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 탐구 07 : 이건희 회장 경영 철학
제가 삼성의 임원으로 있을 때 가장 철저하게 지킨 인사 원칙 중 하나가 바로 과감한 권한위임(權限委任)이었습니다. 팀장이나 담당자에게 큰 방향과 기준을 정해주고 특별한 사항이 없는 한 관여하지 않았습니다. 특히 긴급한 일에는 ‘선(先) 실행 후(後) 보고’를 하도록 조직을 운영한 것입니다. 신중하게 선택한 팀장과 담당자를 신뢰하였고 일절 의심하지 않았습니다.
삼성장학회에서 임원으로 있으면서 이건희 회장의 인사철학이 대단하다는 것을 경험했습니다. 아들 이재용 회장과 함께 사재(私財)를 출연해 만든 삼성이건희장학재단(2006년에 삼성장학회로 명칭 변경)이지만, 장학재단 운영에 대해 원칙과 방향만 제시할 뿐 일상적이거나 세부적인 사항에 대해서는 일절 관여하지 않았습니다. 한마디로 신중하게 사람을 선정하지만, 자신이 믿고 선정한 임원에 대해서는 권한을 위임하고 신뢰를 보내는 것입니다. 이건희 회장의 믿음에 보답하기 위해 장학사업을 책임지는 임원으로 재직하는 동안 사명감을 갖고 일하게 되었습니다. 이러한 이건희 회장의 인사철학은 한국의 많은 기업가들이 본받아야 할 점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2002년 삼성이건희장학재단을 설립하고 초대 이사진으로 참여한 이재용 회장(당시에는 삼성전자 이재용 상무)도 이사회에 참석해 다른 이사 분들의 의견을 조용히 경청할 뿐, 장학사업의 세부적인 운용 방안에 대해 특별히 관여하지 않았습니다. 장학회의 담당자를 신뢰하였던 겁니다. 당시에 이재용 회장이 외부 이사들의 의견을 메모하며 배우려는 성숙한 자세에 깊은 인상을 받았던 기억이 납니다.
삼성을 창업한 이병철 회장부터 이건희 회장 그리고 현재의 삼성전자 이재용 회장까지 3대가 '의인불용 용인불의'라는 인사철학을 철저하게 지키고 있는 것입니다.
의인불용 용인불의(疑人不用 用人不疑)는 중국 사서 송사(宋史)에 나오는 문장으로, 의심이 가는 사람은 쓰지를 말고, 선택해서 쓴 사람은 의심하지 말라는 뜻입니다. 삼성 이병철 창업 회장의 인사 철학이지만, 이건희 회장도 부친과 마찬가지로 이러한 인사 철학을 철저하게 실천했습니다. 신중하게 사람을 선정해서 임무를 맡겼으면 의심하지 않고 끝까지 믿으면서 모든 권한을 위임해 주었습니다.
이건희 회장은 임무를 맡겼으면 웬만한 일에는 관여하지 않습니다. 경영의 큰 방향과 원칙만 제시할 뿐 모든 권한을 자신이 선택한 임원에게 위임하는 스타일입니다. 많은 사람이 알고 있는 바와 같이, 미래전략실을 이끌었던 최지성 실장과 삼성전자를 이끌었던 권오현 회장이 대표적인 사례입니다. 일단 믿고 맡겼으면 의심하지 않았고, 특별한 사항이 없으면 중간에 간섭하지도 않았다고 합니다.
그 결과 삼성의 최고경영자와 임원들은 매우 자율적이면서도 책임 의식을 갖고 빠른 의사결정을 할 수 있습니다. 이 점은 빠르게 변하는 국내외 경제환경 속에 삼성이라는 조직이 가지고 있는 강력하고 효과적인 경쟁력이라고 생각합니다.
주요 임원에게 대부분의 권한을 위임해 주는 것은 위대한 리더가 아니라면 힘든 것입니다. 이건희 회장은 대범하게 대부분의 권한을 과감하게 위임해 주었고 선정한 임원들을 신뢰할 줄 알았습니다. 이러한 이건희 회장의 인사 철학으로 삼성에서 중책을 맡고 있는 경영자나 주요 보직 임원들이 주체적으로 책임감을 갖고 빠른 의사결정을 할 수 있는 것입니다.
시간이 중요한 경영자에게 남들보다 빨리 의사결정을 할 수 있는 것은 아주 큰 장점입니다. 다른 기업들이 최고경영자에게 주요 사안마다 의견을 묻고 결정을 기다릴 때, 삼성의 임원들은 주어진 권한 안에서 주도적으로 책임감을 갖고 다른 기업보다 빠른 의사결정을 할 수 있습니다.
대한민국이 경제위기에 봉착했던 IMF 이후, 기업 간 빅딜이 이루어지던 때에 삼성과 협상을 벌이던 다른 기업 총수들은 삼성의 빠른 의사결정과 업무방식에 감탄했다고 합니다. 삼성의 협상팀 임원은 상대방이 어떤 제안을 해도 그 자리에서 의사결정을 하는 모습을 보여준 반면, 다른 기업의 협상팀은 삼성에서 제안을 하게 되면 최고경영자에게 일일이 의견을 물어봐야 했다고 합니다.
사안마다 최고경영자의 의중을 물어야 하는 상대 협상팀은 집중력이 떨어지는 것이 당연한 것입니다. 생각해 보세요. 모든 권한을 위임받아 그 자리에서 담당 임원들이 자율적으로 결정하는 삼성의 협상팀과 작은 제안이라도 일일이 최고경영자의 의중을 물어보고 답변을 해야 하는 상대방 협상팀 중 누가 더 책임감을 갖고 집중력 있게 협상을 할 수 있겠습니까?
신중한 인재 선택, 선택한 인재에 대한 강한 믿음, 그리고 과감한 권한 위양을 통한 빠른 의사결정은 삼성과 이건희 회장의 여러 가지 경영방식 중 매우 큰 장점이라고 생각합니다.
회사를 창업해서 핵심 인재를 키우면서 글로벌 기업으로 성장하기를 원한다면, 삼성의 이러한 인사철학과 권한위임방식을 연구해 보는 건 충분한 가치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세간에는 삼성에 대해 여러 가지 평가가 있을 수 있겠지만, 유익한 장점을 굳이 외면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삼성이라는 조직의 인재 운용 장점을 흡수해서 여러분 회사의 인재 활용에 적용한다면, 성장하는 데 많은 도움이 될 것으로 생각합니다. 저의 경험이 여러분의 꿈을 실현하는데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기를 소망합니다. 그리고 대한민국에 삼성과 같은 위대한 기업이 많이 탄생하기를 기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