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콩깍지> 1_#05_아내가 결혼했다 & Summer Wars (1)
스포츠를 좋아하는가?
사실 난 스포츠를 소재로 한 이야기는 좋아해도, 스포츠 자체는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이유는 크게 두 가지.
첫째, 운동을 못하는 사람으로서 늘 가져온 열등감 때문에 운동을 하는 것도 보는 것도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둘째, 운동을 할 때나 운동을 구경할 때나 그 룰에 이미 나보다 훈련이 더 되어 있거나 그 룰에 대해 해박한 지식을 지닌 사람들이 피우곤 하는 거드름이 꼴같잖아서 견딜 수가 없다. 종합해보니 모두 내가 옹졸한 까닭이지만 뭐 그렇대도 별 수 없지. 하여간 난 스포츠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그렇다면 게임은 어떤가? 솔직히 게임도 별로다.
게임이라는 게 이기지 않으면 크게 재미가 없는데, 또 막상 이기고 나서도 나는 크게 기쁘지가 않다. 원체 소심한 성격 탓에 이겨놓고도 미안한 거다. 그럼 그냥 적당히 즐기며 이기지도 지지도 않는 게임을 하면 될 텐데, 그 역시 막상 끝나고 나면 기분이 별로다. 친해지기 위해 열심히 나눈 어색한 친구와의 대화에서 왠지 부정적인 대답만 늘어놓은 것만 같은 찜찜함이랄까. 어쨌든 이래저래 게임도 별로다.
그리하여 나처럼 옹졸하고 소심한 인간들은 드라마든 영화든 소설이든 만화든 남의 이야기나 즐기는 수밖에 없겠구나 하고 생각하며 살아가게 되는 것인데, 20대에 심취하던(그야말로 취한 것에 불과했다.) '심오함'이나 '그놈의 의미'에 질렸을 때쯤, '진짜 재밌다.'는 지인의 추천에 귀가 번쩍 열려 쪼르르 극장에 달려가 관람했던 작품이 있었으니, 그게 바로 <Summer Wars>(국내 개봉 제목은 썸머 워즈)라는 애니메이션이었다.
영화는 역시 재밌었다. 시각적으로 수용이 편한 그림체의 만화였고, 순수하고 참신한 고딩들이 맞고(맞다. 그 화투놀이)로 세계를 구한다는 통쾌하고도 명료한 내용인데 어찌 재미 없을 수가 있었겠는가. 하지만 그게 다가 아니었다. 나는 불현듯 이 작품과 호대조(好對照)를 이루는 작품이 함께 떠올라 신이 났던 것이다. 그 작품에서는 여고생 대신 요염하면서도 참한 팜므파탈이 등장하여 합리적 불륜을 주장한다. <아내가 결혼했다>는 그렇게 다시 내 앞에 나타났다.
두 작품의 호대조를 이끌어 낼 기준점이 될 공통점이 바로 '스포츠'와 '게임'이며 이것이 스포츠와 게임에 문외한인 내가 지금부터 이야기하려고 하는 것이다.
그럼 어디 문외한의 스포츠와 게임에 대한 썰을 잠깐 풀어볼까?
내가 생각하기에 스포츠란 대강 이런 것이다.
1번 정정당당.
2번 정정당당을 정의하는 공통의 규칙.
3번 그 규칙에 대한 끊임없는 합의를 통한 정정당당의 증명.
결국 최고의 플레이는 규칙에 대한 최고의 충성도를 실현시키는 것. 스포츠를 잘 아는 팬일수록 대단한 기술을 성공시키는 선수의 타고난 재능과 고유한 정신에 감동하는 것이 아니라 그들의 재능과 정신력이 그 기술을 성공시킬 수 있을 만큼 단련된 것임에 열광한다. 말하자면 선수의 고유한 정신 자체를 찬양하는 것이 아니라 선수의 정신이 규칙에 복종하기 위해 철저히 절제된 것에 열광하는 것이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스포츠가 밑도 끝도 없이 삭막한 것은 아니다. 왜냐하면 스포츠에서의 진정한 승리는 그 규칙의 틈바구니에서 수없이 어긋나는 크고 작은 소통들을 민첩하게 이해하고 그 사이의 자유를 만끽하는 자의 것일 테니까. 개인적으로 바로 그것이 스포츠의 핵심이자 가능성이라고 생각하지만, 아직 이 이야기를 너무 확장시키지는 말자.
