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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제야 Jul 06. 2023

의미, 책임 그리고 자유

빅터프랭클과 외할머니

 마치 패잔병처럼 도피하던 그 처음에, 나는 내 인생이 망했다고 생각했다. 그때 느꼈던 막막함과 숨 막히는 분노, 압박감, 삶에 대한 냉소에 자아가 무너지는 듯한 느낌이었다. 그 모든 부정적 감정 속에서도 특히 이 상태가 영원히 지속될 것 같았고, 나는 결코 이 상처를 이겨낼 수 없을 것 같은 느낌이 가장 무서웠던 것 같다.


 분명히 나는 가끔씩 문득 가슴이 답답하고 괴롭다. 여전히 그들과의 소소한 에피소드가 떠오르면 기분이 상하고, 그 자질구레하고 말하기도 짜치는 것들을 어떻게 해소해야 할지 고민한다. 그러나 확실한 것은, 이전과는 분명히 다른 시선과 태도로 현실을 본다는 것이다.





 살면서 이토록 나의 내면에 주의를 기울인 적이 있던가.

 그동안 인생에서 마주한 여러 가지 힘든 일들을 대충 넘겨버린 적이 얼마나 많았는지 생각해 본다.

 실제로 그랬다. 고통이 완벽히 내 것이 되기 전에 다른 것에 한눈을 팔며 의식 저 편으로 밀어버리던가, 아픔을 상쇄할만한 무언가를 찾아 감정을 대체하는 식으로 해결했던 적도 많다. 일상을 유지하려면 하염없이 아프고 있을 여유가 없다는 핑계로.

 문제는 항상 이런 경우 뒤늦게 부작용이 생겼다는 것인데, 결론은 다른 것으로 아무리 대체해 봐야 완벽히 해결되지 않은 시련은 다른 시련으로 돌아온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사람은 사람으로 잊는다고 한다. 내 생각에 이것은 분명한 시간차를 두고 애도의 기간을 가진 뒤에 가능한 일이다. 때로 헤어진 사람을 잊기 위해 재빠르게 누군가를 만나면, 대체로 이전 사람의 단점을 보완하는 부분이 엄청나게 긍정적으로 보이면서 아주 치명적인 단점을 무시하게 되기 때문이다. 나쁜 놈을 잊으려다 더 나쁜 놈을 만나게 되는 경우가 이래서 생기는 것이다.

 혼자 생각에 빠지는 것이 두려워서 끊임없이 사람을 만나거나 술자리를 갖는 것도 마찬가지다. 막상 그 자리에서는 기분전환이 될지 몰라도 다시 혼자가 되었을 때 남는 숙취와 공허는 나만의 몫이니 말이다.



왜 살아야 하는지를 아는 사람은 그 어떤 상황도 견뎌낼 수 있다.
- 니체


 인생의 위기를 맞이하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렇듯, 나 역시도 처음에는 '왜?'를 반복했다. '왜 나에게 이런 일이', '왜 내 인생은 이 모양이지' 등 고통의 이유를 묻는 질문과 원망이 정신을 갉아먹었다. 자꾸 과거를 복기하고 회상하며 문제점을 찾거나 비합리적으로 상황을 비틀어 해석하다 보면 그 끝엔 인생에 대한 허무함만 남았다.

 점차 현실을 받아들이고 어떻게 이 상황을 해결할 것인지에 대한 구체적인 질문을 하기까지 자는 것도, 먹는 것도 의미가 없었다. 솔직히 그런 것들이 다 무슨 소용인가 싶었다. 그 시간이 나를 얼마나 나락으로 끌고 갔었는가는 거울 속 퀭한 몰골과 줄어든 몸무게가 증명했다.


 솔직히 나 혼자였다면 아직도 이불을 머리끝까지 뒤집어쓰고 있었을지도 모를 일이다. 그러나 내겐 오롯이 자신의 삶을 의탁하는 어린아이가 있다. 내게 얼마나 크고 막중한 책임이 있는지를 일깨우고, 나를 통해 세상을 배우며 자아를 키워나가는 것을 지켜보며 나는 다시 삶의 우선순위를 재정립하게 되었다. 사실상 이 작은 아이가 내가 어떠한 사람이 되어야 하는지를 가르치는 것이다.  


