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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자생존보다, 성(性)선택

다윈이 풀어낸 프로이트의 미스터리

by 공상과학철학자
본 브런치북은 과학적인 시선에서 인간사회를 탐구해 보며, 함께 살아감을 생각해 보는 철학 시리즈입니다.


SNS 바다를 탐험하다 보면, 가끔씩 이드(id) - 자아(ego) - 초자아(super ego)라는 단어들이 보이곤 한다.

예를 들면, 밤에 라면 먹고 싶은 '이드'가 꾸역꾸역 올라왔으나 건강하고 날씬함을 위해 '에고'를 발휘했다는 식이다.


하지만 프로이트 (1856 - 1939, 오스트리아)의 이 이론은 현대 심리학에서는 인정되지 않는다.


과학적 증거를 찾을 수 없다는 문제도 있지만, 현대 심리학에서 사람의 본능은 억제되어야 할 것이 아닌, 순기능을 하는 중요한 대상으로 본다. 갈증이 나면 물을 마셔줘야 생명 유지가 되고, 졸리면 하루에 7시간은 충분히 자야 일상의 활력에 좋다.

초자아가 나라, 사회, 시대, 개인마다 다 다르기에 구체적 실체가 없고, 보편적이지 않다는 한계도 있다.

따라서 현대 심리학에서는, 유전자 본능과 사회 규범 사이, 끊임없이 스트레스받고 조절해 나가는 인간의 모습을 바라본다. 어느 한쪽에 특별한 우월적 지위를 부여하지 않는다.


이밖에, 프로이트가 유아기 단계를 구강기 등 5단계로 나누어서 설명한 것이나, 아들이 엄마를 성적 대상으로 여기고 아버지에게 오이디푸스 콤플렉스를 가진다는 것이나, 딸은 남근이 없어 열등감과 좌절을 느낀다는 등의 주장은 과학적 근거가 없거나, 현대 심리학에서 밝혀진 이론들과 충돌하며 인정되지 않는 주장들이다.


그러나 프로이트의 주장 중 한 가지는 주목해 볼 필요가 있다. 성적 에너지를 뜻하는 '리비도(Libido)'를 인간의 행동과 사고를 움직이는 가장 근본적인 생명력이자 에너지로 보았다는 부분이다.


공상과학철학자는 이 '리비도' 개념을 학창시절 처음 접했던 기억이 나는데, 고상한 존재인 사람이 어떻게 고작(?) 성욕에 휘둘려 사고와 행동을 결정한다는 것인가...? 사회에서 선을 실천하는 사람들이나, 불의에 맞서 목숨을 기꺼이 희생한 사람들은 대체 뭐란 말인가... 의아해했다.


그러다 세월이 한참 흘러서야 찰스 다윈이 1859년 '종의 기원' 말고도, 1871년 '인간의 유래와 성 선택'이라는 책을 펴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리고 프로이트의 '리비도' 이론을 다시 생각하게 됐다.


다윈은 종의 기원을 출간하고 1년 뒤 동료에게 편지를 보내, '공작새의 깃털을 볼 때마다 구역질이 난다'라고 하소연했다고 한다.

자신이 써낸 종의 기원에 근거하자면, 모든 생명체는 조금씩 다르게 태어나고, 그중 환경에 적합한 개체가 살아남고 대를 이어 그 성질을 유전시켜야 맞는데, 공작새의 화려하고 큰 깃털은 이동에 불리하고 포식자의 눈에 띄기 쉬워 결코 생존 환경에 적합하다고 볼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 후 연구를 거듭한 다윈의 정리는 이렇다.

아무리 환경에 적합하게 태어난 개체가 있어도, 후대에 유전자를 전달하지 못한다면 그 형질은 이어지지 못한다.

반면, 환경에 불리하게 태어난 개체라도 짝짓기에 성공해 후대에 유전자를 전달한다면 그 형질은 이어진다.

사람으로 치면 신체 건강하게 태어난 남자가 전쟁 중 징집에 끌려가 전사하면 유전자를 남기지 못하지만, 다소 약하게 태어난 남자라도 징집을 피한 후 여자에게 선택받는다면 후대에 유전자를 남길 수 있다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공작새가 가진 화려한 깃털의 존재 이유다.

