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습. 관. 라디오
안녕하세요. 우리들의 책. 습. 관. 강주현입니다. 잘 지내셨어요?
예전에 미술 선생님이 그런 농담을 하시더라고요. 부지런한 애들이 영어 공부를 잘하고 게으른 애들이 수학을 잘한다고요. 그때는 웃고 넘겼는데 생각할수록 그 말이 참 재미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게으른 아이들이 수학을 잘하는 이유는 뭘까 생각해 봅니다. 일명 수학을 잘하는 아이들은 생각하는 힘이 좋지요. 수학을 어렵게 하는 아이들이 배운 공식을 써서 하나하나 차곡차곡 답안지를 빼곡히 메우는 사이 수학을 잘하는 아이들은 손가락 몇 번 움직이고 지렁이 몇 개 끄적이더니 답을 얻는 경우가 있습니다. 어떻게 하면 손가락을 덜 움직이고 빠르고 정확하게 답을 얻을 수 있을까, 더 쉬운 방법이 없을까 생각한다는 게 미술 선생님 논리의 근거입니다.
저는 2층집에 삽니다. 집은 아담하더라도 개인 공간을 중요시 여기는 미국 정서 상 층수를 구분해 짓는 경우가 흔합니다. 그런데 이 놈의 개인 공간 때문에 뭐 하나만 가져오려고 하면 층계를 끝도 없이 오르락내리락해야 합니다. 빨래를 하면 위로 가져가야 하고, 밑에서 가위질하는데 풀이 필요하면 위에 가서 가져와야 하고, 방에서 책 읽다 목마르면 밑에 가서 가져와야 하고 여간 귀찮은 게 아니에요.
어렸을 때 자려고 누워서는 동생하고 누가 불을 끄나를 놓고 엄청나게 실랑이를 했던 저의 게으름은 리모컨이나 음성인식으로 하는 소등을 발명한 사람들의 영감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지금 어떻게 하면 조금이라도 덜 해 볼까 하는 게으름은 제 많은 습관의 원천이 되었습니다.
저희 집 2층으로 가는 계단에는 빨래 바구니가 자주 얹어져 있습니다.
에잇, 그까짓 거 올라갔다 오면 되지.
생각하실 수도 있는데 올라가면 그냥 내려와 지지가 않습니다. 이왕 갔으니 서랍에 넣는 게 낫고, 서랍에 넣다 보면 서랍도 정리하는 게 낫고 서랍 정리하면 장도 한 번 닦고 이런 식이죠. 그래서 원래는 1분인데 정작 30분이 훌쩍 갑니다.
회사일도 비슷합니다. 옆 부서에 서류만 하나 주고 오려고 했는데 갔다 오는 길에 누굴 만나면 수다도 한 번 떨어야 하고, 간 김에 화장실도 들리고, 커피도 하나 타 오고. 이런 영업 비밀을 누설했네요.
그래서 저는 안 올라가기로 했습니다.
나중에 올라갈 일이 있을 때 한꺼번에 하려고 미뤄둡니다.
그런데 이렇게 미뤄두는 저만의 습관은 친정 엄마가 집에 오시면 말짱 도루묵이에요.
제가 한꺼번에 다리려고 모으고 있는 남편 셔츠도 하나가 나오면 세탁기에서 나오기 무섭게 다려 놓고, 계단에 놓은 빨래 바구니도 올려놓기 무섭게 위로 가져다 놓으십니다. 결국 엄마 부려먹는 딸이 된 거죠.
이게 나만의 시스템이다 설명해도 소용이 없습니다.
"무슨 그런 말도 안 되는 시스템이 다 있냐"는 퉁박만 돌아올 뿐입니다.
어디서 많이 듣던 소리입니다. 아이들이 조금 이따가 숙제를 한다고 하면 부모님들이 그러십니다.
그렇게 한다고 하고 저번에 까먹지 않았냐. 그러느니 그냥 지금 미리 해 놓고 마음 편하게 놀아라.
그래서 저도 진화했습니다. 안 까먹기 위해 계획을 세워 시간 서랍을 만들어 놓는 거죠. 서랍에 집안일 시간이라고 이름표도 붙여 놓습니다. 때론 안 까먹게 빨래 바구니처럼 잘 보이는 곳에 올려놓기도 합니다. 도서관에 가져갈 책들은 세탁기 위에 모아 놓았고, 가게에 환불하러 가야 하는 건 차에 잘 모셔놨습니다.
오마니 믿어주십시오. 다 계획이 있다니까요.
그런데 희한하죠? 다른 식구들은 다 이해를 해주는데 말이에요. 친정 엄마가 안 계시면 빨래 바구니가 아무리 발에 걸려도 제가 들고 올라가기 전까진 꼼짝하지 않고 그 자리에 잘 있습니다.
언제나 제 습관이 그들의 습관보다 한 발짝 빠른 것뿐이라고, 그들이 나의 습관을 지지하고 있는 것이라고 생각해 봅니다.
여러분의 책.습.관. 은 어땠어요?
습관삼아 돌아올게요.
우리들의 책. 습. 관.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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