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다리 앞, 마을 초입의 모퉁이 집에는 김씨 아저씨가 산다. 나는 아저씨의 이야기를 꼭 글로 쓰고 싶었다. 아저씨는 내가 이런 글을 쓰는지도 모를 테고, 내가 감히 저분의 이야기를 써도 될지 모르겠지만 말이다.
마을에 들어오고 나가려면 김씨 아저씨의 하얗고 낮은 단층집을 지나야 한다. 내가 이곳에 처음 왔을 때, 그 집은 마당이 휑하고 인기척도 없어 비어있는 집인 줄 알았다. 매일같이 낮은 담장_ 공간의 경계를 구분 짓는 정도의, 허리춤까지 오는 녹색의 성근 철망_을 지나 산책을 하고, 마트에 오갔는데도 초반 몇 주 동안은 이 집에서 사람을 본 적이 없다. 어느 날부터 아무것도 없는 흙색 고랑에 열심히 물을 주는 아저씨가 보이기 시작했는데, 정확히 언제부터였는지는 기억이 나지 않는다.
아저씨는 밭에서 일을 할 때 음악을 튼다. 주로 올드 팝이나 감성적인 발라드 종류인데, 따듯한 햇볕이 내리쬐는 밭 한복판에서 모종 하나하나에 정성껏 물을 주고 꽃을 심는 모습이 참 인상적이었다. 유난히 피부색이 까만 아저씨는 이 동네 토박이처럼 보였지만 여느 동네 사람들과는 느낌이 조금 달랐다.
오후 시간이 되면 골목 어귀에서 음악 소리가 흘러나온다. 아저씨가 일을 한다는 신호이다. 늘 일에 몰두하고 계셨기 때문에 딱히 인사를 나누진 않아도, 오가는 길에 아저씨 마당의 작물들을 구경하며 시간이 가는 것을 실감했다.
며칠간 서울에 다녀온 어느 날, 모퉁이의 하얀 집은 그 낮은 담만큼 옥수수가 자라났고 흙밭은 어느새 초록으로 덮여있었다. 우리의 우정이 시작된 것도 이즈음이었다. 아이와 그 하얀 집을 지나 산책을 가던 길, 문간에 앉아 쉬고 있던 아저씨에게 인사를 건넸다. 우리의 인사에 아저씨는 고개를 끄덕하며 어색하게 웃었다.
날씨가 점점 더워지면서 아저씨와 자주 마주쳤다. 우리는 주로 선선한 저녁즈음 산책을 했고, 그때마다 아저씨는 마당에 나와있었기에 오가는 길에 자주 만났다. 아저씨가 2개월 된 아기 강아지를 키우고 있다는 것도 이때 알게 되었다.이 동네에서 거의 유일하게 강아지를 집안에서 키웠고, 예쁜 이름을 지어주고 딸처럼 애지중지했다. 어느 날 나의 부모님이 아이를 데리고 산책을 나가신 길에 아저씨네 아기강아지를 만나 노는 바람에 본격적인 대화의 물꼬가 터졌던 것 같다.
아저씨는 몸이 아팠고 _대사질환의 일종으로 투병 중_ 외국에서 사업을 하다가 쫄딱 망하고 병을 얻어 고향인 이곳으로 돌아왔다고 했다. 그제야 아저씨의 이상하게 야윈 팔다리가 눈에 들어왔다. 그 느리고 둔한 동작도, 유난히 검은 피부도 병 때문이었다. 농사를 지은 지는 고작 3개월이라고 한다. 농촌 토박이인 고향 친구들의 도움으로 이것저것 심어 키워냈다지만, 아무리 그래도 초보 농부가 어떻게 저리 훌륭한 온갖 작물들을 키워냈는지 그저 놀라울 뿐이다. 매일을 꾸준히, 온 마음을 다해 하나하나 물을 주고 돌보았기 때문이리라.
우리 가족과 아저씨는 금세 친해졌다. 처음 본 사람들에게는 일부러 싹수없게 대한다 했던 아저씨는, 우리 가족에게 친절했다. 말 수도 적고, 투박하고 꾸밈없는 말씨에 흔한 말로 '츤데레'였다. 우리를 마당에 초대해서 아이가 강아지와 실컷 놀게 해 주고, 원두를 갈아 커피를 내려주고, 신경 써서 음악을 선곡했다.
'미친 새끼'라 칭하는 아저씨의 고향 친구분이 갖다 준 모종들은 종류가 참 많고 많았다. 친구분이 헷갈리는 바람에 청양고추 모종만 100개 넘개 가져온 탓에 매운내가 진동한다며 웃었다. 다이소에서 이것저것 씨앗을 사다 심어 보기도 했다고 한다. 초보 농부가 온 마음으로 키워낸 다양한 야채들은 서툴지만 풍성하게 자랐고, 그는 우리에게 가장 좋은 수확물을 골라 내어주었다.
초보 농사꾼의 가지런한 밭
아저씨의 집은 잘 정돈된 밭만큼 깔끔하다. 벽에는 그의 젊은 날, 빛나던 지난 시절이 박제되어 있었다. 형형히 빛나는 눈빛만큼은 지금의 아저씨와 같지만, 그 사진 속 그는 내가 전혀 모르는 사람처럼 느껴져 마치 잡지에서 오려낸 것 같은 느낌이었다. 아저씨는 어떤 삶을 살아왔을까.
