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들의 책.(습).관. 03 구멍난 식단

책.습.관. 라디오

by 책o습o관

안녕하세요. 우리를 위한 책.습.관.의 강주현입니다. 잘 지내셨어요?


내일 저희 집은 월요일이라 닭고기를 먹을 거예요. 닭고기를 이용한 일본식 가라아케와 햇 고춧가루를 넣어 색이 빨간 콩나물국이 내일 메뉴입니다. 원래는 내일 먹을 것까지 미리 생각해 놓지 않지만 브런치 덕에 세상 귀찮은 저녁 메뉴 선정의 짐을 덜어요. 숙제를 미리 했으니 내일은 하루 종일 가뿐하게 살겠어요.


저희 식탁을 보면 미국 사는 줄은 아무도 모르실 거예요. 밥을 새 모이만큼 먹는 막내 꿀꿀이도 몇 알일지언정 꼭 한 끼는 쌀을 먹어야 하는 걸 보면 한국인은 밥심이라는 말이 괜히 나온 말은 아니지 싶어요.

말 나온 김에 저희 집 일주일 식단표 구경해 보실래요?


월. 닭고기

화. 해산물

수. 소고기

목. 채식

금. 돼지고기

주말. 자유식


무엇을 기대하셨더라도 기대 이하죠? ㅋㅋ

저희 집 꿀꿀이들은 아침밥 먹으면서 저녁밥 메뉴를 물어요. 이렇게 재료라도 정해 놓으면 대충 메뉴의 폭이 좁아지니 메뉴에 맨날 목 졸리는 저도, 메뉴에 목메는 꿀꿀이들도 숨통이 좀 트입니다.


저는 습관을 이럴 때 써먹습니다. 매 순간 수많은 선택이 주어지는 자유라는 호강이 때로 남용과 결정 장애라는 복병과 함께 오기 때문에 말이죠. 그래서 선택지를 줄여 봅니다.

습관으로 무턱대고 선택의 기회를 자를 수 없는 활짝 열린 모든 가능성의 문 앞에선 십대들은 아마도 그래서 진로 결정이 그렇게 어려운가 봅니다. 내가 연 문이 나한테 맞는 문인지, 길이 난 문을 연 것인지, 끝이 있는 문인지, 내가 열지 않은 문이 성공으로 가는 지름길은 아니었는지에 대한 미련과 불안이 그 찬란한 기회의 자유를, 무한한 가능성의 아름다움을 가리나 봅니다.

오늘 뭘 먹을지 결정하는 메뉴 따위는 조금 쉽게 해도 되지 않을까 싶은데 그건 저만의 생각인가 봅니다.


퇴근을 알리는 전화기 넘어 남편 목소리가 목요일임을 알려 줍니다. 원래도 동굴 목소리인데 두 옥타브를 내려서 분위기를 잡으니 여기는 지하 세계가 아닌가 싶습니다.

채식날이거든요. 고기를 좀 줄이려고 하루 넣었습니다. 좋은 습관 좀 지키며 살려는데 여기저기서 태클이 들어옵니다. 관계를 생각해서 습관을 포기할까 건강을 위해 습관을 고수할까 고민을 하는데 얼큰한 국물의 라면을 드시겠다고 쐐기를 박습니다. 라면도 고기는 아니라면서. 그래도 제가 선뜻 답을 안 하면 라면은 직접 끓일테니 설거지 걱정까지 붙들어 매라며 거부할 수 없는 미끼를 던집니다.

나름 목표는 달성한 건데 아무래도 관계를 위해 미끼를 물어야겠죠? 이러면 습관을 지키기 위해 목요일은 라면으로 메뉴를 바꿔야 하나 고민할 법도 한데 포기하긴 싫네요. 실패가 없다는 레시피 흉내내봐도 현재까진 라면을 이길 수는 없었지만 앞으로는 모르는 거니까요. 그래서 이날은 두부날로 남겨두려고요. 앞으로의 성공을 위해 실패해도 괜찮은 날, 실패한 습관을 위한 숨구멍 하나쯤 있어도 괜찮습니다.


오늘 여러분의 책. 습. 관. 은 어땠어요?

습관처럼 다시 올게요.

우리들의 책.습.관.이었습니다.

https://podcasters.spotify.com/pod/show/juhyun0528/episodes/03-e2e3u7f

https://youtu.be/hvlUYG85P2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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