지금은 떠오르지 않는다.


화환은 우리 회사에서 온 것 하나와, 아빠의 친척에게서 온 것 하나. 단 두 개뿐. 바로 옆의 커다란 빈소를 사용한 할아버지에 비하면 너무도 초라했지만, 18년 동안 가족 외에는 아무와도 교류하지 않았으니 당연한 결과일지도 몰랐다.


돌아가시기 전 아빠는 호흡이 곤란했고, 목에 산소호흡기를 달고 있었다. 새벽에 그것이 빠지면서 사달이 났다고 했다. 잠에서 깨어 화장실을 갔다 왔을 때에야, 아빠가 숨을 쉬지 않는다는 것을 알았다고. 엄마와 동생은 잠에 빠져 그것을 몰랐다는 것에 자신들을 탓했다. 그러나, 곁에 있지 않았던 내 죄가 더 클지도 모른다.


내가 해외 출장을 가 있던 동안, 아빠는 내가 돌아오길 기다리고 기다렸던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돌아오자마자 그렇게 돌아가셨다고. 해외에서 오는 것보다 서울에서 오는 게 쉬울 것이니까. 그리고... 내가 입버릇처럼 서울에서 살고 싶다고 했는데... 그 소원을 이루자마자 돌아가신 것도 연관이 있지 않을까?


아빠는 떠났지만, 이상하게도 항상 아빠가 곁에 있다는 생각이 든다. 어디 여행이라도 훌쩍 떠났다가 갑자기 아무렇지 않은 듯 돌아올 것처럼. 그래서 마냥 슬프지는 않다. 아빠는 비로소 고통에서 벗어났고, 우리도 편안해졌다. 꽃이 가득한 관 속에서 잠을 자듯 눈을 감고 있던 모습과, 생전처럼 따뜻했던 유골함의 온기를 나는 가끔 떠올린다. 사랑해요, 아빠. 우리 다시 만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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