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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제야 Jul 10. 2023

결혼의 끝

시작과 끝, 그리고 또 다른 시작


 이혼은 생각보다 더디게 진행된다.

 기다림과 초조함이 시간의 빈 틈을 메우는 것이 이혼이다. 상호 간의 원만한 합의를 전제로 한 합의이혼조차 아이가 없어도 한 달, 아이가 있으면 세 달의 숙려기간을 법으로 규정한다. 혼인신고는 서류 한 장으로 후딱 끝내는 것에 비해 이혼은 넘어야 할 산이 많고도 많다. 사람이 폭삭 늙어버릴 만큼 복잡하고 어려운 절차를 겪을 바에 '되도록 헤어지지 말고 잘 살아봐라', 뭐 이런 의도일 수도 있겠다만 아무튼 이혼은 힘들다.


 법이 원래 이런 건지 가정법원이 바빠서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서면이 오고 가는 것이나 사실증명이나 기타 법원에 요청한 것들이 처리되는데 보통 한 달이 기본이다. 이혼 소송을 보통 일 년 이상 잡아야 한다는 것도 법원의 처리 속도 때문일 것이다. 나는 다행히 조정일이 빠르게 잡힌 인데, 어떤 사람은 소장을 접수하고 몇 달 동안 소식이 없어 기일신청까지 했어야 한다는 것을 보아 법원의 시계는 더디게 움직이는 것이 분명하다.





 결혼을 할 때는 하루하루가 아쉬울 만큼 시간이 빠르게 갔다. 날을 잡자마자 '요이땅!' 하며 결혼 준비 체크리스트 따위를 만들어 하나하나 클리어할 때마다 뿌듯해하던 그때. 물론 날을 잡는 것도 예식장의 스케줄에 따른 것이었다만, 집이며 혼수, 웨딩 촬영이며 청첩장, 신혼여행까지 준비할 것이 많기도 했다. 나름 간소하게 한답시고 예물도 생략하고, 살림살이도 아주 기본적인 것만 준비했음에도 매일같이 바빴던 기억이 난다.


 우리의 결혼식장은 그의 어머니가 정했다. 그와 내가 식장을 보기도 전에, 그녀는 자신이 여러 번 가 보았다던_ 위치나 음식이 꽤 괜찮다는_ 그곳에 예약금을 걸고 우리에게 통보했다. 나는 사실 성당에서 결혼식을 하고 싶었는데, 예식 시간이 길고 하객들을 고려해서 반드시 웨딩홀에서 해야 한다는 그의 아버지 의견에 일반 웨딩홀을 찾아봐야만 했다.


 나는 결혼식장에 불만이 없었다. 어차피 결혼식은 부모 손님이라지 않는가. 어차피 웨딩홀은 다 거기서 거기니 큰 의미를 두지 않았기 때문에 나는 그의 어머니 의견을 따랐다. 단지 유일하게 마음에 걸렸던 것은 예식장을 확인하기 위해 방문했을 때 직원의 태도였다. 어머님이 오셔서 계약금을 걸고 가셨다고 말하는 직원의 표정과 말투, '아 그분~' 하는 그 미묘한 태도에 나만 민망했던 것은 기분 탓이었을까. 모든 것이 아름다웠던 그때, 나는 이 기분도 나의 '예민함'으로 치부하며 넘겨버렸다.


  적당한 인원에 적당한 분위기로 잘 진행된 결혼식은 행복했다. 지금은 휴대폰 용량을 20프로쯤 잡아먹던 결혼식과 신혼여행 사진을 모두 지워버렸지만, 어쨌든 그날의 우리는 반짝반짝했다. 이건 사실이다. 싱싱하게 무르익은, 인생의 빛나던 순간을 나는 결코 부정할 수 없다.



멀어져야 내가 산다


 이제야 하는 이야기지만 나중에 그의 동생은 성당에서 결혼식을 올렸고, 나는 속이 상했다. 그도 어쩔 수 없이 비교되는 상황에 그의 어머니에게 불만을 토로했던 것으로 안다. 내겐 단칼에 무베듯 안된다고 했던 것들이 왜 동생에게는 가능한 것이었을까? 아마 그만큼 장남으로서 그들이 그에게 부여했던 의미가 깊었던 것이리라.

