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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책o습o관 Jul 05. 2024

21 그대, 만질 수 있기 때문입니다.

책 편을 들어보겠습니다.

나는 용왕님께 간을 바친 브런치 이용자다.

브런치에 글을 쓰면서 아주 작정하고 종이책 예찬을 할 참이다.


표준 국어 대사전에 나오는 책의 정의를 찾아보니 이렇게 되어있다.


책 1(冊)「명사」 「1」 종이를 여러 장 묶어 맨 물건


네이버 어린이 백과는 인간의 사상이나 감정을 글자나 그림으로 기록하여 꿰어맨 것이라고 설명한다.

 


브런치북은 전자책이라는 이름으로 분류한다. 전자책도 큰 범주로 책의 범주에 들어간다. 종이를 묶진 않았지만 묶긴 묶었기에 너그럽게 책에 껴준다. 종이로 원하면 언제든 출력할 수 있는 세상으로 변했으니 책도 융통성을 발휘했다.



큰 아이가 4살 무렵 이사 도우미 아저씨들을 불렀는데 아저씨들이 두 손 두 발 다 들은 이삿짐이 책이었다. 무슨 책이 이렇게 많냐며, 이렇게 많아도 집이 안 무너진 게 신기하다고 했다.

뭘 이 정도 가지고.

어린이 책으로 거실 한 면을 도배한 한국 가정집을 못 보셨구먼

속으로 생각했다.

아저씨들이 투덜거렸듯 이삿짐을 쌀 때 책만큼 거추장스러운 게 없다. 크기도 제각각인 데다 싸고 정리하는데도 힘이 들기 때문에 모조리 박스에 넣기도 애매하다. 그래서 상자 대신 무게를 버틸 수 있는 나일론 줄로 책을 묶으면 몇 권 싸지도 않았는데 손가락 피가 안 통한다.


그래도 이사할 때마다 이고 지고 다니며 종이책을 포기를 못하는 이유는 촉감, 냄새, 여백, 손때 때문이다.

영어 단어를 외울 때 효과적인 방법 중 하나가 물리적인 활동을 함께 하면 효과가 좋다고 한다. 예를 들면 앉아서 화장실, 화장실 외우는 것보다 직접 화장실에 걸어가 보면 기억이 잘 난다. 화장실 냄새, 화장실을 이용해 본 느낌, 소리 이런 것이 화장실이란 단어를 기억하는데 훨씬 도움이 된다. 전자책기기나 전화기, 컴퓨터에서 책을 읽으면 촉감은 포기해야 한다. 거칠한 책, 볼록볼록 튀어나온 책, 매끈 한 책, 책을 만드는 사람들이 선택한 소재가 주는 도움을 받을 수가 없다. 아이들 책은 말해서 무엇할까. 아이들에게 책을 넘긴다는 행위 자체가 의미가 있다. 덜 여문 고사리 손 끝으로 종이를 한 장만 잡으려고 꼼지락 거리는 느낌, 손목이나 손가락 힘만으로 넘기면 될 일을  굳이 팔 전체를 휘저으면서 넘기는 신체 활동은 책 읽기를 뇌의 운동만으로 그치지 않게 한다. 소리는 또 어떤가. 간혹 전자책 중에 책장 넘기는 소리를 효과음으로 넣는 경우가 있지만 내가 빨리 넘긴다고 소리까지 긴박해 지진 않는다.


곤경에 빠진 젊은 사서를 구원한 노련한 사서가 내가 이상한 질문을 들고 갈 생각이 없자 027 부분에 가보라고 했다. 거기엔 독서에 관한 책들이 모여 있었다. 정확하게 내가 원한 것은 아니었지만 방앗간을 그냥 지나칠 순 없다. 그곳에서 쓸어온 책 중 한 권인 The reading well 이란 책에서 저자가 독서에 관한 이야기를 하며 연신 lemon wax에 관한 향수를 이야기한다. 찾아보니 재지를 코팅할 때 쓰이는 모양이다. 내가 갖고 있는 책들은 아무리 코를 킁킁거려도 레몬 비슷한 냄새가 나질 않는다. 중학교 친구네 헌책방에 들어섰을 때 나던 냄새는 레몬 냄새보다 먼지 냄새에 더 가까웠다. 하루종일 나가 놀고 오면 옷에서 나는 햇빛에 바짝 마른 흙냄새가 내가 기억하는 책 냄새다.


큰 아이 어렸을 때 헌책방 주인과 오랜 친구인 친정엄마가 출판 연도마저 흐릿하게 지워진 동화책을 비행기에 가득 실어 보냈다. 소포값 반도 안 되는 책들이 비싼 비행기 체면에 걸맞지 않은  라면 상자를 타고 바다를 건넜다. 지금도 우리 집에 있는 그 책들에선 우유 썩은 내가 난다. 나를 변태라 생각해도 할 수 없지만, 코를 감아쥐게 하는 그 냄새를 맡으면 쾌감이 드는 건 왜일까.


