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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osyfive Apr 12. 2023

생각하는 의자

bgm - Ellie Goulding - How Long Will I Love You (어바웃 타임 OST)


(BGM을 플레이하시고 보시면 더 좋습니다^^)



(출발 전 D-3) 

여행에서 남는 건 사진이라고 하죠^^

나중에... 아주아주~~ 나중에

여행 사진을 보면서 이불킥 하고 싶지 않아서

오늘은 꽃단장하려고 시윤씨네 미용실에 왔습니다.


그리고 미국과 캐나다에서 처음 뵙는 분들에게도 멋지게 보이고 싶어서

머리 좀 꼬불꼬불 말고 왔습니다.


여행 전 꽃단장


언제나 그랬듯이 오늘도 열심히 졸다고 왔네요.

희한하게 미용실 의자에 앉으면 그렇게 잠이 솔솔 올 수가 없어요^^

오늘도 저의 무겁고 큰 머리를 요리조리 움직여주시며 힘들게 파마를 해주셨겠죠?

넘넘 죄송해요......

(제가 여행을 길게 가기 위해 매주 주말근무까지 하느라 정말 많이 피곤했어요...)


이렇게 반수면 상태로 파마도 예쁘게 했으니


다음으로 뭘 하면 좋을까? 하고 아내에게 물어보니 

한 동안 질리도록 햄버거와 느끼한 거 많이 먹을 테니 

한정식을 먹으러 가야 한다고 하네요.


최후의 만찬은 아니겠지만, 

여행 중 가장 생각날 것 같은 한정식이니 먹으러 가자. 

다행히 마지막 손님으로 골인.


평소에도 한정식을 먹으러 오는 집이었지만 오늘은 느낌이 좀 달랐다.

음식 하나하나 음미를 하면서, 내 머릿속에 맛에 대한 정보를 입력하는 것 같다.

나중에 한식이 너무 먹고 싶을 때, 오늘의 이 맛을 소환시키려는 듯이

천천히 하나하나 음미하게 되었다.


여행에서 생각날 맛


(출발 전 D-2) 

집에 택배 박스가 점점 쌓이고 있다.

어느새 집안 가득 여행용품이 담겨 있는 박스박스 

세상에 쓸모없는 건 하나도 없다는 듯이

내게 의미 있고 여행에 꼭 필요한 것만 산다고 샀는데

이제는 내가 봐도 정말 많아졌다^^


그래도 주문한 택배를 기다리는 맛이 있다면,

박스의 테이프를 뜯는 맛도 있지.

주문한 게 뭔지 알고 있었음에도 그 물건을 처음 만나는 그 순간 역시 구매자에게는 떨리는 순간이기도 하다.


씬(Scene) 1. 

(의학드라마 수술장면에서 의사가 매스를 들고 긴박한 순간에 bgm이 깔리듯)

박스박스 앞에서 긴장감이 맴돌았다. 

의사가 수술하듯 과감한 칼질이 시작됐다.   


층층이 박스박스가 하나씩 열릴 때마다 다양한 물건들이 쏟아져 나왔다.

박스는 하나씩 내동댕이 쳐지고 알맹이만 한 곳으로 모아질 때마다

이걸 왜 샀고 무엇에 사용될 물건인지 아내에게 간단 브리핑


그중에는 캐리어로 들어간 아이템도 있지만 

때론 몇몇은 아내의 불합격을 받아 다시 급하게 봉합해야 하기도 

나의 충동구매로 산 것들이 그러했고 

하나를 사도 제대로 된 걸 사야 한다는 아내의 예리한 눈을 통과하지 못한 아이템들은

참담하게 반품 또 반품...... 


얼른 환불하고 와!!!


씬(Scene) 2.

(의학 드라마에서 수술 전, 이번 수술에 대한 케이스 스터디를 하는 장면에서 각 파트별 교수들이 첨예하게 다투듯이)


승용 : 난 이거 이거는 꼭 가져가야 한다고 생각해!!

신애 : 그거는 이래저래 해서 안돼!!

승용 : 그건 자기가 몰라서 하는 소리야!!


이제 결정의 순간이 다가왔다.

필요하다고 넣다 보니 짐이 너무 많아졌기 때문이다

과감하게 칼을 데야할 시점이 온 것. 


