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우리들의 책.습.관. 강주현입니다.
대학 때 소개팅을 딱 한번 주선한 적이 있습니다. 그런데 친구가 제가 소개한 선배가 마음에 안 든답니다. 더운 여름에 긴팔을 입고 나온 모양새를 보니 인간이 미련해 보인답니다. 죽을 정도 싫은 거 아니라면 삼세번은 만나 보라고 우겼습니다. 세 번째 만나고 오더니 배우 권상우를 닮은 거 같답니다. 그 사이 다른 사람하고 소개팅을 했나? 그게 아니라면 너도 중증이구나. 둘은 10년 연애 후 결혼했습니다. 결혼한 지 20년이 다 돼 가는데 이혼한다는 이야기가 없는 걸 보니 잘 사는 모양입니다.
저는 그 뒤로 삼 세 번의 법칙을 더 맹신합니다. 세 번을 봐도 싫을 수도 있지만 적어도 세 번의 기회는 주려고 합니다. 제가 감히 세상 졸작을 썼다고 가혹한 평가를 내린 베스트셀러 작가 초록씨의 다른 책들도 봅니다. 그래도 베셀 작가인데 세 번은 기회를 줘야 할 거 같아서요.
인간 본성의 법칙이란 존 그린의 책을 읽습니다. 공자의 논어는 여기저기 빈칸에 헐렁헐렁하게 쓰여 있고 밑에 반은 주석인데도 200쪽이 안 되는데 초록씨 책은 빼곡히 가득 차서 600 쪽이나 됩니다.
원래 자신이 없으면 말이 많아지는 거랬는데. 어 불안한데.
그런데 반항적인 성격에 대한 흥미로운 분석이 있네요.
반항적인 성격을 가진 경우 어렸을 때 부모에게 실망한 경험이 있어 권위를 거부하는 경향이 있답니다.
감히 부모에게 실망이라뇨.
효를 모르는 그린씨이기에 가능한 이야기입니다.
효라는 개념은 실망 자체를 거부합니다.
낳아준 것만으로도 감사한 존재가 부모니까요.
낳아준 것만으로 감사를 못하는 내가 불효자인가 싶어 죄책감이 듭니다.
이론적으론 낳아준 것만도 감사해야 하는데 자꾸 비교가 됩니다.
기대도 마음대로 실망도 마음대로입니다.
왜 더 온화한 성품을 가진 부모가 아닌지
왜 더 풍족한 재력을 가진 부모가 아닌지
왜 더 넑은 이해심을 가진 부모가 아닌지
왜 더 나눠줄 지식을 가진 부모가 아닌지
왜 더 넓은 세상을 보여주는 부모가 아닌지
기대를 하는 게 잘못인가요?
아닙니다.
더 나은 걸 바라는 건 당연지사 아닌가요.
기대를 저버리는 게 잘못인가요?
아닙니다. 저버리고 싶어서가 아닙니다. 그렇게 돼버린 겁니다.
어이없는 기대가 부당하게 느껴질 수도 있습니다.
노력을 봐주지 않아 서운하게 느껴질 수도 있습니다.
기대는 충족시킬 수 있는 건가요?
아닙니다. 원래 욕심은 끝이 없으니까요.
모두의 기대를 만족시킬 완벽한 인간은 없는데.
그럼 우린 모두 한 번쯤은 부모에게 실망을 하겠군요.
그래서 사춘기가 있나 봅니다. 거칠게 반항하는 시기.
반항기 끝에는 뭐가 있을까요?
측은함이 있는 거 같습니다.
쉽지 않았구나.
힘들었겠구나.
속상했겠구나.
미안했겠구나.
부끄러웠겠구나.
무서웠겠구나.
불안했겠구나.
미처 몰랐겠구나.
정말 몰랐겠구나.
모른 척할 수밖에 없었구나.
알고 있었구나.
참고 있었구나.
못 본척했구나.
어쩔 수 없었겠구나.
원망은 소용이 없습니다.
사과를 바랄 순 없습니다.
잘못하고 싶은 사람은 없으니까요.
완벽하지 않음을 마주하고 견딤이 대단하게 느껴집니다.
그들로 인해 저 또한 완벽하지 않음을 마주하게 되었습니다.
비로소 공감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렇지만 늘 뒤늦게 깨닫습니다.
조금이라도 빨리 깨닫기 위해 열심히 돌아봅니다.
아, 그래서 효였군요. 그래서 감사해야 하는 거군요.
초록씨도 측은하게 봐줘야겠습니다.
효와 인을 모르는 미국에서 태어나고 싶어 태어난 것이 아니고
살아남기 위해 쓴 글이 비록 저를 실망시켰지만
더 나은 인간으로 성장하기 위한 노력은 공감이 되니까요.
저도 감히 베셀 작가에게 반항은 그만해야겠습니다.
여러분의 책.습.관. 은 어땠어요?
습관삼아 돌아올게요.
우리들의 책.습.관. 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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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youtu.be/s8GOsg1Z67Q