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들의 책.(습).관. 12
낮은 습관

책.습.관. 라디오

by 책o습o관

안녕하세요. 우리들의 책.습.관. 강주현입니다. 잘 지내셨어요?


제가 육아. 교육에 관한 책도 내고 하니 어디 비석이라도 하나 세울 만큼 훌륭한 성품의 온화한 미소를 가진 좋은 신사임당급 엄마를 상상하셨을 수도 있지만 이번에도 역시나 기대 그 이하입니다. (그런 상상은 벌써 깨진 지 오래인가요? ㅋㅋ)


저는 게을러서 잔소리를 못하는 사람입니다.

아이가 일어날 때까지 뒤쫓아 다니며 여러 번 깨우는 부지런함이 없어서 1분 남겨 놓고 일어나 밥도 못 먹고 뛰어가도 허공에 숟가락 한번 들고 허우적 댈 뿐입니다.


작꿀이가 옷을 거꾸로 뒤집어 입고 턱 앞에 상표가 날름거려도 말씨름하기 싫어서 그냥 입혀 유치원에 보냅니다. 학교 가면 하루 종일 인사를 들으니 제가 가르쳐 주지 않아도 다음날 되면 똑바로 입고 나옵니다.


제가 청소시리즈를 여러 번 쓰니 먼지 없이 깔끔한 집에 살거라 생각하시겠지만 저의 청소와 정리의 진짜 동기는 게으름입니다. 물건을 찾기 싫으니 쓰고 제자리 놓는 것이고 한꺼번에 하면 하기 싫으니 티 안 나게 조금씩 뇌에 과부하 걸리지 않을 만큼 한번 쓱 흩는 것뿐입니다. 물론 창틀 같은 건 과감히 건너뜁니다. 그런 건 연례행사 거나 그도 아니면 감정문어한테 욕 한번 먹고 넘깁니다.


애들 방 옆에 달린 화장실 청소는 주사용자인 애들에 맡겼습니다. 저희가 사용하는 화장실과 1층 화장실은 매주 수요일에 한번 청소할 뿐입니다. 까먹지 말라고 물 많이 쓰니 곳이니 수요일로 정했습니다. 목욕하면서 걸리적거리는 것, 눈에 띄는 거야 대충대충 치우니 못 봐줄 정도는 아닙니다. 공용 화장실도 아닌데 아침에 30분 저녁에 30분 정도 쓰는 화장실을 횟수로 계산해도 10번도 안 되는데 매일매일 신줏단지 닦듯 닦을 필요가 있나고 생각하는 저의 위생관념에 감정문어는 적잖이 놀랐습니다. 여행 가면 숙소 입장 전 2시간씩 청소를 하고 입장하는 위생관념이 깔끔한 집에서 자란 감정 문어는 비위가 많아 약한 모양입니다.

방법은 두 가지입니다. 문어가 직접 하거나 비위를 키워야죠. 문어는 똑똑한 동물입니다. 비위를 키웠습니다.


게으른 제가 하는 습관은 죄다 기대치가 제일 낮은 습관입니다.

최소한 인간답게 살기 위한 습관입니다.

안 하면 인간적으로 좀 심하다 싶은 정도는 면하기 어려운 것들입니다.

부엉이가 아닌 이상 최소한 인간 이어야 하니 해 뜨면 일어나고 해지면 잡니다.

식단표 짜서 유기농 재료로 색깔 맞춰가며 그림같이 예쁜 도시락은 싸주지 못하지만 최소한 삼시세끼 밥 먹고 그중 한끼는 식구 모두 모여 골고루 먹으려고 합니다. 그래야 명색이 식구니까요.

학습지며 공부며 최신 유행 템으로 하진 못하지만 최소한 하루 1번 책 3권을 같이 읽는 것은 지킵니다.

특별한 과외활동, 운동을 하지 않지만 최소한 하루 한번 날씨가 좋을 때는 공원이나 놀이터로, 날이 궂으면 도서관이든 하다못해 시장이라도 가서 콧구멍에 바람 넣고 움직이고 옵니다. 머리 쓰면 몸도 한번은 써줘야된다고 생각합니다.

약속 없인 친구를 만나기 어려운 요즘이라 일주일에 한번은 약속을 정해서라도 친구를 만나서 머리에 땀나게 놉니다. 되면 도서관이든 놀이터든 친구사냥을 나갑니다.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라는 사실을 까먹지 않기 위해서입니다.

아이들 영상 시간 관리는 더 가관입니다. 작꿀이는 제가 아침, 점심, 저녁 집안일 하는 시간 동안 보고 싶은 만큼 봅니다. 어차피 최소로 하는 집안일이라 그다지 오래 걸리지도 않습니다. 그래도 매끼 먹고 치울 게 있고 잡다구리 할 일이 생깁니다. 때로 작꿀이와 노는 게 힘들어서 영상을 신나게 보길래 옆에 슬쩍 앉아 책을 펼치면 알람보다 더 정확하게 놀자고 달려듭니다. 그럼 고민이 됩니다. 그냥 수요일 아닌데 화장실 청소를 할까 서랍장을 다시 정리할까. 게을러서 못합니다. 결국 냅다 작꿀이에게 머리를 맡깁니다. 오늘은 미용실 놀이를 하시겠다니까요. 로봇 청소기는 극구 사양합니다.


제가 하는 습관의 기대가 최하이니 별로 어렵지 않습니다. 기대가 낮으니 예상보다 잘할 수도 있는데 그러면 자존감도 올라가는 덤도 얻습니다.

이렇게 기대가 낮은 제가 봐도 인간의 영역을 자주 벗어나는 작은 화장실을 보면 기함을 하는 것은 잔소리가 아니라 인지상정이지요.

글을 쓰기 위해 끄집어내어 습관을 나열하니 습관인가 보다 하지만 몸에 붙은 이런 것들은 더이상 습관이 아닙니다. 일상입니다. 숨 쉬듯 자연스럽게, 당연히 하는 것이 되었으니까요.

그러니 지금 굳이 노력해서 하는 건 글쓰기 습관 하나입니다.


저녁 먹고 난 큰꿀이가 설거지를 하며 묻습니다.


엄만 나를 어떻게 이렇게 키웠어?

이렇게? 무슨 의미일까요? 설거지하기 싫다는걸까요?

표정으로 보아 나쁜 의미가 아닌거 같습니다.

왜?

고개를 갸우뚱합니다.

희한하단 말이야. 다른 엄마들에 비하면 별로 부지런한 것 같지도 않은데.

......


한방 먹은 거 같기도 하고

자기가 잘 큰 것 같다는 이야기인 거 같기도 하고.


잘 컸다고 생각한다니 자존감은 있게 키운 거 같기도 하고

저런 말을 대 놓고 하는 것을 보면 겸손은 좀 없으신 거 같기도 하고.


여러분의 책.습.관.은 어땠어요?

습관 삼아 돌아올게요.

우리들의 책.습.관. 이었습니다.


https://podcasters.spotify.com/pod/show/juhyun0528/episodes/12-e2eqrin

https://youtu.be/JgPP0KcYO3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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