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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책o습o관 May 10. 2024

09. 한계 헬멧

자전거 육아

작꿀이가 동네에서 자전거를 타며 산책을 하고 있는데 이웃 사는 동네 여자아이들을 마주쳤다.

그중 동생이 엄마에게

" 엄마, 쟨 왜 헬멧 안 써?"

그 엄마가 뭐라고 했는지 까먹었지만 그 뒤에 작꿀이는 헬멧을 사달라고 했다.



자전거를 탈 때는 헬멧과 안전 장비를 하는 것이 맞다.

내가 알던 선생님 아들은 시속 40마일 속도로 달리다 큰 사고가 나서 반신불구가 됐다.

그걸 알면서도 나는 아이한테 안전장비에 대해 별로 강요하지 않았다.

내가 발랑 까진 게으른 엄마이기도 하고, 5살이 빨라봐야 얼마나 빠르겠냐는 안일한 생각에서고, 시켜서는 절대 안 쓸 거라는 생각에서다.



시켜서 되는 건 딱 코찔찔이 때까지다. 정말 빨리 탈 수 있는 십 대들은 시킨다고 쓰진 않는다.

내 경험으로는 그렇다.

난 십 대 시절 집에서 걸어서 40분 거리 자전거로는 20분이면 되던 거리에 있는 피아노 학원에 다녔다. 피아노가 죽기보다 싫었지만 그동안 한 게 아까워서 다니는 터였다. 시켜서 억지로 하는 피아노가 재미도 없고 취미도 없는 나한테 자전거 통원은 싫은 피아노 학원을 다니는 이유가 됐다. 연습 좀 해오라고 하는 잔소리도 문을 열고 나서면 훌훌 털어버렸다. 피아노 선생님이 사시던 아파트 단지 내리막길에서 붙는 가속도를 최대한 이용해서 페달에 발을 척 얹고 바람을 가르며 내려오다 속도를 줄이지 않고 큰길을 만나자마자 좌회전을 할 때의 그 쾌감이란 말로 표현할 수 없다. 그렇게 내리막길에서 얻은 가속도로 평지도 달 구르지 않고 한 번에 우회전을 해야 하는 문방구 앞을 도는 나만의 게임을 하곤 했다.



객기가 최고에 다다른 어느 날  내리막길에서 다가오는 시내버스를 보고도 속도를 줄이지 않고 내려왔다. 내 계산상 충분히 좌회전을 해서 버스보다 먼저 갈 수 있을 것만 같았다. 생각보다 빠르게 다가온 버스는 내가 좌회전을 하려는 바로 그곳에 요란한 소리를 내며 서야 했다. 간발의 차이였다. 창밖으로 머리를 반쯤 내민 버스 기사 아저씨께 난생처음으로 들어보는 온갖 욕을 쳐들었다. 쳐들어도 싸다고 생각했다

그때 난생 처음 감사기도가 절로 나왔다. 



엄마한테 버스 이야기는 하지 않았다. 

엄마한테 등짝을 맞을까 봐인지

앞으로 자전거를 못 탈 까봐서인지

나에 대한 엄마의 신뢰를 깨뜨리고 싶지 않아서인지

나의 무모함을 말로 내뱉기엔 너무 창피해서인지 모른다. 

아마 다 일 것이다.

그 대신 나는 피아노를 그만두겠다고 말했다. 



어쩔 줄 모르는 에너지가 넘치는 시기

한 치 앞을 못 보는 시기

헬멧을 장착해서 내 보낼 수는 있지만 밖에 나가면 벗어서 가방에 처박아 버릴 수도 있는 시기.

세상의 규칙 따위는 우스워 보이는 시기.

무모가 멋이 되는 시기

실패가 훈장이 되는 시기

 


나는 그 시기에 헬멧을 머리에 쓰지 않았다.

그 대신 마음에 헬멧을 썼다.



바람을 가르며 머리가 흩날리는 자유  

한계를 시험하는 짜릿한 도전

세상이라는 벽을 뛰어넘을 힘

그리고 나를 알아가는 시간을 보호하려고.



그 시기를 무사히 보내고 지금껏 살아 있는 것은 행운이다.

그렇지 않았다면 큰꿀이, 작꿀이 자전거 타는 모습을 못 보았을테니까.



큰꿀이는 더 이상 경적이 울리는 자전거를 타지 않지만 여전히 페달을 굴리는 중이다.

내 눈에 보이지도 않는 자전거를 타고

내 눈에 보이지도 않는 헬멧을 쓰고 

큰꿀이는 어떤 한계를 시험하고 있을까?

부모라는 벽을 뛰어넘을 준비를 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녀석이 나를 훌쩍 넘어 떠나는 그 여정을 응원하기 위해 나도 내 자전거 페달을 열심히 굴려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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