그의 이야기 속에는 그가 살았던, 미국에 대한 향수가 가끔 배어 나온다. 블랙커피에 대한, 음악에 대한, 아껴입었던 아르마니 정장과 그곳에서 키우던 강아지 이야기에서 아저씨의 과거를 엿본다.
나는 아저씨에게 구체적으로 어떤 일이 있었는지 모른다. 아저씨도 내게 어떤 사연으로 여기서 이러고 있는지 묻지 않는다. 이상하게 상처받은 사람들은 서로를 알아보는 기분이다. 결코 묻지 않고, 말하고 싶다면 그저 들어주는 것이다.
그는 타지에서 가진 모든 것을 잃고, 대신 병을 얻었다. 아저씨는 결국 비싼 병원비와 약 값으로 한국으로 돌아와야만 했다. 오랫동안 비행기를 타지 않은 탓에 애완견 탑승이 가능한지를 몰랐던 그는, 사랑을 쏟아 기르던 반려견을 다른 사람에게 맡기고 한국행 비행기를 탔다. 바로 앞자리에 앉았던 어느 부부가 강아지를 데리고 탄 것을 보고서야 동반탑승이 가능한 것을 알았다고 한다. 그들을 보면서 무지했던 자신을 자책하며 얼마나 많이 울었는지 모른다고 했다.
아저씨는 아마 좁은 비행기 좌석에 몸을 구긴 채, 그 먼 비행길 내내 울었을 것이다. 무려 10년을 함께 했다는 그 강아지는 아마 아저씨 삶의 분명한 의미이기도 했을 테니까.
나중에 조심스럽게 왜 애견동반탑승을 안 알아보셨는지 물었다. 폭삭 내려앉은 사업에 정신이 없어 미처 생각이 닿지 않았다는 아저씨는, 그래도 부잣집에 강아지를 맡기고 와서 다행이라고 하셨다.
생을 포기하려고 했었다는 아저씨는 아무 미련이 없어 남은 모든 것을 _가재도구며 옷가지 몽땅을_ 다른 이들에게 주고 '죽어버리려고 했다'라고 한다. 그의 과거 이야기는 뜨문뜨문 이어졌는데, 덤덤한 목소리로 읊어내는 삶의 아픔을 들으며 나는 조금 눈물이 날 것 같았다. 이야기의 내용보다도, 생사의 벽을 넘을 만큼 힘들었던 그 오랜 시간 동안 배인 외로움이 아저씨 모습에 고스란히 남았기 때문인 것 같다.
비가 잠시 그친 오후, 아저씨가 우리 집 문을 두드렸다. 양손에는 양배추와 가을 상추 모종이, 앞으로 맨 배낭에서 강아지가 고개를 빼꼼 내밀었다. 아마 우리 집 상추가 몽땅 사망했다는 소식에 가을 상추를 나눠 주러 온 것일 테다.
한 번도 우리 집 쪽으로 와본 적이 없다는, 의외로 수줍음이 많은 아저씨가 여기까지 오는 데는 큰 용기가 필요했을 것이다. 이만큼 우리 가족에게 마음을 열고 찾아와 주었음에 감사한 마음이 든다. 그리고 처음 걷는 길, 우리 집까지의 그 야트막한 언덕도 아픈 아저씨에게는 멀고 힘든 길이었을 것이다. 우리 가족은 아저씨의 방문이 진심으로 고마웠다. 친구들이 놀러 와서 함께 점심을 드셨다는 소소한 이야기도 듣기 좋았다. 좋은 이웃이다.
아저씨는 오늘도 느릿느릿 밭을 오가며 물을 준다. 그가 밭을 돌보는 것을 보면 말로 설명할 수 없는 감정이 올라온다. 말 그대로 작물 '하나하나'에 정성껏 물을 주고 하염없이 돋아나는 잡초를 솎아낸다. 느린 만큼 섬세하고, 단 하나도 대충 하는 법이 없다.
나는 아저씨를 동정하지 않는다. 그저 아저씨의 삶에서 생의 의미를 본다. 감히 말하자면, 아저씨는 강한 사람이다. 인생의 파도가 아무리 아저씨를 후려갈겼어도 그는 다시 땅에 발을 딛고 꽃을 키우고, 강아지를 돌본다. 아무것도 남은 게 없어도 다른 사람들에게 나누어주고 산다.
어느 순간부터 마을 초입 길이 꽃길이 되었다. 이거, 아저씨 작품이다. 나도 그동안 알아차리지 못했는데, 미친 여자 머리처럼 헝클어져있던 쑥색 풀들이 어느새 사라지고 그 자리에 꽃들이 일정한 간격으로 심어져 있었다. 다른 사람들이 볼 수 있게 일부러 집 밖에 꽃을 심는다고 했다. 그의 꽃길은 점점 뻗어나가 어느새 골목길 안 쪽 전봇대 옆까지 꽃망울이 돋아났다.
사람들은 알까. 누군가는 눈길 한 번 주지 않고 지나는 이 꽃들이 얼마나 큰 애정을 받고 커가는지를. 그리고, 이 작고 흔한 꽃 한 송이로 삶의 고통과 외로움을 희망으로 바꾸는 사람이 있다는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