그렇다면 게임은 무엇인가. 이건 스포츠에 비해 뭔가 애매한 면이 없지 않다. 이쯤에서 게임이란 말을 자주 사용하다 못해 자신의 6집 앨범 타이틀로 내걸기까지 했던 유명인의 말을 참고해 보자. 박진영은 과거 (지금까지 살아남아 최장수 토크쇼가 될 줄은 몰랐던) 한 토크 프로그램에 출연하여 이런 말을 남긴 바가 있다.
조금 선정적이고도 뜬금없지만, 이미 오래된 박진영의 이 선언이 주장하고자 하는 바가 무엇인지, 박진영의 편을 들어가며 한 번 헤아려 보자. 생각해 보면 그는 비닐바지를 입던(으악!) 데뷔 때부터 지금까지 한국 사회의 성적 억압과 그 뒤에 숨은 이중성을 꾸준히 비판해 오던 사람이 아닌가. 그 비판의식에 마침내 '게임'이라는 단어를 끌어들인 이유가 있을 것이다.
그는 왜 굳이 섹스를 게임이라고 하는 걸까. 먼저 섹스에 대한 그의 설명을 종합해 보자면 대략 이렇다.
섹스는 심각한 게 아니다.
섹스는 즐기는 것이다.
섹스는 절대 가볍게 여겨져서도 안되지만 섹스가 너무 성스러운 것으로 여겨져도 안 된다.
되게 심오한 얘기인 양 행갈이까지 하며 정돈 해보았지만, 사실 박진영이 "섹스는 게임이다"라는 선언에 구구절절 저런 설명까지 덧붙여 가며 하고 싶었던 얘기는 간단하다. 그것은 바로 '섹스에 절대적인 규칙은 없다'는 것. 즉, 규칙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그것이 '참여자의 의지와 무관하다고 느껴질 만큼 참여자를 초월한 절대성을 가지고 있는 것은 아니다'라는 것.
게임의 현란함과 명료함은 바로 거기에서 시작된다. 게임은 일단 참여하는 이의 욕망을 끝없이 허락한다. 이것이 게임의 명료함이다. 그 명료함이 욕망을 지키기 위해 욕망을 들키지 않으려는 노력을, 즉 수많은 트릭trick을 허락한다. 그리고 그것이 게임의 틀, 즉 규칙의 허점을 파고드는 것까지 허용하면서 그 변수와 무질서는 끝없이 현란해진다.
이 모든 것이 가능해지는 것은 다름 아닌 욕망의 주체에 대한 존중, 혹은 의지보다 경건한 욕망에 대한 겸허함 덕분일 것이다. 우리가 규율한 그 무엇도 욕망을 넘어 약속될 수 없으며 욕망을 벗어난 곳에서 의무지워질 수 없다는, 부정할 수 없는 본연의 조건에 대한 냉정하고도 겸손한 인식.
만일 어떤 참여자들이 더 이상 규칙의 '만들어진 신성'에 복종하지 않는다면, 그것은 규칙이 욕망을 배신하고 촌스러워졌기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탈규율' 혹은 '탈규칙'만으로 게임을 정의할 수는 없을 것이다. 게임 속에서 규칙은 플레이어의 욕망에 의해 끊임없이 조롱당하고 배신당하지만 또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배신에 의해 새롭게 해석되어 재정의되곤 하니까. 게임의 잠재력potential은 아마도 여기에 있는 것이리라.
이렇듯 비슷한 구성을 가지고 있는 듯 하면서도 다른 흐름을 내포하고 있는 스포츠와 게임은 절대 분리되지 않는다. 스포츠는 언제나 게임을 내포하고 있으며 게임은 수시로 스포츠로 합의되곤 하니까. 그건 게임에 혹은 스포츠에 참여하는 주체들이 반복하고 있는 '존재의 아슬아슬한 줄타기' 같은 것이다. 끊임없는 흐름 속에서 존재를 유지하기 위해선 존재를 통과하는 흐름들의 균형을 깨지 않는 것이 관건. 어느 쪽으로든 과도하게 쏠리면 균형은 깨지게 마련이다.
내게 있어 '썸머워즈'와 '아내가 결혼했다'는 둘 다 그 불균형을 우려하는 영화로 보였다.
하나는 거대 시스템의 위태로움을 경고하고, 가족이라는 인간적 규모의 공동체를 긍정함으로써,
또 하나는 이념화된 관계의 고정관념을 비웃고, 사랑이란 이름으로 자행되는 위선을 폭로함으로써.
잠시나마, 차근차근 그 우려의 목소리에 귀 기울여 보기로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