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콩깍지> 1_#03_메디슨 카운티의 다리
4인용 식탁의 정갈한 부엌.
나무랄 데 없이 정돈되어 곳곳에 깃든 그녀의 정성.
그 정성을 위로 삼아 가족을 버텨왔을 그녀는
모처럼 자리를 비웠다.
박람회 구경을 떠난 남편과 두 아이는 집을 비운 상태.
함께 가자는 남편을 달래고 혼자 남기로 했던 그녀.
딱히 함께하고 싶지 않았던 건 아니다.
그동안 가족에 매여 허덕이던 일상에 딱히 진저리가 났던 것도 아니다.
그러나 모르지.
기회가 된다면 놓치지 않고 홀로 있고 싶었는지도.
진저리가 난 건 아니더라도 답답한 마음을 가누기 힘든 때가 점점 늘어가고 있었는지도.
그리하여
벼르던 집안 일을 하나하나 서두르지 않고 해치우면서
자신의 호흡과 흐르는 땀을 온전히 느끼면서
마치 무언가를 기다리는 듯이, 고요히
가만히 가만히 자신에게 귀기울이는 시간.
그리고 마침내
마침내 그녀에게 들려온 목소리
그와 말이 통할 거라는 걸 알 수 있다.
그를 잘 이해할 수 있어서가 아니다.
그저 그를 납득할 수 있을 거라는 걸 알 수 있을 뿐.
남편에겐 신신당부로 하루에 피울 양을 제한했던 담배를 그가 권하자 사양하지 않는다.
그를 위해 드레스를 사 입고 그와 함께 춤을 춘다.
청바지를 입고 머리를 풀어 포즈를 취한다.
그렇게, 그로 인해,
비로소 자유롭게 그녀가 되어
그를 만나는 그녀.
그리고
내면을 드러낸 쑥스러움과 기쁨이 그녀의 얼굴 위에 살포시 포개지는 동안
꽃을 꺾고,
그녀의 사진을 찍고,
그녀가 차려 준 저녁에 감사하며
그녀와 함께 추는 춤 속에서
자유로운 그녀를 진심으로 바라보는 그.
그렇게 찾아 온 단 한번의 확신.
그러나
이미 평생을 걸고 약속한 현실은
확신보다 가엾고도 모진 것이라서
결국
간절함을 삼키며 그녀를 격려하는 그의 미소.
움켜쥐는 망설임이 아무리 격렬해도
차마 비틀어 올릴 수 없는 그녀의 현실.
그리고
그녀의 결정을 위무하며
그가 남기고 간 침착한 다짐
긴 세월 끝 언젠가
기어이 남아 가슴 속에 뛰고 있을 그대여
그대를 만나 비로소 온전한 내가 되어
함께 떠나고 싶은 마음은
이미 먼 짐을 서둘러 꾸렸을지언정
그대가 머문 곳이 애초에 나의 마음이라
낯설고 두려운 걸음은 오히려 갈피를 잡을 수 없었네
그러나 그대는 알고 있겠지.
그때 차마 떠나지 못했던 길보다 더 길고도 먼 그리움
내 일생을 뚜벅뚜벅 쉬지 않았음을
끈질기게 붙들었던 삶을 끝끝내 원망하지 않았으니
진심으로 살았던 어떤 것에라도 용서를 구하지는 않으려네
하루를 살아도 부끄러움 없이
그대와 나누었던 시간이 나의 온갖 시간과 더불어 계속되었으므로
그것이 또한 내 가냘픈 영혼의 은밀하고도 다정한 긍지였으므로
그리움은 당당한 기다림으로
일생을 뚜벅뚜벅 쉬지 않았네
일생을 넘는 세월이라도 쉬지 않겠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