 엄마로서 주어야 할 무조건적인 사랑 말고도 알려주어야 할 것이 많다. 올바른 도덕적 판단 기준, 어떠한 선택이든 반드시 책임이 따른다는 공정하고 정의로운 법칙, 삶에 의연하게 대처하는 용기, 시련을 극복하는 끈기, 그리고 이러한 것들을 토대로 자신의 길을 선택하는 정신적 자유.


 사실 내가 아무리 노력한다 한들 아빠의 자리까지 완벽히 채울 수는 없다는 것을 인정한다. 결국 내 아이도 자신이 선택하지 않았음에도, 이미 일어난 특정 고통과 결핍을 받아들여야만 할 것이다.

 그러니 내 아이의 어린 자아가 제대로 서려면 나는 나부터 바로잡아야 한다. 이혼에 대한 어떠한 설명과 핑계도 도움이 되지 않을 것이다. 나는 아이에게 상황을 왜곡하여 받아들이게 함으로써 거짓 웃음을 짓게 하고 싶지 않다. 그렇다면 가장 좋은 방법으로는 내 삶을 통해 아이를 설득하는 수밖에 없다.


  삶을 통한 본보기는 평생에 걸쳐 이루어야 할 일이다. 이는 단순히 그럴싸한 말이나 특정 행동으로 전달되는 성질의 것이 아니므로, 결국 내가 삶을 제대로 살아내며 정신적으로 유의미하게 성장한 내면을 갖추어야만 가능한 것이다.


 '... 인간에게 모든 것을 빼앗아 갈 수 있어도 단 한 가지, 마지막 남은 인간의 자유, 주어진 환경에서 자신의 태도를 결정하고 자기 자신의 길을 선택할 수 있는 자유만은 빼앗아 갈 수 없다는 것이다.
(중략)
근본적으로는 어떤 사람이라도, 심지어는 그렇게 척박한 환경에 있는 사람도 자기 자신이 정신적으로나 영적으로 어떤 사람이 될 것인가를 선택할 수 있다는 말이다.'

<죽음의 수용소에서, 빅터 프랭클, 이시형 옮김, 2005. (P.120~121)>


 요즘 빅터 프랭클의 저서를 여러 권 읽으며, 왜 그토록 많은 심리학자들이 그의 로고테라피 이론을 인용하는지, 특히 영성가들이 '고통도 축복이다'라는 개념을 설명할 때 그의 자전적인 저서를 예시로 드는지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기존 인간 사회의 모든 가치_돈, 명예, 관계 등_이 모두 사라지고 벌거벗은 몸뚱이만 남겨진 수용소에서 그는 두 종류의 인간 군상을 목격한다. 그토록 척박한 환경에서 어떤 이는 내면세계의 도덕적, 정신적 자아가 무너진 채 짐승처럼 타락하는 반면, 극소수는 이러한 최악의 상황에서도 마지막까지 자신의 삶에 의미를 부여하며 위대한 가치를 쟁취한다. 이를 통해 프랭클 박사는 삶의 의미와 그에 따르는 책임은 심리적 혹은 육체적 요인에 있는 것이 아니라, 보다 '정신적인 부분에서의 자아'에 달려있다는 것을 강조한다.

 

 아주 극단적으로 인간의 가치가 말살된 수용소 생활에서도 그를 살게 했던 삶의 의미와 목적의 중요성을 강조하며, 프랭클 박사는 '왜 살아야 하는지를 아는 사람은 그 어떤 상황도 견뎌낼 수 있다'는 니체의 말을 자주 인용한다.



삶의 물음에 대답할 수 있는 것은 우리가 삶에 책임을 질 때 가능하다.
<그럼에도 삶에 '예'라고 답할 때, 빅터 프랭클, 마정현 옮김, 2020. (P.85)>


 로고테라피에 관한 책을 읽다 보니 돌아가신 외할머니 생각이 났다. 돌아가신 지 20년 넘은 지금에서야 그분이 얼마나 충실히 '의지의 자유'를 실천하셨는지를 깨닫는다. 할머니야 말로 프랭클 박사가 그토록 강조하던, 인간의 자기 초월과 주체성을 몸소 실현한 분이었다는 것도.


 할머니는 중풍을 오래 앓으셨고, 86세로 돌아가시기 전까지 우리 집에 계셨다. 할머니가 돌아가신 그 집, 엘리베이터가 없는 5층짜리 단층 아파트의 3층. 어렸던 내가 단숨에 뛰어오르고 내려가던 그 계단 때문에, 할머니는 마지막 2~3년간 거의 집안에만 계셨다. 중풍을 앓는 80대 노인에게 그 계단은 에베레스트나 마찬가지였다.