얼마 전 미래학을 공부한답시고 중고책방에소 앨빈 토플러의 미래의 충격을 샀다. 도서관에 없어 살 수밖에 없었다. 지금은 한국도 그런지 모르겠지만 미국에선 크기도 더 크고 표지가 두껍게 되어있는 양장본은 훨씬 값이 비싸다. 표지도 얇고 크기도 작게  출판한 보급용 책들은 값이 저렴하다. 소장할지 모르므로 나는 싼 값의 중고책을 샀다. 그런데 읽다가 숨 막혀 죽을 뻔했다. 보급형 책은 원가를 줄이는 게 목적이다 보니 손바닥만 한 크기에 여백을 대폭 줄여 빼곡하게 편집했다. 잠시 딴짓하다가는 어느 줄에서 읽었는지 다시 찾아갈 수가 없다.

뷔페 접시에 더 많은 음식을 올리려고 탑을 쌓는 심정으로 음식을 담아 먹으면 배는 불러도 접시에 예쁘게 담아 먹는 즐거움, 음식끼리의 궁합, 먹으며 나누는 여유를 느낄 수가 없다. 여백은 버리는 공간이 아니라 책을 소화시키는데 필요한 공간이었다.

끝도 없이 스크롤해 내려가는 전자책들도 여백의 미를 고려해 펼쳐 놓은 창문처럼 양쪽면을 완성된 작품으로 편집하는 종이책과 달리 깨끗하게 마무리 지어진 여백의 미가 없다.



Reading life에서 C. S.  Louis는 책을 깨끗하게 읽는 미학에 대해서 이야기했지만 나는 동의할 수가 없다. 나는 깨끗하게 읽을 수 있는 책, 한 번 읽고 말 책이면 도서관에서 빌리고, 더럽게 읽어야만 직성이 풀리겠다 싶거나 집에 모시고 싶다면 읽었어도 산다. 요즘 전자책들은 메모도 할 수 있고 갈피도 을 수 있다. 그런데 더러워지진 않는다. 손때를 아무리 묻혀봐도 화면에만 묻을 뿐 책에 닿지 않으니 그렇게 아쉬울 수가 없다. 학창 시절 손때 묻어 더러운 본인의 노트 대신 친구의 깨끗한 노트를 빌려 공부했던 기억이 있는 사람이라면 알 것이다. 남의 옷을 빌려 입은 듯 어색하기 짝이 없다.  몸에 맞춰 모양이 변한 청바지 마냥 손때가 묻은 책은 편안하. 종이책이 아니라면 무서운 장면이 나온다고 깔고 앉거나 구길 수도 없다. 하도 많이 읽어서 닳거나 찢어진 부분도 없다. 전자책은 언제나 항상 같은 모습이다.



내 예상과 달리 최근 설문 조사에 따르면 종이책 독자는 늘고 전자책 독자는 줄었다고 한다. 전자책을 옹호하는 사람들은 책 보관의 편리성, 환경 보호를 이유로 든다. 어린이 책은 아직 발달이 아이들을 위해서라 불편하더라도 종이책을 선택하지만 어른책은 환경을 생각하면 종이책을 고르며 죄책감이 들기도 한다.

실제로 종이책을 생산하는데 들어가는 무지막지한 양의 물과 나무들, 배출되는 탄소양을 생각하면 전자책으로 마음이 기우는 것이 이상하진 않다. 그런데 전자책도 우리가 생각하는 것만큼 자연 친화적이기만 한 것은 아니다.  단 한 개의 전자책 단말기에 들어가는 천연 광물이 15kg 정도이고 단말기가 전자 기기의 수명을 다하는 동안 사용하는 에너지는 경유차가 100km 거리를 가는 동안 생산하는 에너지보다 많이 든다. 전자 단말기뿐 아니라 브런치에서 매일 생산되는 글들을 데이터 저장센터를 통해 보관하는데도 에너지가 든다. 서점에 책이 쌓인 듯 물리적 공간이 드는 것은 아니지만 데이터를 처리하는 과정을 위한 전기, 물을 포함한 에너지를 계산하면 자연친화적이라 말할 수 없다.

환경면에 전자책 전용기기를 통해 책을 읽는 비용이 종이책 읽는 비용보다 효율적이려면 연간 100권의 책을 읽어야 한다고 한다.   

환경을 생각해서 100권을 못 읽을 바엔 전자책 전용기기보다야 종이책이 좋고, 종이책을 읽는다면 도서관 이용과 헌책방 사용을 염두에 두자라고 말해도 되려나 모르겠다. 적어도 전자책 대신 종이책을 읽을 때 자연에 빚진 기분은 없어졌다.

책을 열심히 읽자 정도로 마무리하면 출판사 사장들도, 서점 주인들도, 작가들도, 도서관 직원들도 웃을 수 있지 않을까 싶다.


생각을 담은 탐스런 몸으로 태어난 책,

그대가 좋다. 마음껏 만질 수 있는 그대가.



<참고문헌>


네이버 사전

https://terms.naver.com/entry.naver?docId=562918&cid=46669&categoryId=46669


종이책과 전자책 탄소 사용 관련 기사

https://www.popsci.com/environment/books-ereader-sustainability/#:~:text=The%20eco%2Dfriendlier%20option%20depends,storage%20of%20data%20on%20servers.%E2%80%9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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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www.newsis.com/view/?id=NISX20240612_0002769344&cID=13006&pID=13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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