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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제야 Jul 04. 2023

개구리 침입사건 (feat. 날벌레떼)

episode 06.

 나는 벌레가 무섭다. 파충류는 더 무섭다. 크기나 위험성을 떠나 나는 그냥 걔들이 싫다. 모기를 때려잡고 손에 납작하게 들러붙은 사체를 온갖 호들갑을 떨며 털어낼 정도이고 나방이라도 눈앞에 지나가면 순식간에 몇 미터 밖으로 이동하는 순발력이 발휘된다.

 어느 날 아이에게 달팽이를 잡아주려고 용기를 내어 그 딱딱한 집을 슬쩍 잡았더니 갑자기 더듬이가 쑥 튀어나왔다. 부끄러운 얘기지만 그 미끈한 것을 보는 순간 고함을 지르며 달팽이를 엄청나게 멀리 던져버렸다. 애가 크면 학교에서 곤충 채집 같은 걸 시킬 텐데 아무래도 나는 함께 해줄 수 없을 것 같아 걱정이다.


 나도 어린 시절에는 잠자리나 매미 따위를 손등에 올려놓고 놀았던 것 같은데, 어째서 이렇게 쫄보가 되었는가. 무서울 것 없는 하찮은 존재들을 이 정도로 질색하는 이유를 곰곰이 생각해 보다 어린 시절의 한 장면을 떠올렸다.

 어느 여름날 동네 아이들과 놀다가 버려진 배드민턴 채를 주웠고, 우린 그걸 휘두르며 잠자리 무리 사이로 뛰어들었다. 애들은 뭘 몰라서 가끔 잔인하다. 나도 그랬다. 아무튼, 신나게 채를 휘두르다가 문득 채를 눈앞에 가까이 가져다 댔는데 글쎄, 잠자리 머리통만 똑 떼어져 배드민턴 채의 그 작은 네모 구멍에 꽉 끼어있었던 것이다. 얼마나 충격적이었는지 아직도 그 장면이 기억이 난다. 채에 끼인 그 작고 동그란 머리통이 엄청난 공포심을 일으켰고 나는 그 이후로 곤충들은 만지지도 못했다. 일종의 트라우마가 된 것이다.





 그런 내가 시골살이라니. 그래도 사람은 적응의 동물인 데다가 전자 모기채라는 발명품이 있으니 이제 파리며 모기, 나방 따위는 쉽게 해치우는 편이다. 문제는 이것들이 한 마리가 아니라 떼로 덤빌 때이다.


 어느 비 오는 저녁, 밥을 먹다가 문득 고개를 드니 모기 한 마리가 지나가는 것이 보였다. 모기를 따라 시선이 천정으로 향하자마자 반사적으로 의자에서 미친 듯이 튀어 올랐는데, 천정에 빼곡히 시커멓게 모기와 그 친척쯤 되는 날벌레들이 수천 마리가 붙어있었다. 미처 발견하지 못한 찢어진 모기장 틈으로 이것들이 단체 입장을 한 것이다. 게다가 현관 방충문에 바글바글하게 달라붙어 몸무림 치는 정체불명의 수만 마리 벌레떼에 나는 거의 기절하기 직전이었다.


 그리고 이제 클라이맥스. 내 발 바로 아래에서 펄쩍거리고 뛰고 있는 개구리 세 마리를 발견한 순간 나는 이성을 완전히 잃었다. 내가 얼마나 크게 고함을 질렀는지 아이도 패닉이 되어 같이 소리를 지르며 울었고 말 그대로 대 환장 파티였다. '너에게 소리 지른 것이 아니야, 너무 큰 벌레가 들어와서 엄마가 놀래서 그랬어'를 무한 반복하며 아이를 달래면서도 한 손에 에프킬라, 한 손 전자 모기채를 들어야 하니 이럴 때 정말 손이 열개쯤 더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개구리를 파리채로 한 방 갈겨 기절시키려고 했으나 소용이 없었다. 맴매를 맞자 더 펄쩍대며 뛰어다녔고 나는 울기 직전이었다. 어찌어찌 겨우 한 마리를 내보내고 다른 한 마리를 처지 하는데, 남은 한 놈이 보이질 않았다. 그러나 지금 그놈이 문제가 아니라 천정을 시커멓게 메운 저 모기떼도 문제였다. 여전히 현관 방충문 사이로는 놈들이 밀려오고 있었기 때문이다.

 마당 쪽으로 난 큰 창문을 보니 가관이었다. 불빛이 비추는 부분에 시커먼 놈들이 떼로 모여 광란의 댄스를 추고 있었다. 무슨 재난 영화의 한 장면 같았다. 방충문에 에프킬라를 인정 사정없이 휘갈겼고 재빨리 현관문을 닫았다. 이 집에 들어온 것을 후회하게 만들어 주겠다며 에프킬라와 전자 모기채로 총공격을 가했다. 그러자 다시 생각하고 싶지 않게 끔찍한 장면이 펼쳐졌는데, 살충제와 전기충격에 기절한 놈들이 후두두둑 검은깨처럼 바닥으로 쏟아져 내리는 것이었다. 아, 정말 재앙 그 자체였다.


 거의 두 시간에 걸쳐 놈들을 퇴치하고 진이 다 빠질 무렵, 사라졌던 개구리 놈이 다시 등장했다. 엄지손가락 보다 작은 그 청개구리가 펄쩍 뛸 때마다 나도 방방 뛰었다. 몇 번의 시도 끝에 겨우 종이컵에 가두었는데, 저도 놀랐는지 그 안에서 뛰는 바람에 종이컵이 바닥 위를 이리저리 왔다 갔다 했다. 그게 더 무서웠다. 겨우 이놈을 밖으로 던져버리고 에프킬라와 모기 사채로 범벅이 된 바닥을 닦다 보니 현타가 왔다. 이까짓게 뭐라고 그 생난리를 떨었나 싶다가도, 이렇게 떼로 온 건 반칙이다 싶었다.





 다음 날 바로 모기장을 보수했고, 전기 벌레퇴치 램프를 샀다. 이웃분께 여쭤보니 아마 그 벌레떼거지는 대부분 모기 st.로 생긴, 물지 않는 벌레였을 것이라 했다. 어쩐지, 죄다 천정에 들러붙어 있더라니. 이어지는 개구리 얘기에 그분은 엄청 웃었고 나는 여전히 심각했다.


 며칠 후 또 비가 오던 날, 아직도 정신 못 차린 개구리 놈들이 창문 밖에서 나를 염탐했다. 모든 출입구를 봉쇄했기 때문에 용기를 내어 사진도 찍고 들어올 테면 들어오라며 비웃었는데, 한 놈이 어떻게 또 들어와 있었다.

 나는 이제 개구리 퇴치 경력직이므로, 지난번처럼 소리를 지르지 않고 조용히 스테인리스 컵을 준비했다. 종이컵보다 개구리가 힘이 세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가까이는 못 가도 줌을 당겨 사진을 찍는 대담함도 생겼다. 재빨리 기념사진을 찍고, 땡강거리는 은색 컵 속에 꼬마 개구리를 가뒀다. 그리고 그 위에 작은 쪽지를 하나 올려두었다. 가족 중 누군가가 다음 날 아침 발견해서 처리해 주길 바라며.


 "이 안에 개구리 있음. 조심!"



으아아아아아아악

 




+ 이 글을 올리고 고작 몇시간만에 개구리가 또 들어왔고, 이번엔 내 다리에 붙었다. 기이이이이이이이이절

제발 그만 들어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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