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콩깍지> 1_#04_너를 보내는 숲
- 내가 살아 있소?
내가 살아 있는 거요?
"살아있다"는 것은 두 가지 뜻이 있어요. 첫째는…먹는 거예요. 밥이나 반찬.
말해봐요, 밥 먹었어요? 그래요 밥을 먹었을 거예요. 반찬은요?
- 먹었어요.
네, 좋아요. 그게 중요해요. 다른 뜻이 또 있는데…
살아있다는 느낌을 가지는 거예요. 살아있는 느낌요.
"사는 의미를 모르겠다.", "왜 사는지 모르겠다."
그런 것들은 단순히 "먹고 사는" 문제가 아니에요.
그래서 그 물음에 두 가지 뜻이 있다고 한 거예요.
식사를 하시죠?
- 네.
그래요 먹으니까 살아있는 거예요. 대부분의 경우엔 그걸로 대답이 되죠.
하지만 방금 얘기했듯이 살아있다는 느낌을 못 느끼는 거예요.
마음이 비어버렸기 때문이에요. 비었어요. 없는 게 아니라.
- 비었어요?
내가 살았나 죽었나? 그 물음에 혼자 답할 수 없을 땐 두 번째 의미인 거예요.
그 의미를 알고 싶으면…마치꼬 상, 아저씨 손을 잡아요.
어떠세요. 마치꼬 상이 느껴지세요? 마치꼬 상의 에너지가 전해지세요?
살아있는 느낌이란 것이에요. 사는 것 같은 느낌이지요.
마치꼬 상 아저씨에게 덕담을 해주세요.
= 잘 지내시죠?
- 응.
말해줘서 고마워요. 뭔가 느꼈을 거예요.
"응"이라고 대답하면서 안정감을 느낀 거예요.
그대가 내게 건네는 목소리를 들을 수 없다.
고로, 나는 그대에게 대답할 수도 없다.
안정감을 느낄 수 없는 나는
살아있다는 확신을 잃은 채
몸뚱이로만 이 푸른 세상을 두리번 거린다.
그대는 어디 있는가-
엉키는 기억들을 온 몸에 휘감아
넘어지고 버둥대면서
그대를 그리워하는 나는
애석하게도,
살아 있다.
이 맹목적인 살아 있음이 난 두렵다.
허나 삶이여, 나는 믿고 싶다.
내가 아무리 숨어들어도 기어이 좇아와
찾았다며 소리쳐 주는
이 유치하고도 뻔한 숨바꼭질을
살아있는 한,
계속 이어갈 수 있을 거라고
누군가 또 다시 날 위한 술래가 되어줄 지도 모른다고
또 다시 누군가를 위한 술래가 될 수 있을 지도 모른다고
- 그리하여 함께, 각자의 이별을 부축하며 떠나는 길
그대는 이미 알고 있지 않았을까.
강물은 계속 흘러가, 다시는 돌아오지 않는다는 것을
그날, 봇물이 터지듯 넘치던 나의 울음도
결국엔 어딘가로 흘러가기 위한 것이었음을
흐르지 못하고 맺힌 그 무엇이라도
결국엔 무게를 더해 방울로 지면, 떨어지고 부서진 그 곳에서
마침내 자유를 얻을 것임을
이렇게 네가 떠나가는 소리를 들을 것임을
마침내 도착한, 명백한 상처와의 해후
그렇게 쥐어뜯어 괴롭히던 나와의 절실한 화해
오직 그대로 인해 느낄 수 있었던 나의 삶이
다시, 살기 위하여
너를 보내는 숲-