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기할래?

콩깍지 1_#01_Love me if you dare

by 하소초

*스포일러를 원치 않는 분은 영화를 먼저 보시는 게 좋아요.


원치 않았던 나이를 먹게 하고, 그리하여 결국은 기어코 우리를 살아내게 하는 것들은

적절한 상황에 적당히 찾아와 주었던,

그래서 과도하게 기뻐하거나 안도하며 기념할 수 있었던 그 선물같거나 보답같던 일들이 아니라,


사실은 너무 아찔해서 당시의 내 표정조차 기억할 수 없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무릅써야만 했던, 바로 그 일들.


그것은 뜻하지 않게 다가온 낯선 상황일 수도 있고,

때로는 지니고 태어난 정체성 자체일 때도 있다.


폴란드 태생이란 이유만으로 또래들에게 내동댕이 쳐져 무릎을 쓰고 있는 이 소녀를 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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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황을 무릅쓰는 일에 비해 존재를 무릅쓰는 일은 얼마나 난감한 일인가.

하지만 우리의 삶은 '그럼에도 불구하고'이니 일단 견뎌볼 밖에.


그러나, 아무리 생각해 봐도,

그야말로, 뭐, 어쩌라고.


단호한 색펜으로 함부로 얼굴을 긁힌, 비문 속 단어와 어미들은 억울하다.

문장이 자연스럽지 않은 건 우리의 탓이 아니야.

그것은 애초에 정해진 틀에 따라 강요된 문맥의 편협함 탓.


고유의 맥락을 지니고 태어난 말들은 억지로 끼워넣어진 문장 속에서의 이질감이 억울하다.


누가 내게도 어울리는 문맥이 되어줘.

나도 내가 빛나는 맥락을 헤엄쳐서 이야기가 되고 싶어.

이왕이면 아름다운 이야기가 되어서, 기억되고 싶어.



그때 소녀에게 주어지는 인생의 회전목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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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소녀에게 찾아 온 햇살같은 한 마디. "내기할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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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사탕 상자는 사실 죽어가는 어머니가 회복을 약속하며 소년에게 건넨 달콤한 선물-

소년은 그 예쁘장한 상자가 위태로운 속임수인 것만 같아서 견딜 수가 없다.

그래서 소년은 그 위태로움을 믿음직스럽게 지켜 줄 친구가 필요하다.


'상자를 가진 사람이 내기를 거는 거야.

부디 그 내기를 받아 나에게 다시 내기를 걸어줘.

내 상자를 뿌리치지 말아줘.'


마음 속으로 되뇌였을 소년.

햇살 같은 표정이 한 마디 덧붙이는 것만 같다. '내 곁에 있어줘.'


그리고 소년과 소녀 사이를 구르는

merry-go-round-









너 이것도 할 수 있겠냐며,

서로가 서로에게 상자와 함께 건네는 제안들은


수업 시간에 짓궂은 단어 읊어대기,

규율의 존엄함을 설교하는 교장선생님 앞에서 오줌 싸기,

혹은 수학 시험 날 겉옷 밖에 속옷 입고 들어가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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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보다 불안한 맥락 속에 처해 있던 두 사람이

상자를 주고 받으며 찾아 낸 새로운 문맥은

다름 아닌 '문법의 파괴'


그들을 슬프게 했던 온갖 질서와 문맥을 비웃고 뛰쳐 나가며

그들은 간신히 세상을 견뎌내고, 무사히 어린 시절을 통과해 나온다.


그들의 놀이는 단순한 내기가 아니라

네가 원한다면 무엇이든 할 수 있다는 약속을 지키는 일이었기 때문이다.


그 굳건한 약속을 확인할 때마다 그들의 불안함은 위로 받을 수 있었고,

아마 그 위로 속에서 굳건해진 그들만의 문맥은

틀을 벗어나 자유롭게 숨쉴 수 있는 문장을 만들어 냈으리라.


