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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제야 Jul 09. 2023

산골짜기의 스머프

episode 08.

 

  문득 하늘이나 산을 멍하니 보고 있으면 나도 모르게 '아, 평화롭네'라는 말이 나올 때가 있다. 폭풍 같은 이혼의 한복판에서 평화롭다는 말이 나오다니 나 조차도 놀라울 때가 있다. 상처의 흔적은 여전히 후끈거리지만, 적어도 이 아픔을 직접적으로 건드리는 것들에서 분리되어 있다 보니 시골생활의 약발이 잘 듣는 느낌이다. 마치 집중 치료실에 들어온 듯, 오롯이 내 상처를 돌보고 소독하고 약을 발라주며 스스로를 돌보는 중이다.


 워낙에 외부의 자극이나 변화가 적은 환경이다 보니 내 감정과 태도가 변하는 것에 집중하게 된다. 물론 이랬다 저랬다 생각도 변하고, 감정의 기복도 많이 겪었다. 좌절감으로 널브러졌다가 어떻게 해결할지를 고민하다가, 에라 모르겠다 싶어 낮잠이나 자다가 또다시 결연하게 글을 쓰게 되는 것이다.  


공기 반 초록 반





 어쩌다 보니 시골에 콕 박혀 혼자 슬프고 혼자 괜찮아짐을 반복하다 보니, 몇 번이고 위축되고 좌절하는 넘어짐의 단계를 거치면서 제법 일어서는 방법을 터득하게 된 것 같다.

 물론 이 과정이 계단 오르듯 단계적으로 되는 것은 아니다. 한참 올라온 것 같다가도 가끔은 맨 아래칸까지 우당탕탕 굴러 떨어지기도 하기 때문이다. 다시 바닥까지 굴러 떨어진 날에는 또다시 우울의 늪을 헤매다가 초콜릿이나 싸구려 와인 한 잔에 주섬주섬 다시 이불 밖으로 나오기도 한다.


 내가 이렇게 심리적인 재활에 힘쓸 수 있는 가장 큰 요인은 기타 사회적인 간섭이 없기 때문인데, 특히 이곳에서는 타인과 비교할 것 없는 나만의 생활이 전부라 더더욱 몰입도가 높다. 완벽히 내 기준에서 명확하고 확실하게 상황을 마주할 수 있다는 소리다.

 아무리 남들이 '이혼이 흔하다, 흠도 아니다' 하더라도 그런 사회적 기준이 문제가 아니라 내가 아프다는 사실이 중요하다. 어느 누구의 상황도 아닌, 지금 당장 내가 겪는 일이니 이것을 어떻게 소화하느냐에 따라 내 앞날이 달라진단 말이다.





 20대까지만 해도 친구들의 고민이 다 고만고만했다. 학업, 취업, 연애 등 우리 모두가 비슷한 고민을 안고 살았고, 우리의 고민이 세상의 전부였던 것처럼 서로가 서로의 카운슬러였다. 망한 수강신청이나 학점에 함께 절망했고, 취업에 실패하면 나도 떨어졌다며 같이 술잔을 기울였다. 클럽에서 밤 새 노는 날엔 서로의 부모님에게 알리바이가 되어주기도 했으며, 누군가가 남자친구에게 차이면 다 함께 눈에 쌍불을 켜고 그놈을 욕해주었다.


 그런데 시간이 흐르며 공통점으로 똘똘 뭉친 이 그룹에서 한두 명씩 이탈하기 시작한다. 같은 학교에서 공부하고 나랑 학점도 비슷하던 누군가는 대기업에, 누군가는 중소기업에, 누군가는 여전히 백수로 남는다. 누군가는 일찍 결혼을 하고, 누군가는 꾸준히 연애를 하며 또 다른 누군가는 여전히 외롭다.

 한 카테고리 안에서 끈끈한 우정을 나누던 친구들이 각기 다른 삶을 살기 시작하면서 알게 모르게 말할 수 있는 것과 없는 것이 구분되었고, 더욱 개인화되고 복잡해지는 서로의 고민에 대해 때로는 억지 위로와 공감이 등장하기 시작한다.


 비가 오던 2000년대의 어느 날, 친구들과 파전집에서 막걸리 몇 통을 비우며 세상의 부조리에 대해 성토대회를 벌였다. 그때 친구가 했던 이야기가 아직도 기억에 남는다. 우리 모두가 행복한 스머프들이었는데, 알고 보니 몇몇은 3D버전이 되어 입체적인 세상으로 나가버렸고, 그 나머지는 여전히 2D인채 단출한 세상에 남아 하찮은 가가멜(우리의 작고 귀여운 고민들)과 투닥대며 산다는 슬픈 이야기였다.


 그러나 그때는 몰랐다. 차라리 2D가 속 편했다는 것을. 우리 모두가 다 비슷하게 살 줄 알았던 그 시절, 구린 뒷면이 없던, 그 단순했던 삶이 정말 좋은 나날이었다는 것. 그리고 파전을 뒤적이며 온갖 소리를 해대던 우리는 모두 투덜이 스머프였다는 것도.

 막상 이것저것 뼈대 갖추어가며 복잡하고 공격적인 3D, 아니 4D의 세계로 나와보니 발 딛고 가만히 버티기 조차 힘든 때가 있다. 우리는 그때와 멀어진 시간만큼 각자 아픈 일들을 겪었고, 어디서든 당당하게 꺼내 보이던 우리의 표면 뒤에는 스크래치가 잔뜩 났다.


 그 시절은 좋았음은 분명하지만, 나는 다시 그때로 돌아가고 싶진 않다. 시간을 몇 번이고 되돌린다 한들 나는 다시 똑같은 실수를 저지르지 않을 자신이 없다. 그때는 그게 전부였고 최선이었으니까.

 그러니 이왕 이렇게 된 거, 앞 뒤 할 것 없이 상처투성이더라도 그걸 훈장처럼 달고 사는 것이 낫다. 그리고 사실, 세월의 흔적이 묻은 것들이 더 아름답기 마련이다.




 

 어쨌든 이곳의 뭉실뭉실한 구름이나 부드러운 곡선을 그리는 언덕들을 보면 동화적인 분위기가 물씬 난다. 다 커버린 슬픈 스머프가 잠시 머물기엔 아주 좋은 곳이다. 버섯 모양은 아니어도, 개구리가 찾아오는 아늑한 집에 머문다. 작은 마을에 옹기종기 모여사는 이웃들의 미소도 예쁘다.

 비가 오던 며칠 전에는, 아이와 장화에 우비까지 만반의 준비를 하고 마당으로 뛰어나갔다. 내가 투덜이 스머프이건 주책이 스머프이건 이젠 상관없다. 그저 이 산골짜기에서 큰 스머프와 아기 스머프는 함께 웃고, 행복하다. 그거면 충분하다.


아기 스머프의 당돌한 발걸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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