 방안의 창을 통해 보이는 집 앞 풍경이 세상의 전부였고, 그 조차 자연의 변화도 제대로 보이지 않는 도시 풍경이었으니 할머니의 시간은 얼마나 더디게 흘렀을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와 다른 모든 가족들이 기억하는 할머니는 단 한 번도 자신의 처지에 대해 불평을 하거나 가족들의 마음을 힘들게 한 적이 없다. 아니, 나는 내 평생 할머니가 언성을 높이는 것을 결코 '단 한번'도 본 적이 없다.


 그때의 나는 정말 몰랐다. 할머니의 그 고요하고 묵직한 성품은 모두 인내와 이해로 이루어진 것이었다는 걸.

 

 할머니는 철저히 잘 짜인 규칙적인 생활을 하셨다. 돌아가시기 얼마 전까지, 내가 아는 한 그 루틴이 깨어진 적은 없다. 새벽에 일어나 이불을 가지런히 개어 놓으시곤, 책을 읽고 기도를 하셨다. 아침저녁으로 늘 깨끗이 씻고 작은 참빗으로 짧은 은색 머리를 곱게 빗었다. 점점 행동이 느려져도 이 모든 행동에 흐트러짐이 없었다.


 할머니는 훈장님의 딸이었다. 양반 중의 양반이었다는 증조할아버지의 가르침 덕분에 할머니가 평생을 의연하고 꼿꼿한 태도로 사신 것일 수도 있다.

 그 정적이던 삶의 마지막 순간까지 할머니는 침착했고 정신이 또렸했다. 돌아가시기 며칠 전, 누워계신 할머니에게 엄마는 죽음이 두려운지 여쭤보았다고 했다. 할머니는 전혀 무섭지 않다고, 평화롭다고 하셨단다. 할머니는 꿈에서 천사를 보았다던 며칠 후, 늘 계시던 그 방에서 가족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정말 평화롭게 임종하셨다.

 

 이 글을 쓰며 엄마에게 여쭤보니 할머니의 중풍이 시작된 것이 환갑 전후 즈음이었다고 한다. 자그마치 거의 30년간 그렇게 사신 것이다. 꽤 심한 중풍이었기 때문에 할머니의 세상은 점차 세상과 단절되고, 고립되어 갔을 것이다. 죽음을 예측할 수 없으니 이 얼마나 기약조차 없던, 창살 없는 감옥이었을까.


 세상 사람들은 결코 알지 못할, 그 단층 아파트 3층 어느 방에서 죽음을 맞이한 중풍을 앓던 노인의 삶이 얼마나 위대하고 가치가 있었는지를, 25년이 지난 지금 그분의 손녀가 고백한다.

 그럼에도 할머니는 누구보다 충만한 인생을 살았다고. 그 누가 보지 않아도 늘 방을 깨끗하게 정리하고, 단정한 차림으로 스스로를 위해 책을 읽고, 기도를 했다. 그 어떤 것도 원망하지 않고 불평하지 않으며, 청빈하고 품위 있는 성품을 갖는 것이 얼마나 위대한 것인지를 나는 이제야 깨닫게 되었다. 녹록지 않은 삶의 모든 순간에 성실하게 답하며, 할머니는 자신의 삶에 책임을 졌다.


 갑자기 닥친 중풍이라는 신체의 병, 그로 인한 비자발적인 고립과 박탈을 할머니가 어떻게 이겨냈는지를 생각하니 마음이 아프면서도 크나 큰 존경과 자부심이 든다. 아무리 건강한 신체와 백만금을 가졌더라도 텅 빈 영혼으로 죽음을 두려워하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가. 내가 이것을 확실히 아는 한, 할머니의 삶은 정말 의미가 있다. 나는 이 이야기를 언젠가 내 아이에게 해 줄 것이다.


 할머니는 지금의 나에게 어떤 말을 해주고 싶을까. 아마 여느 때처럼 별말씀 없이 곱게 정리된 서랍에서 '스카치 캔디'를 하나 꺼내 주실 것 같다. 그리고 조용히 무릎을 내어주시겠지. 내가 눈물을 그치고 웃으며 다시 걸어 나갈 때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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