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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책o습o관 Jul 07. 2024

05 소금 같은 그대여  

책 편을 들어보겠습니다.

물만 가지고는 단식을 할 수 없다. 소금이 있어야 몸의 항상성을 유지할 수 있다.

재밌는 건 널려 있는 게 바다인데 인간은 소금이 잔뜩 든 바닷물을 식수로 사용할 수 없다.

없으면 안 되는데, 옆에 널려있는 걸 그대로 사용할 수도 없다.


책은 소금이다.

책이라고 다 좋은 책은 아니다.

문장력이 좋은 책? 유명한 작가책? 서평이 좋은 책? 많이 팔린 책?

나한테는 내가 필요한 책이 좋은 책이다.


얼마 전 놀이터에서 만난 둘째 친구 엄마가 두 발 자전거 연습이 한창이라고 했다. 친구 엄마 말이 2년 전 자전거를 살 때 남편에게 밸런스 바이크부터 타야 한다고 했단다. 그때는 귓등으로도 듣지 않더니 두 발 자전거를 연습하기에 앞서 철저한 조사 결과 밸런스 바이크가 두 발 자전거에 도움이 된다며 뒷북을  치더란다. 남편에게 전에 말해줄 때 어디 갔었냐고 타박하니 기억에 없다며 못 들었다고 했단다. 남편 잘못일까? 남편은 두 발 자전거를 가르칠 방법에 흥미가 없었을 뿐이다. 그 때나 지금이나 밸런스 바이크가 유용하다는 건 잘 알려진 사실이라고 하더라도.

책도 필요에 따라 그 진가를 발휘한다. 시험을 잘 보고 싶어 십 대에 읽은 데미안과 나이를 먹어도 되지 못한 어른이 되고 싶은 사십 대에 읽은 데미안이 다른 이유다.


책만큼 시간을 많이 잡아먹는 일도 없다.

시간을 죽이는 목적이 아니라면 무조건 많이 읽어서 뭐 하겠나.

실학자 정약용이 그랬고, 책도령은 왜 지옥에 갔을까를 쓴 김율희 작가가 그랬다.  읽으면 써먹어야 한다고.

초단위로 만들어지는 책들, 서점에 깔린 책들은 바닷물이다. 무작정 들이마시면 목 타 죽을지 모른다.  읽어도 읽어도 끝이 없다.

목적을 가지고 읽어야 소금이 된다.

재미여도, 정보여도, 위안이어도, 반성이어도 목적은 무엇이어도 되나

삶이 짧으니 목적이 있다는 게 중요하고 삶의 목적과 책의 목적이 일치하면 시간을 절약할 수 있다.

그 목적이 어떤 의미로든 삶에 도움이 된다면 시간이 아깝지 않다.

내 삶만이 아니라 남의 삶도 윤택하게 한다면 더할 나위가 없다.



책이 소금인 이유는 쉽게 구할 수 있는 가장 기본양념이기 때문이다.

달걀국은 들어가는 것이 별로 없어도 소금간만 잘  맞추면 밥 한 그릇 뚝딱이다.



몇 해 전 코비드로 처음 학교문을 닫았을 때  너도나도 궁여지책으로 온라인 수업을 시작했다. 내가 가르치던 영어가 제2 외국어인 반 아이들은 대부분은 저소득층이거나 자취를 하고 있었다. 그 아이들은 집에서 인터넷 사용이 불가능해서 학교에서 컴퓨터를 제공해도 무용지물이다. 인터넷 카페 가서 공부하면 되지 않냐고? 먹고 사느라 바쁜 아이들이 머리만 대면 골아떨어질게 뻔한데 인터넷 하러 시급의 반이나 되는 커피 마시러 별다방에 가라고 할 순 없다. 선진국인 미국에서도 있는 일이다. 후진국은 말해 뭐 할까.

한국에서는 지하철만 가도 인터넷이 터지니 상상도 못 할 일이겠지만 책은 여전히 누군가에겐 유일한 배움의 길이다.

땅 속으로 통신선을 파지 않아도, 전기가 들어오지 않아도, 컴퓨터 같은 고가의 전자기기가 없어도 종이와 연필만 있으면 만들 수 있는 게 책이다.



영화도, 영상도 책이 담을 수 있는 것을 담을 수 있겠지만 책보다는 여러 명의 노력과 재료가 든다. 남녀노소 누구라도, 가난한 이도, 부자도, 병상에 누운 자도 건강한 자도 글자를 쓸 수 있다면 책을 읽고 만들 수 있다.  

놀랍지 않은가? 그토록 낮은 문턱이.

세종대왕이 한글을 만들어 반포하겠다고 했을 때 양반들이 반대했다. 인간이 아직 되지 않은 천한 것들이 쓴 글이 판치는 세상이 어떤 세상이 될지 우려했다고 한다. 그런데 어째 요즘  많이 듣는 이야기와 같지 않나. 인공지능이 우리에게 선사하는 초단위의 창작과 정보를 둘러싼 윤리적 논란과 흡사 닮았다.

하지만 큰 차이가 있다. 세종대왕이 한글을 반포하고 상놈도 천민도 모두 글을 읽을 수 있게 되었지만 읽고 쓰는 과정에 들어가는 노력은 깨달음과 성찰이라는 부산물을 낳았다. 하지만 인공지능은 교육과 생산만이 가능하다.


책을 읽고 쓰는 것이 어렵다면

전혀 이상한 것이 아니다.



뜨거운 햇볕을 견디고 바닷물에서 소금이 된 그대 그대 덕분에 살 맛이 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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