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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책o습o관 Jul 06. 2024

04 너무나도 소박한 그대

책 편을 들어보겠습니다.

책의 가계부를 상상해 본다. 

책은 분명 백만장자는 되지 못할 것이다. 어찌나 소박한지 손바닥 두 개 붙여 뻗을 작은 공간, 한 손에 들리는 종이뭉치를 훑을 시간, 2만 원을 넘지 않는 책 값이 책이 원하는 전부다. 값을 미리 부르고 시작하는 장사치는 순진한 장사꾼이다. 떡하니 가격을 새겨 놨다. 잊을 만하면 살금살금 올라가는 구독비용, 중간중간 관심 없는 광고를 들이미는 법도 없다. 좀 도움이 될만한 정보인가 싶어 누르면 여지없이 치고 들어오는 회원전용도 없다.  이렇게 손해 보는 장사라니.


책이 순진한 장사꾼인 건 가격 때문만이 아니다. 책은 남의 시간도 저당 잡을 줄 모른다. 독자의 선택 말고는 다시 오게 할 재주도 없고,  붙잡아 앉힐 욕심도, 전략도 없다. 다음을 보장하기 위해 심장 쫄리게 아찔한 장면에서 끊지도 않는다. 심지어 원하면 결말도 미리 가서 볼 수 있다. 자기 계발서들은 또 어떤가.  매일 조금씩 조금씩 보따리 풀듯 감질나게 풀지 않고, 맘씨 좋은 욕쟁이 할머니 마냥 밥공기에 넘치도록 산처럼 쌓아준다. 먹고 싶을 때, 먹고 싶은 만큼 먹으라고 한다. 이렇게 밀당을 못해도 사랑을 지킬 수 있을까 



전문 서적들은 분야에서 오래 일한 전문가들이 평생을 바친 업적을 한 손으로 번쩍 들 수 있는 무게 안에 꾹꾹 눌러 담아 모아 놓는다. 그들이 졌어야 하는 삶의 무게에 비하면 한참 가벼운 무게일 텐데 그렇게 고마울 수가 없다.


인간은 왜 이렇게 소중하고 은밀한 인생의 경험을 하필 책으로 내는 걸까?

정보도 경험도 팔면 팔수록 돈이 되는 세상인데 겨우 책 한 권.

동네에 사방팔방 떠들어 재끼는 확성기도 없이.

읽힐지 안 읽힐지도 모르는 하필 책으로.


이타성에서 답을 찾고 싶은 마음은 없다.

롭 라이히 교수가 쓴 Just giving이란 책에서 이타성이 어떻게 민주주의에서 실패 원인이 되었는지에 대한 문제제기를 보고 통쾌했다. 기부를 통해 얻는 세금의 이득이나 사회적 지위, 영향력을 꼬집은 그의 견해가 솔직하게 느껴진 건 내 마음이 더러워서일까. 신호등에 서있는 사지 멀쩡해 보이는 거지 젊은이에 돈을 기부하는 차량이 단 한 대도 없는 걸 보면 기부가 답이 아니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나만은 아닌 거 같다. 그래도 기부를 안 하는 거 보다야 하는 게 좋지, 기부도 안 하는 애들이 저런 소리를 한다는 생각을 용케 먼저 읽은 라이히 교수는 눈먼 기부금이 얼마나 많은 부정부패의 희생양이 되고 체계적인 관리와 감독 없이 낭비되 있는지에 대한 연구도 덧붙인다.

돈의 기부가 세금 공제와 사회적 위치를 준다면 책이 하는 깨달음의 기부, 앎의 기부는 한 끼 밥 사 먹을 돈이 아니라 본질적인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는 점에서 가치를 쳐줘야 하지 않을까. 이제 책 원고료에 세금 공제가 없다는 사실이 더 놀라울 따름이다.

돈 많은 부자는 기부를 하고 돈 말고 다른 것이 많은 부자는 책을 낸다.

오직 남을 돕기 위해, 인류애를 위해 책을 냈다면 키다리 아저씨처럼 이름도 숨기고, 책값도 받지 말았어야 했다. 부끄럽지 않는 책값은 쓰는 이한테 도움이 되는 일이 읽는 이한테도 도움이 되는 방법을 운 좋게 발견했기 때문이다. 

인류를 구원하겠다는 마음, 세상을 밝히겠다는 야망, 이름을 떨치겠다는 마음이 아니라 내가 가진 문화 유전자를 전달해서 내가 사는 세상, 내 후손이 사는 세상이 좀 더 괜찮아지기를 바라는 소박한 마음이었으리라.



책은 흥정을 모른다. 요즘은 기사나 자료를 읽으려고 하면 하이퍼링크는 기본이다. 영어에서 하이퍼 됐다고 하면 과도하게 흥분된 상태를 이른다. 어원에는 ' 그 이상'이라는 의미가 있다. 더 주겠다는데 뭐가 문제냐고? 나 같은 결정장애자들, 불안장애자들, 집중력 결핍자들한테는 문제다. 아예 없다고 생각했으면 모를까 보고 안 읽으면 손해 보는 것 같은 느낌이 찝찝하기 짝이 없다.  

이렇게 하이퍼링크를 타고 정보의 바다를 헤엄치다 보면 원래 읽었던 내용이 무엇이었는지 길을 잃고 만다. 끼워팔 수 있는 절회의 기회를 눈앞에서 놓친 책은 최대 이윤이 선인 자본주의에서 소박하다 못해 무능해 보인다.


책은 목소리를 높이지 않는다.

만들어지는 동안 그렇게 정을 맞았으면 고레 고레 목청껏 소리쳐도 성에 안 찰 텐데 책은 기다리기만 한다.

보고 싶은 시간도 읽는 내가 정하고 보고 싶은 장소도 가 정한다.

싼 값에 팔려와서 내가 가는 데로 아무 때나 끌려 다녀도 불만이 없다. 

유일한 시위라고는 책에서 눈을 뗀 순간 입을 꾹 다문다. 틀어 놓은 수도꼭지 마냥 물을 줄줄 흘리지도 않고 인공지능 센서라도 있는 것인지 단 한자도 거저 읽어지지 않는다. 잠시 딴생각하면 훅 지나가 버리는 오디오북, 쉴 새 없이 배경음악처럼 지나가는 영상들처럼 거저 주지 않고 눈빛을 교환해야만 준다. 

눈길만 주면  정보도, 재미도, 감동도 인심 좋게 송두리째 내어 준다. 

도대체 책은 어떻게 살아남으려는 걸까?

이쯤 되니 정작 책 보다 책을 아끼는 이들 마음이 더 애간장이 탄다.

그래서 서평도, 책추천도 넘쳐나는 것이 아닐까.



이렇게 팔아서 뭐 남으시겠어요?

술 한잔 사지 않고 책 값까지 받아가며 제 이야기를 실컷 했으니 제가 손해 보는 장사를 한 건 아니지요.

소박하여라 그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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