습관:일기는 생각하기 위해 하는 것

책.습.관.

by 책o습o관

국민학교 시절 방학숙제로 날림 일기를 쓴 기억은 전 국민이 공유하는 추억이다. 얼마 전 일기 쓰기가 인권 침해라는 기사를 본 기억이 난다.

인권보호를 위해 초등학교에서 일기 쓰기를 금지하면 나의 예상 시나리오는 일기학원이다. 학교에서 억지로 하는 것은 싫어도 필요한 줄은 알아서 돈 내고라도 시켜야겠다는 부모들은 학원을 찾게 되는 기적 같은 논리다.

일기 검사를 안 해도 되면 얼마나 좋을까?

생각이 자라는 것을 관찰할 수 있는 일기 말고 다른 방법이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라는 문제가 남는다.


큰 아이와 나는 컴퓨터를 공유한다. 그래서 내가 잠든 후 아이가 내 컴퓨터를 쓰고는 창을 닫지 않고 열어두어 자기가 쓰는 Notion ( MZ세대다) 이 그대로 있다. 빼곡히 할 일도 적혀 있고 누가 풋풋한 고등학생 아니랄까 봐 바탕도 어디서 가져왔는지 귀여운 것으로 깔아 놨다. 막상 봐도 별것도 없겠지만 사생활 보호 차원에서 읽어보진 않는다.


나도 일기를 쓴다. 아마도 큰 아이가 어느 순간 일기를 다시 쓰기 시작한 건 내가 일기 쓰는 게 대단한 일인 양 유세를 떤 것이 작용한 모양이다. 노션도 내가 소개했다. 유행에 발맞춘 척, 쿨한 엄마인척 하기에 좋은 거리였다. 일기도 나이에 따라 방법이 달라져야 한다.


큰꿀이도 한국학교를 9년 넘게 다녔기 때문에 아주 전통적인 방법으로 일기 쓰기를 숙제로 했다. 우습게도 30년이나 차이가 나고, 자라는 곳이 달라도 큰꿀이가 쓴 일기나 내가 초등학교 때 썼던 일기가 별반 다르지 않다. 초등학교 때 쓰는 일기는 (한) 국어 공부 목적이다. 보통 이맘때쯤 아이들이 한글을 배우니 글을 써보는 것보다 좋은 것 없어 일기 쓰기는 단골 숙제다. 고학년이 되면 더 이상 한글은 문제가 아니다. 이때가 인권을 거들먹거리는 시기가 아닐까 한다. 숙제 관리가 귀찮은 학부모들은 보여주는 일기가 무슨 소용이냐는 식이고 숙제가 싫은 아이들은 일기는 인권침해라고 한다.

죄명이 지나치게 거룩하다는 생각이 들지만 과장하면 인권침해가 맞다. 왜 소중한 내 생각, 내 기분을 선생님한테 검사를 받아야 할까?

그래서 내가 아이들을 지도할 때 고심고심해서 생각해 낸 방법은 생각 쓰기다. 일기를 쓰지 말고 내 질문에 생각을 써 오라는 산문 형식의 쓰기 숙제다. 한국어 공부가 목적이니 물론 첨삭도 하고, 틀린 맞춤법도 고쳐준다. 쓰기는 여전히 싫어해도 인권침해 소리까지는 안 한다.


아이들이 쓰기를 싫어하는 가장 큰 이유는 생각하기 싫어서란다. 글쓰기 수업에서 아이들이 늘 하는 불평은 2단계다.

첫 단계는 :뭘 쓸지 생각하기 싫어요"다.

그래서 우리는 보통 수업과 관련한 내용을 쓰기 주제로 잡고 무엇에 대한 주제로 쓸지 함께 이야기하는 극약처방으로 첫 번째 불평을 돌파한다.

그래서 쓰기 시작하면서 개요를 잡고 쓰라고 하면 두 번째 불평이 나온다.

" 생각나는 데로 휘갈기면 좋은데 왜 개요를 꼭 잡아야 해요. "

두 가지 다 생각근육과 관련이 있다. 나는 16년째 홈트 마니아인데 근육이라곤 하나도 없다. 나름 웨이트랍시고 물병 들고 휘적대는데 도토리 비슷한 알통도 없다. 뻐근할 정도의 무게로 천천히 하더라도 제대로 해야 근육이 생긴 다는 건 알면서 그냥 한다. 무게를 걸고 시간을 천천히 하며 버티듯, 글을 쓸 때는 생각근육이 뻐근해져야 하는데 그냥 술술 쓰려고만 하면 나처럼 평생 무알통이다. 남의 초콜릿만 보며 평생 침을 흘려야 한다.

아이들은 학생이라는 좋은 직업과 엄마 아빠 그늘에 있어서 자기 글을 봐주는 선생님,부모님 같은 사람들이 있는데 원래 좋은 건 옆에 있으면 모르는 것처럼 그 소중함을 모른다.

소중함을 모르면 나처럼 누가 제발 내 글 좀 봐주기를 기대하며 이렇게 브런치를 삼시세끼 먹게 된다.


그래도 일기가 숙제로 내는 생각쓰기를 대체할 수는 없다. 일기는 생각할 꺼리도 찾는 연습이 되기 때문이다. 일기는 매일 나의 삶을 되돌아보는 생각을 연습하는 습관이다. 나는 일기를 달력에 쓰던, 노션에 쓰던, 공책에 쓰던 다 상관없다고 생각한다. 글로 쓰면야 좋겠지만 안 되면 달력에 동그라미만 쳐도 난 일기라고 생각한다. 나 같이 생각하는 사람을 보고 개념 없는 사람이라고 한다. 그렇게 두리뭉실 해도 되는 거냐고 개념 있는 사람들은 경악을 한다. 어차피 사람은 제각각 사는 것이다. 뭐 어떤가. 달력에 동그라미 좀 치고 나도 일기 쓰는 습관 하나는 있다고 뿌듯해한다고 뭐 큰일 나는 것도 아닌데. 그러다 보면 달력에 글씨가 많아지고 칸이 모자라서 노트를 사게 될런지도 모른다.


작꿀이는 아직 한글을 못쓰기에 자기 전에 누워서

" 오늘 학교에서 뭐 했어? "

이렇게 물으니

" 졸린데 자꾸 물어보지 마"

란다.

물어봐서 미안하다. 꿈 속에서라도 일기 습관을 완성해 주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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