그러나 그들을 비로소 자유롭게 했던 내기는

그들 안에서 견딜 수 없이 확장되어 나온 낯선 의미들 앞에서 혼란을 겪고

결국은 그 혼란의 비겁한 도피처가 되어 버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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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인할 수도 긍정할 수도 없는 서로에 대한 감정,

그리고 피할 수 없는, '어른이 되어야 한다'는 압박은 더 이상 내기로 극복되지 않고


미처 지킬 준비가 되어 있지 않았던 약속 앞에서 흔들리고 상처 받는 청춘.



결국 내기를 매개로 한 극단적인 상처를 주고 받은 그들은 '10년 동안 만나지 말자'는 내기를 마지막으로 헤어진다.







그리하여, 각자 '어른'으로서의 길을 걷는 두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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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어른이 된다는 것은 시속 210km로 달릴 수 있다는 세상의 장빗빛 약속에도 불구하고

시속 60km로 달릴 수밖에 없는 기만적인 현실감을 기꺼이 인정하는 것.


국민영웅급의 축구스타와 결혼해 호화롭게 살아도,

번듯한 직장에 남부럽지 않은 가정을 꾸려 나가도, 그들의 인생은 지루하기 짝이 없다.


누구에게도 기억되지 않을, 세상에 널리고 널린 지루한 문맥으로 해석될

그런 지루한 이야기가 되어가는 두 사람.


그리고,


10년의 약속을 하루도 빠짐없이 기다리며 지루한 어른을 살고 있는 소년에게 다시 찾아온 사탕상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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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침내 짓궂게 재회하는 두 사람은


한바탕 목숨을 건 내기를 치룬 후 처음으로 사탕상자 없이 서로의 진심을 확인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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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의 마지막 내기를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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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기가 있다면 날 사랑해 봐.'라는 다소 도발적인 제목은

'날 사랑하겠다면 제발 용기를 내줘.'라는 절박한 호소로 보인다.


과감함을 지나쳐 무모해 보이기까지 하는 두 사람의 아슬아슬한 내기 또한

배신으로 가득 찬 세상의 크고 작은 질서 속에서 부디 날 구해달라는 구원 요청이 아니었을까.


너무 어처구니 없어서 막무가내처럼 보이는 상대방의 새끼 손가락에 기꺼이 내 손가락을 걸어주는 것.

그리하여 그가 건넨 판타지에 대한 기대와 믿음을 실망시키지 않는 것.

당신의판타지에 힘껏 동의함으로써 세상이 정해놓은 규율과 억압의 틀안에 놓인 이 불안한 관계들 속에서

함께 해방되는 것.


사랑에 용기가 필요하다면 그런 것이겠지.

세상을 뛰어넘어 그대에게 다가갈 수 있는

그대의 존재를 내 존재의 맥락으로 삼을 수 있는 용기.


하지만 세상을 뛰어넘어 그대에게 다가갈 수 있었던 용기는

결국 또 다른 세상 속에서 그 구조를 떠받치는 일부가 된다.


세상을 뛰어 넘는 용기는 세상을 깨뜨리고 뭉치는 신화와 규율의 변주를 지나는 모험을 요구하지만

그 모험은결국 그 신화와 규율의 끊임없는 생몰(生歿)을 껴안기 위한 긴 여정이 아니었을까.

그렇다면 세상과 신화를 뛰어넘는다는 것은,

그것들을 의식하지 못할 만큼 그것들의 가장 무심한 흐름의 일부가 되는 일이 아닐까.

그리하여 이 세상의 어쩔 수 없음을 긍정하며

끝내 그것을 함께 견뎌내는 기둥으로서 잠시,

하지만 시멘트같은 세상보다 더 힘껏 당신을 껴안는 일이 아닐까.


"반가워요. 그럼 이제, 내가 아무리 황당하더라도 용기를 내서 후회없이 날 안아주겠어요?"


라고,

누구보다 사랑하지만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그대를 향해 고백하고 싶은

충동.


_love me if you dar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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