아쉬움과 눈물겨움으로 하나씩 하나씩 주저하며 덜어내는 과정을 거쳐 

최종 6개의 짐이 선발되었다.


어느 서바이벌 보다 치열하고 엄격한 기준과 논쟁 끝에 선발된 짐들인 것이다.

우리는 의미와 당위성을 품은 6개의 짐꾸러미를 보면서 둘 다 뿌듯하게 생각했다. 


아차차...

우리가 만날 분들에게 드릴 선물도 잘 챙겼지?

고민 또 고민해서 우리가 픽한 선물들은


면역력을 높여줄 홍삼 액기스 두 종류 

국수 장인께서 만드신 거창한 국수 : 오방색 국수 

기운 펄펄 나게 해 줄 황태포


선물을 드려야 할 분들이 많아서 무게가 상당했지만

이 선물을 받으실 분들을 생각하고 그분들의 건강을 위해서라면

이 정도쯤이야  


이렇게 짐도 싸고, 선물도 준비하느라

많은 시간이 흐른 것 같다.


선물 꾸러미


근데 지금 몇 시?

새벽 2시


드디어 D-1 되었다. 



(출발 전 D-1) 

여행 출발 하루 전이지만, 오전 일찍 출발하는 비행기로 티켓팅했기에

공항 근처로 가기 위해서 오후 반차를 썼다.

오전 근무 동안 많은 것을 하려고 했지만, 왜 이리 시간이 후딱 지나가는지...


한 달간의 업무 공백을 메꾸기 위해 선, 후배들에게

내 업무를 인수인계하는데 자꾸 뭔가를 안 한 것 같다는 생각이 드는 것 뭐지?


이럴까 봐 일주일 전부터 

<체크리스트_회사편> 을 만들어놨는데 

그래도 왠지 모르게 찝찝함은 늘 남는다.


그렇게 시간이 지나 퇴근해야 할 시간이 다가왔다.

회사 분들에게 인사를 하는데, 나의 여행 소식을 모르시는 분들은

회사를 그만두는 줄 알았나 보다.

웃으면서 "저 미국과 캐나다로 여행 가요. 한 달 뒤에 뵐게요" 


이제 집으로 순간 이동하자... 슝~~~


집에 도착 후 사전에 준비한 

<체크리스트_home>편을  보면서 

빠진 것이 없는지

가스 레버는 잠갔는지

가전제품의 콘센트는 모두 빼놓았는지

자동차 블랙박스 전원은 껐는지 등등

한 달 동안의 긴 여행을 위해 다방면으로 점거해야 할 게 많이 있었다. 

준비된 체크리스트 하나하나에 v표 체크하면서 점검했지만 왠지 모를 찝찝함은 늘 있는 것 같다.

그렇게 저렇게 준비하고 있는데 어느새 예매한 ktx 열차시간이 다가왔다.

이제는 더 이상 지체할 수 없다.

택시 호출 하자. 


그런데...

생각보다 택시가 빨리 도착했다.

나는 크게 당황해서 아내에게 빨리 나가라고 하고 나는 6개의 짐을 나르느라 숨이 헐떡거리기 시작했다. 

줄인다고 줄였는데도 총 6개의 짐 꾸러미가 최종 짐으로 선발되었고 

짐을 한 번에 들고 내려갈 수 없어서 여러 번 오르락내리락하느라 시간이 많이 걸렸다.


유독 타인에게 불편을 주는 것을 힘들어하는 나이기에 

택시기사님이 오랜 시간 기다려주시는 게 내심 마음에 걸렸다.


항상 어딜 가도 먼저 가서 기다리는 게 속이 편한 나로서는

기사님이 밖에서 기다리시는 게 무척이나 마음이 불편했는데

짐까지 실어주신다.


잠시 얼굴 표정을 보게 되었다.

미소로 해주셨으면 했는데... 무표정.....


빨리 이 불편한 상황을 벗어나고 싶은데 짐이 너무 많다.

택시 트렁크에 2개, 뒷좌석에도 3개

그리고 앞자리에 앉으면서 짐 하나를 안고 타야만 이동할 수 있었다.


어찌어찌 짐 가득 싣고 ktx 강릉역으로 이동 

짧은 구간이었는데...

왠지 모를 기사님의 싸~~~ 한 분위기에 그 짧은 시간이 너무 길게만 느껴졌다.


