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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제야 Jul 14. 2023

가장 우아한 복수

진정한 복수는 지금부터

 



 요즘 '이혼은 흠도 아니다, 이혼도 트렌드'다 할 정도로 여기저기 이혼, 이혼 말이 많지만 막상 이를 겪어본 사람들은 이런 말을 쉽게 하지 못한다. 단순히 단어 하나로 규정하기에는 엄청나게 길고 긴 히스토리와 켜켜이 쌓인 아픔, 허무함, 상실감으로 점철된 슬픔의 강을 건너야만 성립되는 것이 이혼이기 때문이다.

 누군가는 아무리 이기적이고 허무맹랑한 사유로 이혼을 할지 몰라도, 어떤 누군가에게는 그 과정이 참으로 황망하고 삶의 근본적인 의미까지 돌아보게 만드는 인생의 폭풍이 되기도 한다.


 어느 누가 끝을 바라보며 결혼을 할까? 누구나 각자의 동화의 마무리인 '행복하게 살았습니다'가 현실화되길 꿈꾸며 결혼 생활을 시작한다. 그런데 인생이 그렇게 협조적이지가 않다. 스스로도 잘 몰랐던 각자의 모습이 부부라는 관계 하에 낱낱이 드러나고, 그토록 사랑해 마지않던 상대방의 바닥을 보더라도 현실부정이 앞서다가 끝내는 '이번 생은 망했어'라며 눈물 콧물 짜내며 '이혼', '이혼 사유' 등을 검색하게 되는 것이다.

 

 나는 여태껏 살면서 겪었던 그 어떤 감정보다 이혼에 얽힌 감정이 길고도 지독했다. 브런치에 글을 쓰게 된 것도 이 때문이다. 내면에 쌓인 이야기와 내가 원하는 삶의 괴리감에 절망스러웠을 때, 살고 싶어서 심리학 책들을 읽기 시작했고 조금씩 생각을 정리하는 과정을 기록해 나갔다.


 법은 양날의 검이라 믿을만한 친구가 못된다. 그렇기에 차라리 나는 책을 무기 삼아 내적 전투를 벌였다. 더 이상 그가 어떤 방식으로든 내게 영향을 끼치지 못하도록 나를 다잡는 것이 최선의 공격이었기 때문이다.

 가끔은 내 삶이 감히 그깟 놈과 그 가족 때문에 폭파되었다는 것에 분개하며 익명을 빌어 그들의 만행을 대대적으로 공개하기도 했다. 한숨에 몇 문장을 우다다다 쳐내고 나면 무언가 해소되는 기분이 들어 꾸준히 글을 쓰게 되었던 것 같다.



 글을 통한 카타르시스는 눈물만큼 치유의 힘이 있다.

 한 편씩 글을 써 내려갈 때마다 그가 조금씩 옅어지고 그 자리에 내 모습이 들어섰다. 결국 나는 치졸하게 계획한 현실의 모든 복수를 접고 빠른 이혼을 택했고, 내가 할 수 있는 한 가장 지적인 방식으로 그를 버렸다.

 결국 그는 어떠한 것도 끝까지 인정하지 않았지만, 가정을 깨고 나와 아이에게 큰 상처를 주었던 것은 그의 양심이 가장 잘 알 것이다. 그의 영혼은 더 이상 내 몫이 아니니 홀가분하기도 하다.


 나는 내게 남은 그의 모든 잔재를 이 글 속에 차곡차곡 넣어놓은 채 책장을 덮을 것이다.


 나는 자유로운 내 모습을 사랑한다. 누군가의 아내였건, 누군가의 엄마이건 나는 나로서 오롯이 존재한다. 나는 내 장점과 단점들을 정면으로 바라보며 이를 식별할 수 있는 지혜를 쌓고 있다. 그리고 내겐 아직 오지 않은, 선물 같은 미래가 있다.

 계속 글을 쓸 것이다. 그리고 과거의 나를 용서하며 한 뼘 더 성숙해진 모습으로 이혼의 진창 속에서 신중히 골라낸 보석들을 지닌 채, 그는 결코 누리지 못할 미래를 아이와 함께 살아갈 것이다.


 이보다 더 우아한 복수가 어디 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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