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별을 예고했던 며칠 전부터 우리를 아는 거의 모든 사람들이 온 마음으로 작별인사를 해주었다. 아이에게 과자를 한 아름 사다 주시거나, 조막만 한 아이 손에 용돈을 꼭 쥐어주시기도 했고, 근사한 저녁을 함께 하기도 했다. 많은 분들이 이 한 여름 고생해서 수확한 농작물을 싸주셨다. 서울에 가도 한동안 야채 걱정이 없을 정도로.
감사하다는 말로는 부족할 정도로 이곳에서 많은 것을 받았다. 무엇보다 내 아이가 이곳에서 너무나 큰 사랑을 받았음에 감사하다. '한 아이를 키우려면 온 마을이 필요하다'는 말을 온몸으로 경험했다. 정말 그랬다.
천방지축인 꼬마에게 자신들의 마당을 내어주고, 아이가 풀을 뽑고 갓 자라나는 과일을 따버려도 오히려 잘 익은 것들만 골라 몇 개씩 손에 들려 보내주던 푸근한 마음씨.
서울에서는 불가능할 이웃들과의 왕래가 여기서는 가능했다. 서울 집에서 3년 이상 살면서도 이웃집과 제대로 인사를 나눈 적이 없는 것 같은데, 이곳에서는 고작 몇 달간 오랜 친구 같은 관계들을 맺게 되었다. 나는 그 흔한 시골동네의 텃세 같은 것은 겪은 적이 없다. 나는 이 마을의 딸이자 손녀였다.
이곳에서 떠나는 날 아침에도 늦잠을 잤다. 처음으로 화장을 하고 혹시 몰라 가져왔던 화사한 옷을 입었다. 예쁜 모습으로 인사를 드리고 싶었다.
아침 일찍 열무집 아주머니가 오셔서 인사를 했다. 항아리 아줌마와 나는 조금 울컥했지만, 자주 연락하기로 했다. 오며 가며 만났던 다른 이웃들에게도 인사를 했다.
"이제 진짜 가요"
성당에 다녀오니 김 씨 아저씨가 오셨다. 아저씨는 이 뙤약볕에 수박과 토마토, 감자를 배낭 가득 지고 땀범벅이 되어 또다시 얕은 언덕길을 걸어왔다. 아저씨가 선물해 준 채송화. 작은 종지에 담긴 내 이웃의 마음과 이곳의 햇살을 가득 지고 내 삶으로 돌아간다. 식물 살인마인 내가 잘 키울 수 있을진 모르겠지만, 조만간 집에 장식용으로 두었던 화분을 들고 와서 여러 가지 꽃을 심어가기로 약속했다. 초보 농부이지만 마을의 꽃밭을 책임지고 있는 아저씨만큼 믿을만한 사람이 없다.
마을 입구의 채송화를 집으로 데려간다
꼬꼬집에 인사를 하다가 눈물이 났다. 내 집처럼 드나들던, 바로 앞 논밭 풍경이 액자처럼 담겨있는 작은 마당. 아기 고양이들과 거위들에게도 인사를 했다. 이별을 모르는 아이만 해맑고 우리는 모두 조금씩 울었다.
마지막으로 집 근처를 한 바퀴 돌며 사진을 찍었다. 뜨거운 햇빛 덕분에 조금 고인 눈물이 그다지 이상하지 않아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짐을 차 한가득 싣고 떠날 채비를 한다. 현관문을 나서며 집안 곳곳을 눈에 담는다.봄과 여름, 두 계절의 파릇한 풀냄새가 배어있는 곳. 밤마다 글을 쓰던 책상, 개구리들이 들어오던 창문 밑 작은 틈새. 이 공간에 머물렀던 가족들과 이웃들의 웃음소리, 아이가 거실에서 타고 놀던 자동차 바퀴의 '도르륵' 소리가 들리는 것 같았다.
작은 룸미러에 비추는 다리를 마지막으로 도로로 나온다. 눈앞에는 겹겹이 쌓인 산, 그리고 새파란 하늘. 눈물이 고인 얼굴로 나는 웃었다. 이곳에서 정말 예상치 못한 행복을 만났듯, 다시 돌아가는 내 삶에도 분명히 또 다른 행복이 찾아올 것이라는 확신이 들었다.
오른쪽의 오이 농장을 재빠르게 지나자 마침내 점처럼 작아진 그리울 나의 하얀 집. 웃으며 안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