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책o습o관 Jul 06. 2024

23 그대가 품은 은밀한 거울

책 편을 들어보겠습니다.

관계는 노력이 많이 드는 에너지 소모적인 인간 활동이다. 

내가 좋아하는 떡볶이를 한번 먹었으면 친구가 좋아하는 닭발도 먹어줘야 한다. 

지금 당장 쏘아붙이고 싶은 말이 만 가지가 있지만 관계를 생각해서 인내하고 다음 기회를 엿보어야 한다.

무 자르듯 자르고 안 보고 살고 싶지만 지난날 받은 도움을 생각해서 결혼식에 얼굴을 들이밀어야 하기도 하고

진정 혼자 있고 싶은 밤이지만 술 한잔 하자고 청하는 단짝의 하소연도 들어야 한다. 

관계가 계산기 두들겨서 딱 떨어지는 일이면 고민거리가 아니다. 

그런데 이렇게 노력하지 않고 단짝을 찾는 방법이 있다. 



작가의 안목을 고스란히 공유한 책과 책을 선택한 나는 순식간에 내적 친밀감을 형성한다.  

밤새워 술을 마시지 않고는 들을 수 없을

변명의 여지가 없이 찌질하고 수치스러운 실수, 가슴 저린 사랑이야기, 얄밉다 못해 동정심이 생기는 인간에 대한 뼈저린 배신감,  사회에 대한 공허함, 그리고 아무런 질투와 사심 없이 공유할 수 있는 행복감을 한 톨도 가리지 않고 나눠 준 작가가 둘도 없는 인생의 단짝이 된 것 같은 착각이 든다.

작가를 더 잘 알고 싶다는 생각에 다른 책도 읽어가며 그의 품속으로 헤집고 들어가 본다.

그러면 작가에 대한 소소한 일상, 취미, 가족관계마저 알게 된다. 이게 단짝이 아니고 무얼까.



문학책을 많이 읽으면 인간에 대한 이해가 깊어진다고들 한다. 문학책을 읽으며 상상을 해 본다. 어느 부분이 작가의 경험일까, 작가의 동경일까. 그런데 나같이 문학책은 요리조리 피해 다니고 비소설만 주야장천 읽는 편식쟁이는 뭐가 깊어지는 걸까? 지식이 깊어질 수도 있다. 책을 읽고 전부 다 기억하면야 좋겠지만 나같이 잘 잊어먹는 사람은 말짱 도루묵인가? 아니다. 내 경험으론 비소설을 읽고 반은 까먹더라도 남는 게 있다. 궁금해하는 법. 


문학을 읽으며 인간에 대한 감동과 연민이 생기는 순간만큼 비소설을 읽으면 인간의 호기심에 대한 감탄과 공감을 맞이하는 순간이 있다.

"와 어떻게 이런 생각을 했지?"

실제 인간사에서 놀라운 생각을 공유할 수 있는 친구를 갖는다는 건 대단한 행운이다. 

나하고 똑같은 관심사를 가진 친구를 찾기도 보통 어려운 일이 아니다. 그런데 새벽 두 시고, 일요일 아침이고 내가 원하는 관심사를 아무 때고 이야기할 수 있는 친구를 찾는다는 건 하늘의 별따기다. 

그런 친구가 있다고 한들 내가 그런 친구가 되어줄 수 없으면 나도 모르는 사이 빚잔치가 열린다. 

책은 그럴 걱정을 날려버린다.



관계를 쌍방으로 만들고 싶은 욕심이 생기면 작가와는 둘도 없는 영혼의 친구가 되어버린 착각 속에 작가에게 뜨거운 팬레터를 보내본다.

답이 오는 경우는 드물다.  

독자일 때를 잊지 않는 작가도 있을 테지만, 먹고 사느라 바쁜 작가도 있을 테고, 일방통행 내적 친밀감이 부담스러운 작가도 있을 테다. 책에서 풀어놓은 일부분으로 작가 전부를 안다고 섣불리 재단하는 것이 싫을 수도, 부끄러울 수도 있겠다. 

그런 면에서 고전은 안전하다. 배신감도 느낄 필요가 없고, 거절당했다고 쪽팔릴 필요도 없다. 그들은 이미 저세상으로 가고 없으니. 



책 한 권으로 그런 속 깊은 이야기를 들을 수 있으니 수박 겉핥기 같은 현생의 관계가 갑자기 시시해질 수도 있다. 그렇다고 책 속으로만 파고든다면 책은 슬퍼할지 모른다.  

책 이야기를 듣기만 하던 친구는 이야기가 끝나면 금세 떠날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책과 관계를 이어가려면 내 이야기도 하는 방법을 찾아야 한다. 

그래서 책을 많이 읽는 사람들이 결국은 글을 쓰게 되나 보다.  

친구들에게 책에게 들은 양만큼 마음껏 이야기를 쏟아내려면 술값이 얼만가. 

이야기를 묶으면 책이 되고, 그러면 작가가 된다. 

책이 품은 거울에 비친 내 모습이 나에게 이야기를 들려주던 책 모습과 닮아간다. 

이렇게 책과 이야기를 주고받는다. 



모두들 작가가 되고 싶은 건 누구나 인생의 주인공이 되고 싶어서다. 

희망은 나만의 이야기는 어떻게 될지 대한 궁금증이다.

혹시 아나? 책에서 읽은 사랑보다 더 진한 사랑을 하게 될지.

아니다. 우리 사랑은 무조건 특별하다. 

나만이 할 수 있는 사랑을 하고 있으니까. 

특별한 사랑임은 확실하더라도 책까지 특별해지려면 읽어주는 이가 필요하다.  

듣게 만드는 게 얼마나 어려운지를 깨달은 후 나에게 이야기를 들려준 책을 다시 찾게 된다. 

그대는 나를 어떻게 사로잡은 건가요? 

 


책과의 관계가 은밀한 이유는 책이 들려주는 이야기가 들은 사람마다 다르기 때문이다. 암호를 해독할 수 있는 능력은 독자의 그릇에 달려있다. 그래서 대부분은 백만장자의 비법을 읽고도 백만장자가 되지 못한다. 책을 쓴 백만장자에게 나한테 특화된 맞춤 조언을 얻기 위해 내야 하는 돈은 있는 사람들이 더하다는 말이 저절로 생각나게 한다. 백만장자와 일면식을 트기 위한 거라면 몰라도 개인처방조언이 무조건 성공한다는 보장도 없다. 결국 주인공은 백만장자가 아니다. 책이 제안하는 은밀한 거울로 나를 비추는 게 남는 장사다. 



희망을 봅니다.

내 모습을 그대 품속에 은밀한 거울에 비춰 보며, 


이전 03화 22 그대가 이끄는 대로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