 사사건건 비교되던 동생의 결혼을 지금 돌이켜보면 그들 모두 가엾다는 생각도 든다. 가부장적인 가족의 흐름 내에서, 내 아이에게 '장손'이라는 명분 하에 집착하지 않기만을 바랄 뿐이다.  


 얼마 전 글에 그가 짐을 싸서 나간 이야기를 썼다. 휑하게 비어버린 옷장 한 구석에 결혼 예복이 덩그마니 남아있었다. 나는 집을 정리하면서 그것을 아무 미련 없이 쓰레기봉투에 넣어 내다 버렸다. 그때의 빛나던 우리를 상징하는 그 모든 것이 내게도 의미가 없다. 나는 이 쓰레기를 남기고 간 것에 더욱 화가 났다. 내게 이혼을 결심하게 한 네가 '감히' 내게 너와의 시작을 상징하는 것들을 남기고 간 것이. 이제는 그때의 화도 무의미하다.


 우리는 서로 매우 상처 입었음이 분명하고, 추억이고 나발이고 서로에게서 멀어져야 내가 산다. 얼마나 슬픈가. 매일을 함께 하고 싶어 갖은 노력을 하며 '결혼'이라는 것을 이루던 두 사람이, 서로가 최대한 멀어지기 위해 안간힘을 쓰는 지금이.   



상실의 의미


 실패와 상실, 이혼에 대한 이야기를 써 내려가면서 나는 '일방적인' 어쩌면 한쪽의 이야기를 쓰고 있다. 내 이야기에 등장하는 그와 그 가족의 입장은 이 글에 없다. 그러나 이 글에 등장하는 우리 모두는 이미 바스러져버렸거나 죽어가는 영혼을 부여잡고 발버둥 치고 있음이 분명하다.

 그러나 개인의 경험은 중요하다. 화자로서의 나와 내가 겪은 이야기를 풀어감으로써 내가 겪은 상황들이 어떠한 영향을 미치는지는 _ 그것이 단순히 나뿐만 아닌 다른 사람들에게도_ 분명한 의미가 있을 것이다. 파편적으로 풀어내는 나의 이야기가 어느 누군가에게는 위로가, 때로는 경고음 울리는 워닝(warning)이 될 수도 있다.  


 나는 내가 쓴 글을 시간차를 두고 다시 읽는다. 마치 남처럼, 나를 모르는 사람처럼 말이다. 그리고 다시 생각해 본다. 나는 합당한 길을 걷고 있는가? 내게 이 고통이 어떤 의미가 있는가?


  그 의미가 무엇이든 나의 언어로 풀어낸 솔직한 감정들은 분명히 뿌리를 내린다. 고독과 슬픔을 자양분 삼아 분명히 자라고 있다. 나는 나대로도 꽤 괜찮다. 그렇기에 지난 시간들을 모두 의미가 있다. 분명히 좋았고, 행복했던 나날들이 있다. 그러니 우리가 함께 했던, 아직도 기억 속에 생생한 시간들을 애써 나쁘게 왜곡할 필요도 없다. 좋았던 것은 좋았던 것이다.

 

 결혼식이 그토록 의미가 있었듯 이혼 또한 의미가 있다. 함께여도, 다시 우리가 각자 혼자가 되어도 지난 시간을 모두 없던 것으로 되돌릴 수는 없다. 내가 우리의 헤어짐을 토대로 다시 홀로 서듯 그도 그러길 바란다. 또 다른 사랑을 찾던, 혼자의 삶을 즐기던 그 가치가 무엇이든 간에 그가 뚜렷한 의미를 찾길 진심으로 바란다. 그래야 그가 아버지의 역할을 제대로 할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가 있어 행복했고 함께여서 좋았던 시간들 또 어떤 면에서 내 남은 삶에 힘을 부여해 줄 것이다. 나는 분명히 사랑하고 사랑받던 시절이 있고, 그것은 가치가 있으니까. 그러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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