이 화려한 깃털은 수컷 공작새만 가지고 있으며, 이것은 생존 용도가 아닌 오로지 암컷에게 잘 보이기 위한 용도다. 암컷은 화려한 깃털을 가진 수컷 공작새를 선호했고, 그 결과 화려한 깃털은 계속 후대로 이어졌다.

다윈은 결국 이를 깨달아 '성선택' 저서에 자세히 싣게 된다.

생명의 모습을 결정하는 것은 자연의 선택뿐만 아니라, 이성의 선택이라는 것을.


자연계에서는 거의 대부분 수컷이 암컷의 선택을 받기 위해 부단히 애를 쓴다. 성 전략이 다르기 때문이다.

보통 수컷은 무수히 많은 씨앗을 최대한 많이 뿌리려고 하고(동물의 정자, 식물 수술의 꽃가루), 암컷은 적은 씨(수가 적은 난자와 암술)를 가진 상태에서 우수한 수컷의 씨앗을 선별해 수정하려고 한다.

암컷은 후손을 키우는데 시간과 노력이 많이 소비되기 때문에 자연적으로 신중해질 수밖에 없는 것이다.

멸치도 까치도 암컷이 알을 품고, 포유류도 암컷이 태아를 기를 뿐 아니라, 식물의 열매도 암술 밑에 있는 씨방에서 자란다.

이러기에 암컷은 더욱 신중히 고를 수밖에 없고, 여기서 수컷들의 후손 남기기 경쟁은 치열해진다.


수사슴에만 난 뿔은 포식자 방어용 무기로는 별 유용성이 없다. 도망가기에 거추장스럽고, 오히려 포식자가 낚아 채기에 편하다. 그럼에도 수사슴들은 더 멋진 뿔을 가졌음을 뽐낸다. 왜? 암컷에게 선택받기 위해서다.


애벌레로 5년을 살다가 성충이 되어 한달 남짓 살다 죽는 매미도, 가을 밤의 귀뚜라미도, 연못의 개구리도, 오직 수컷만 구애의 울음 소리를 낸다.


인간도 마찬가지다.

남자에게서만 자라는 턱수염, 콧수염은 테스토스테론 호르몬에 의해 자란다. 생존에는 그다지 쓸모없고, 기생충이나 번식하기 쉬운 환경이지만, 여성에게 남성다움을 뽐낼 때 유일하게 쓰인다. 사자의 갈기와 용도가 같다.


이쯤 되면, 자연계에서 'female choice'는 단순한 경향이 아니라, 생명체들의 대를 이은 생존에 절대적인 결정권을 가진다는 것을 눈치챌 것이다.

생명체가 자연에 적합한 형질로 대를 이어 변천하는 것(자연선택)은 물론, 개체는 이성의 마음에 들만한 형질로 대를 이어 변천(성선택)한다. 그리고 그 선택은 대부분 female이 한다. (남자들은 너무 섭섭해하지 말자. 집단생활을 하고, 뇌 용적이 커진 종일수록 성적 결정권은 조금 다양한 양상을 보이기는 하는데, 이 이야기는 다음 기회에 따로 다뤄보자.)


그리고 이 성선택의 동력은 바로 남녀 모두의 도파민 쾌락 보상 반응에 기인한다. 바로 프로이트가 말한 '리비도'의 개념과 큰 차이가 없는 것이다.

유전자 번식이라는 생존 전략을 수행하기 위해 '리비도'는 강력한 동기 부여 장치가 된다.

좀 더 극단적으로 생각해 본다면, 생명체는 대를 이은 생존(짝짓기)에 적합하게 변천해 왔으며, 이 반영속적인 생존을 위해 '리비도'라는 중요한 메커니즘이 일상생활의 에너지로 호시탐탐 작동한다고 볼 수 있다.


여성들에게 제안드리고 싶다.

어떤 남자가 리비도에 이끌려 꾸준히 플러팅하고, 고기를 사주려 하고, 꽃다발을 안겨준다면 이렇게 생각하자.


'짜식~ 귀엽네. 받아줘 말어?

또는, 짜식~ 주제 넘네. 감히 나에게?'


결정권은 100% 당신이 가지고 있다.

빵 차버리든 말든 :)

받아줄지, 아니면 거절할지, 어느 쪽이든 옳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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