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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제야 Jul 03. 2023

다들 그렇게 산다고?

그럴 리가


 나는 워낙에 위로를 잘 못하는 종류의 인간이었다. 늘 적당한 말을 찾지 못해 가끔은 헛소리를 하기도 했다. '괜찮을 거야'라고 말하기엔 막상 고통을 겪는 이의 상황이 심각할 수 있고, 그렇다고 '힘들어서 어떡하니'라는 말은 또 자칫 너무 가볍게 전달될까 봐 조심스럽다.


 내가 가장 쓸데없다고 생각하는 위로의 말은 '남들도 다 그래'인데, 나는 어떤 상황이든 이 말을 들으면 내 모든 고민거리가 가치가 없는 것처럼 느껴졌기 때문이다. 다들 그렇게 사는 것이 어디 있냔 말이다. 누구나 자신이 직면한 일이 가장 힘들고 버겁기 마련이다.

 '그래도 쟤보단 내 상황이 낫지'하며 상대적 위로를 얻는 경우 있더라도, 그런 자기 위로를 하고 나면 미쩍지근한 감정이 남는걸 보아 내겐 비교나 일반화하는 위로는 별다른 도움이 되질 않는 것 같다. 어쨌든 나의 경험은 누군가의 그것과는 다를 수밖에 없는 지극히 개인적인 것이기 때문이다.





 주로 잠들기 전에 많은 생각이 든다. 자려고 누운 건지 생각하려고 누운 건지 헷갈릴 만큼 온갖 잡생각 머릿속을 부유하다가 특정 생각에 지배당하면서 엄청난 압박감을 받을 때가 있다.

 이 시간 때의 생각은 주로 일어나지 않은 일에 대한 상세한 시나리오가 그려진다는 것이 특징인데, 그럴 때면 나도 모르게 휴대폰을 들고 '이혼 시선', '이혼 후 생활', '아이 어릴 때 이혼'등을 검색하곤 했다. 검색어는 점점 구체화되었고 새벽녘까지 온갖 사례들을 읽었다.


 손바닥만 한 화면 위로 많은 사람들의 이야기가 끝도 없이 펼쳐졌다. 손가락이 움직일 때마다 나와 비슷한, 나보다 덜 한, 나보다 더한 사람들의 이야기가 스쳐 지나갔고 나는 때로는 안도하고 때로는 불안했다.

 이런 식의 검색은 정보를 얻기 위한 행동이 아니었다. 나는 그저 내가 상상하는 상황들을 미리 겪은 사람들을 보며, 생각보다 그들이 잘 살고 있다는 것을 확인하고 싶었던 것 같다.


 서두에 언급한 것처럼, 결국 이런 건 내게 딱히 도움이 되지 않았다. 밤새 휴대폰을 붙들고 있던 탓에 다크서클만 진해졌고 머리만 아팠다. 특히 소셜 게시판이나 카페 등의 글을 보고 나서 더 우울해졌는데, 그곳의 무분별한 댓글들 때문이었던 것 같다.

 진심 어린 조언이나 공감도 많았지만, 익명을 빌어 다른 이들의 상황을 일반화하거나 위로랍시고 아무렇게나 내뱉은 말들이 꽤 많았다. 내게 한 코멘트가 아닌데도 그걸 읽는 것 만으로 상처받았다.


'평범하게 사는 것이 가장 잘 사는 것이다'에 대한 반문


 이런 경험을 이후에도 몇 번을 더 반복하고서야 나는 쓸데없는 검색질을 그만두었다. 결국 내가 이혼을 안 할 것도 아니고, 이걸 무를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과거로 돌아가 결혼을 안 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니 말이다. 또한 어느 이혼 관련 글에 달린, '어쨌든 평범한 삶은 글렀다'는 누군가의 댓글에 기분이 언짢아져 다신 이런 걸 찾아보지 않겠다고 결심하기도 했다.


 '평범하게 사는 것이 가장 잘 사는 것이다'라는 말을 가끔 들었다. 그런데 나는 이 평범함이 사실 제일 어려운 것 같다. 왜냐하면 평범함이란 곧 '적당히'를 의미하는 것이고 나는 어느 한쪽에도 치우치지 않고 그 평형을 잘 유지하기가 힘들기 때문이다.


 적당한 학교를 나와 적당히 먹고살만한 직업을 갖고, 특별히 모나지 않은 사람을 만나 남들처럼 아이 한 둘 낳고 평범하게 살아간다는 것이 진짜 '평범한' 것일까? 직업도, 결혼도, 임신도 다 누군가의 선택인 것이지만 사실 하고 싶다고 해서 다 되는 것도 아니지 않냔 말이다. 그리고 대체 이런 조건이 왜 평범의 기준이 되었을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누구나 다 하니까? 정말 누구나 다 한다고?

 그럴 리가.


 '평범함'이라는 단어가 요구하는 남들만큼 해야 한다는 압박, 다른 이들과 '비슷하게' 사는 것이 미덕이라는 믿음, 특정 상황에서 대부분의 사람은 이렇게 한다는 '보통'이라는 어려움.


