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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책o습o관 Jul 05. 2024

02 그대가 이끄는 대로

책 편을 들어보겠습니다.

대학교 때 백화점에 잠시 주얼리를 파는 아르바이트를 한 적이 있다.

원석이긴 해도 보석은 아니었는데 만만한 가격이 아니었다.

미술을 전공한 여사장님은 액세서리들 진열을 위해 혼신의 공의 들였다. 비단 같은 천을 떼다가 브로치며 귀걸이마다 올려놓을 전용 쿠션을 손수 제작해서 전시했다. 움직이는 매대 하나씩 몰고 다니는 액세서리 코너들 중 단연 눈에 띄는 매대였기에 매출도 좋았다.  매출이 괜찮았는지 입점 계획을 논의 중이라고 하셨다. 그리고 십몇 년 후 우연히 미국에서 철 지난 의류를 할인해서 파는 가게에서 같은 브랜드의 액세서리를 봤다. 액세서리 걸이 줄줄이 걸려있는 그 제품이 내가 팔았던 싶은 제품이 맞나 싶게 볼품이 없어 보였다. 가격은......

 


백화점에 들어가기 시작하면 물건값이 비싸지기 시작한다.

언젠가부터 생긴 편집샵들은 눈이 휘둥그레지는 가격표가 당연한 듯 행세한다.

동대문에서 물건을 떼어다가 파는 동네에서 잘 나가는 소매점들이 마진을 붙이는 이유도 같다.

마케팅비, 자리세라고들 부르지만 실상 우리가 지불하는 추가 비용은 일명 주인장의 안목, 바로 큐레이팅의 대가다.

지나가던 길에 가게 마네킹에 걸려있던 예쁜 옷이 우리 집 옷장에 오면 그저 그런 옷이 되는 이유는 내 옷장엔 스토리가 없어서다. (물론 내 몸이 마네킹과 같은 사이즈가 아닌 이유도 있지만) 그리고 스토리를 만들어주는 행동이 큐레이팅이고, 감각이 일명 안목이다.

미술관 관장이라는 직업이 고급지게 느껴지는 이유는 바로 그 안목을 갖기가 쉽지 않아서다.

옷을 보는 안목도 어려운데 인생을 보는 안목은, 정보를 보는 안목은 말해서 무엇할까?



내가 최근 읽은 The brief history of Intelligence라는 작가는 인간의 지능에 대한 6가지 놀라운 생물학 관점에서 지능의 진화의 단계를 분석해서 인공지능을 설명했다.

진화라는 목걸이 줄에 6개의 지적 능력에 대한 구슬을 꿰었다. 투명한 유리구슬을 할지, 투박한 목탁 같은 구슬을 할지, 자연에서 주은 조개로 구슬을 만들지 정하는 것도 보통 일은 아니다. 각각의 구슬들에 공을 들였다고 한들 꿰지 않으면 목걸이가 아니다. 스토리텔링을 통해 하나씩 보면 그저 돌에 불과한 것을 목걸이로 만든다. 이제 이 구슬을 어떤 순서대로 엮을 건지, 어떤 줄에 어떻게 꿸 건지, 어느 옷에 잘 어울리는 목걸이인지에 따라 고급 주얼리가 될지, 애들 장난감 목걸이가 될지가 결정이 된다. 목걸이라는 정체성을 갖는 순간이다.  그런데 이 작가가 진화라는 목걸이 줄을 선택했다. 출판계에서는 목걸이 줄만 도맡아 하는 사람을 기획자, 편집자라고 한다. 그래서 수많은 작가들이 책 말미에 기획자, 편집자들에게 그렇게 감사를 하는 것인지도.

그림책으로 행복해지기를 고대영 작가는 편집자이기도 하다. 편집자가 먼저였다고 들었다. 놀랄 일은 아니다. 


이렇게 생각하고 보니 작가의 역할을 어디까지일까 싶은 생각이 든다.

기획까지 가능한 작가와 글만 기똥차게 잘 쓰는 작가 중에 출판사 입장에서 이왕이면 다홍치마를 선택하겠구나 싶은 것은 이해가 된다.

말을 가지고 노는 재주가 영 탐탁지 않아도 스토리텔링만 가지고도 책을 만드는 것이 가능할 수도 있다.

말을 가지고 노는 재주가 대단한대도 엮어지지 않아 책이 안 되는 경우도 많은 것처럼.


잡지는 예쁜 보석을 모아 놓은 보석함이면, 책은 목걸이다. 

소소한 일상을 담담하게 나열한 수필들은 언뜻 보석함 같지만 그들 나름의 일상, 소소함이라는 줄에 꿰어 있다. 나는 선반에 모셔 놓는 관상용 보석함보다는 돼지목에 걸어도 용도가 있는 목걸이가 좋다. 이 사람 저 사람 이야기를 다 들을 수 있는 파티에 갈 건지, 한 명의 연사의 이야기를 들을 건지야 듣고 싶은 사람이 선택하면 된다. 좁고 깊은 관계를 선호하는 나는 한 사람에게 집중할 수 있는 책을 편애한다. 


Ellin Greene 이 쓴 Stroytelling이라는 책은 이야기꾼이 되고 싶은 사람들을 위한 기술을 써 놓은 책이다. 어린이 스토리 시간을 운영하는 도서관 사서들의 필독서이지 싶다. 사서도 아닌 내가 이 책을 읽으며 감동을 한 부분은 바로 스토리텔링은 듣기의 힘이라는 것이다. 

책에는 귀가 없으니 작가의 스토리를 들을 수밖에 없다. 웃으며 등짝을 때리고 싶고, 가슴이 벌렁거리고, 울화가 치밀고, 질문이 솟구치지만 내 성질머리를 가라앉히고 작가가 이끄는 대로 따라갈 수밖에 없다. 그래도 공포스럽거나 고통스럽지 않은 것은 우리에겐 언제나 책을 덮을 힘이 있다. 


스토리라는 줄에 소중한 알들을 다듬고 골라내어 조화를 이루도록 만들어낸 목걸이가 된 책, 


그대 소리를 오롯이 듣기 위해 그대가 이끄는 데로 따라갈 준비를 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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