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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구스띠모 Nov 06. 2023

대만 | 타이페이의 오래된 집

대만은 ‘가장 여행가고 싶지 않은 나라’ TOP3에 드는 국가였다. 나머지 두 국가는 중국과 필리핀, 네 번째까지 말하자면 베트남.


이유는 한국과 가까워서, 음식이든 뭐든 딱히 내 흥미를 일으키는 요소가 없어서였다. 내가 대만에 간 이유는 단순히 인연을 만나기 위해서였다. 라오스에서 만난 내 인연과 나는 앞선 여행으로 베트남에 다녀왔고, 잠시 떨어져있던 사이에 나는 몽골 여행과 한국에서 갖가지 아르바이트를, 그는 웹 개발자로서 독일의 한 회사의 프로젝트를 맡게 되었다.


대만 여행이 결정되고 나서 내게 왔던 연락은 이러했다.

일주일에 한 번 미팅이 있을 예정이고, 여행에 지장이 없게 하겠다.

그런데 내가 타이페이에 도착한 이래로 위의 이유로 인해 기분이 늘 좋지 않았다. 나는 너를 만나러 여기까지 왔는데 왜 계속 일만 하고 있는 걸까. 나는 너를 만나러 왔는데 왜 혼자 밖에서 자전거를 타고 혼자 밥을 먹고 다니는 걸까?


한국에서 만난 사람이었다면 나도 일이 중요한 걸 알고 있기 때문에 다른 반응이었겠지만 여행의 특수성이 좋지 못한 작용을 했다. 점점 불편함이 쌓여가는 동안 어느 날은 이유없이 그에게 화가 나기도 했다.

기억도 안나는 이유들로 얼굴이 굳었던 어떤 날은 숙소에 들어가서 네게 오늘 하루동안 있었던 일을 조잘조잘 거리고 싶었는데 컴퓨터만 잡고있는 터라 말을 걸기도 뭐해 혼자 샤워를 하고 어두컴컴한 조명 아래 누워있었다. 혼자 클럽에 갔다와도 되겠냐고 묻는 내게 흔쾌히 다녀오라며 ‘너는 젊어서 괜찮아’라는 말을 하는 너한테 괜히 꿍해있었다. 같이 놀고 싶었는데.

밤이 되면 일이 끝내고 밥을 먹자고 했다. 평소 내 습관이 살짝은 무너지더라도 같이 밥을 먹고 싶어서 나도 편의점에 갔다. 삼각김밥이나 샌드위치와 아이스크림을 사서 같이 나누어먹으며 우리의 밤을 보냈다.



서울과 비슷한 타이페이는 지루했다. 이러한 이유들로 대만 음식 대신 매일같이 우리끼리 M도날드라 부르던 맥도날드, 또는 피자, 편의점 음식으로 배를 채웠다. 삼각김밥을 처음 본 그에게 발음하기 쉬운 오니기리 대신 삼각김밥이라는 말을 알려줬다. 삼각김밥과 편의점 커피를 먹으며 아침밥을 해결했었다.


일주일 간 묵었던 타이페이의 아주 오래된 숙소 벽은 왕가위 감독의 영화 포스터로 가득 채워져 있었는데, 잠을 자기에는 꽤 불편했던 ‘라꾸라꾸’ 스타일의 2인용 간이침대와 낡은 공기. 좋은 것 하나 없던 숙소였지만 왜인지 이 방에 들어갈 때 만큼은 80년대 대만에 있는 어느 집에 잠시 잠을 자러 들어가는 기분이었다.


계단없는 4층 숙소에 샤워실은 3층에 하나. 환기도 잘 되지 않는 낡은 창문과 오래된 에어컨. 감기가 걸릴 정도로 좋지 않은 환경이었지만 타이페이 시내 한복판에서 잠시 40년 전으로 돌아간 것 같다는 느낌이 나를 그나마 행복하게 만들었다. 그 시절 대만에 있던 기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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