그렇게 택시에 내린 후

우리는 1차 다툼이 있었다.

여행 계획에서 생각하지 못한 상황이 발생된 것


생각보다 빨리 첫 말다툼이 생겼지만 그것도 잠시 우리에게는 시간이 많지 않았다.

빨리 플랫폼으로 이동해야 해~~


원래 계획은 강릉역 안에 있는 카페 2층에서 잠시의 여유를 즐기며 출발하려고 했는데 

시간이 많이 지체되어서 바로 기차를 탑승하러 가야만 했다.



강릉역 안에서 여유로운 출발을 상상했지만


일단 시간이 없어서, 커피 한 잔의 여유는 없지만...

그래도 우리의 여행 시작을 기념하기 위해 사진 한 컷은 찍어야지


평화를 위하여 빠른 화해를 하고

기념사진 한 장을 남겼다.

내가 기획한 캐릭터 (강릉강랭이팝) 스티커를 붙인 노랑이, 빨강이 캐리어

그 위에 얹은 주황이와 핑크 폴딩백

그리고 각자의 어깨에 백팩 하나씩


급하게 출발 인증사진


신애야 우리 싸우지 말고 즐거운 여행 보내자.


이제 출발~~~


이제 기타 차러 가자. 우리가 꼴찌다......

플랫폼까지 에스컬레이터 타고 편하게 내려오는 것까지는 좋았는데...

무겁고 많은 짐을 열차 안으로 올리는 일이 만만치 않았다. 

당시 많은 분들이 여행을 가시는지 캐리어를 놓은 공간이 벌써 만석이어서 밖에다 놓을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열차칸 맨 앞에 캐리어를 눕혀 놓고 그 위에 각 종 짐을 올려놓았다.

그리고 드디어 자리에 앉게 되었다.

머리부터 땀이 뚝뚝 떨어지고, 상의는 땀에 흠뻑 젖어있었고, 기분이 썩 좋지 못했다.

그러다 보니 이런저런 짜증을 아내에게

곧이어 2차 말다툼 


이렇게 우리의 여행이 시작되면 안 돼......

신애야 우리 기도하자.

싸우지 않게 해 주세요~~


그렇게 기도로 마음을 다잡고 

드디어 서울역 도착 


이제 다음 코스인 김포공항역으로 가자.

아내가 며칠 전 피부과 치료받았는데, 출국 전 한 번 더 치료를 받아야만 했다. 

이 많은 짐을 가지고 병원이 있는 등촌역까지 갈 수 없기에 

내가 6개의 짐을 가지고 2시간 정도 김포공항역 안에 있는 롯데몰 근처 카페에서 대기하기로 했다. 


이곳저곳 물색하다가 2시간 정도 대기할 수 있는 카페를 찾았다. 

아내에게 이곳에서 내가 기다릴 테니 다녀오라고 말을 했다. 

그렇게 신애는 치료받으러 떠났고 나와 6개 짐이 그녀가 오기만을 기다리게 되었다. 


4인 테이블에 혼자 앉아 많은 짐들과 함께 아내가 오기만을 목 빠지게 기다리는 모습이 

어딘가 모르게 데자뷔 현상 같았다.


뭐지?

이 느낌? 알 것 같은데

뭘까...? 


아! 생각났다!!!  


최근에 본 드라마에서

한 아이에게 엄마가 아이스크림을 사주며 이 짐들이랑 여기서 기다려. 엄마가 있다가 데리러 올게...... 하고 돌아오지 않았던 드라마의 한 장면이 쓱 지나갔다.


아까 내가 너무 짜증을 냈나?

신애가 나 버리고 가면 안 되는데......


기다려!!!



2시간 뒤쯤 드디어 신애가 나를 찾아왔다.


신애의 얼굴을 보자마자 왠지 모르게 반가움이 배가 되어서 마음의 안정을 다시 찾게 되었다. 

그 기다림의 2시간 동안 많은 생각을 하게 되었던 것 같다. 

얼마나 기다리던 여행인데......

시작부터 싸우고 짜증 냈던 내 모습을 반성하게 되었던 것 같다. 


그 카페가 아마도 나에게 생각하는 의자와 같은 곳 같았다. 


저 반성 많이 했어요.


그렇게 우리의 여행은 시작점에 다다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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