 이런 것이 내게만 어렵게 느껴지는 것은 아닐 것이다. 특히나 인생의 큰 선택 _지금 나에게는 이혼인_ 할 때 아무런 고민 없이, 다른 사람들은 어떻게 할까?라는 질문조차 없이, 자신의 마음이 시키는 대로 바로 결정하는 사람들이 얼마나 될지 궁금하다.

 내 경우 마지막 순간까지 경우의 수를 따져 내 선택이 가장 극단에 있지 않길 바라며 이곳저곳 자문을 구했고 망설였기 때문에 더욱 그러하다. 이혼의 과정을 하나하나 거치면서도 마찬가지였다.

 그런데 결론은, 결국 그 모든 선택의 순간에 어느 누구의, 혹은 다수의 결정이 내게 최선의 답이 되어주지 못했다는 것이다. 내게 가장 합당한 방식은 내가 제일 잘 알았다.


 어느 누구의 삶도 그 어떤 누군가의 것과 같지 않고, 완벽히 같은 상황은 되풀이되지 않으며, 이를 대하는 사람 또한 각기 다른 사고체계를 갖고 있다. 그러니 이제는 '다들 그렇게 사니 너도 힘내' 같은 맥 빠지는 말은 되도록 듣고 싶지 않다.


 이번 일을 겪으면서 또 하나 크게 깨달은 것이 있다면, 다른 이에게 피해를 주지 않기 위한 규범이나 도덕, 사회적 윤리가 적용되어야 할 상황이 아니라면 마음이 시키는 대로 하는 것이 옳다는 것이다. 특히나 그것이 나의 행복을 좌지우지하는 일이라면 더더욱 평균적인 것을 선택함으로써 어려움을 감수할 필요는 없다.

 모든 가정에는 나름의 문제가 있고, 남자들은 원래 그렇다는 등의 이야기는 내 기분을 더 최악으로 만들었을 뿐이다. 그걸 참아내며 산다는 건, 내 기준에서는 자기 학대이기 때문이다.


숨을 크게 쉬고 밖으로 나가자


 가정법원의 복도에서 재판이나 기일참석을 기다리는 사람들을 스쳐 지나갔다. 누군가는 화가 잔뜩 나있었고, 누군가는 울고 있었고, 누군가는 무표정했다. 변호사에게 화를 내고 있는 사람도 있었다. 그날 나는 어떤 표정을 짓고 있었는지 모르겠다.


 단지 눈물을 억지로 참으며 가정법원을 걸어 나오던 그날의 공기는 코 끝에 선명하다. 뜨거운 여름날의 공기에 매연냄새가 났다. 내가 코를 훌쩍이는 것은 다 이 망할 놈의 차들 때문이라 위로하며 친구들을 만나러 가던 그 횡단보도의 장면도 또렷하게 기억이 난다.

 나만 빼고 거칠 것 없이 희고 까만 줄무늬를 경쾌하게 지나던 사람들. 그 아무렇지 않은 일상 속에 나만 데굴데굴 굴러 떨어진 것 같던 기분. 내게 그토록 어려운 '평범함'처럼 느껴지던 그 사람들은 정말 평범한 삶을 살고 있는 걸까?


 조정 기일에, 현실적으로 이것이 최선이라 생각하면서도 마음이 완전하지 않아 기일을 미뤘던 것은 잘한 일이었다. 내가 나를 위로하기 위해 충분히 아파할 시간을 갖고, 내 마음의 속도에 맞춰 이혼을 진행하는 것이 이로웠기 때문이다.


 내키는 대로 시골에 온 것은 더 옳았다. 아무렇지 않은 얼굴을 하고 사람들 사이에 섞여 있는 것은 나를 더 힘들게 했을 것이다. 이혼을 마주하며 널브러지고 질질 짜던 내가, 오롯이 나와 아이의 안녕을 위해 도망쳐 살기 위한 방법을 모색했다. 책과 글을 무기 삼아 마음의 전투태세를 갖추고, 이제는 이전보다 훨씬 의연한 태도로 상황을 바라본다.

 여전히 상처는 시도 때도 없이 올라오고 좌절부터 인정까지의 모든 단계를 여러 번 반복하긴 지만, 그 횟수와 강도는 확연히 줄어들었다. 그럴 땐 숨을 크게 쉬고 밖으로 나가서 내 인생의 쉼표 같은 이 시간을 오롯이 즐기려고 노력 중이다.


  내 의지와 선택이 가장 중요하다는 것을 상기시키며 인생의 우선순위를 점검한다. 나는 의미 있게 자아를 가꾸고 내적 성장을 이루며 살고 싶다. 어차피 이혼은 이미 벌어진 일이고, 이를 잘 받아들이기 위한 눈물겨운 노력이 나름 효과가 있다고 스스로를 격려하기도 한다.


 만일 내가 세상이 말하는 평범함에 속하는 것이 아니라면, 차라리 나는 매우 비범하게 잘 사는 싱글맘이 되기로 결심해 본다. 어차피 중간 그즈음을 맞추는 노력보다, 조금 튀는 것이 내겐 훨씬 편하다. 또한 '다들 그렇게 산다'는 사람들에게 예외적인 케이스를 하나 더 추가함으로써 생각보다 삶이 그렇게 단순하고 일반적이지가 않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혹시 아는가, 내가 '평범함'을 말하는 사람들 보다 훨씬 '평범한 행복'을 누리며 살게 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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