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콩깍지> 1_#06_summer wars의 경우
*스포일러를 원치 않는 분은 영화를 먼저 보시는 게 좋아요.
플라톤은 현실의 원형인 이데아에 대한 동경, 즉 본질과 진실을 갈구하는 마음을 '사랑'이라고 정의한다. 러브머신의 행위도 '무언가 알려는 욕구'를 바탕으로 한다는 점에서 본질을 갈구하는 플라톤의 사랑과 닮은 구석이 있다. 그러나 플라톤의 이데아에 대한 동경이 동굴 안의 사람들에게 진짜 세상의 빛을 주려는 목적을 가지고 있었던 것과는 달리 러브머신의 호기심에는 목적도, 이타심에 기반한 소명의식도 없다. 오직 '무언가 알려는 욕구'를 동기 삼아 움직이는 이 기계(머신)적인 사랑(러브)은 OZ 안의 질서를 무차별로 파괴하고 OZ와 연결된 현실을 속수무책으로 혼란에 빠트릴 뿐이다.
그리고 그 혼란으로 인해 진노우치 대가족은 절망에 빠진다. 지병을 앓고 있던 할머니의 건강상태를 체크해 알려 주던 OZ가 제 역할을 하지 못했고, 그 바람에 할머니의 주치의가 미처 제때 손을 쓰지 못한 것이다. 이 장면의 심각성을 이해하기 위해 우리는 영화의 발단에서 OZ의 다양한 서비스와 교차되던 장면이 무엇이었는지 상기해 보자. 그것은 바로 할머니의 90번째 생일을 축하하기 위해 진노우치가의 모든 일원들이 본가로 모여드는 장면이다. (겐지는 이 행사에 휩쓸리며 비로소 이야기의 주 흐름에 참여할 자격을 얻게 된다.)
가족 모두가 힘을 합쳐 준비하는 할머니의 거창한 생일잔치는 할머니에 대한 가족들의 존경과 사랑의 표현이자 할머니가 지켜온 '가족'이라는 공동체에 대한 열렬한 지지의 표현이라고 할 수 있다. 그 지지 속에서 사람들은 행복하고 평화롭기 그지없다. 술에 취해 잔을 부딪치고 알몸을 들키며 수줍어하는 왁자지껄함 속에서 관계의 질감을 확인하는 대가족의 평화. 이것이 가상현실 OZ가 제공할 수 없는, 진짜 현실 속의 인간적 가치이다. 전통의 진노우치는 바로 그 가치를 지키는 것을 명예로 여겨 왔으며 그러한 생각을 바탕으로 자신들의 정체성과 세계관을 형성해 왔다. 그러므로 할머니의 생일잔치는 할머니만을 위한 축하가 아니라 진노우치가(家) 모두의 존재를 자축하는 행사라고 할 수도 있겠다.
그런데 가상현실 속 괴물 러브머신이 바로 그 자축에 끊임없이 훼방을 놓는다. OZ의 시스템을 혼란에 빠트려 아직 본가에 도착하지 못한 진노우치의 가족들이 잔치에 참여하는 것을 방해하고 급기야 할머니를 죽음에 이르게 함으로써 잔치의 근거를 없애버리려는 것이다. 그것은 진노우치가의 사람들에겐 참을 수 없는 모욕이었다. 대를 이어지켜온 가치를 자축하려는 가문의 신성한 행사가, '지킨다.'라는 개념도 없는 욕망 덩어리에게 '아무 이유 없이' 훼손당했기 때문이었다.
그리하여 진노우치가와 러브머신의 전쟁이 시작된다. 할머니의 죽음으로 비로소 영화의 대결구도가 명확해진 것이다. 대결구도가 명확한 만큼 양편이 상징하는 바 또한 명확하다. 한 편은 인간적 신뢰를 바탕으로 관계를 형성하는 전통적 가치관을, 다른 한 편은 문명이 만들어낸 최첨단 시스템의 욕망을 대표한다. 이 둘은 우리가 맞닥뜨린 현대적 관계의 양면이라고도 할 수 있는데, summerwars는 이러한 현대적 관계의 양면성이 극단으로 갈라 서서 충돌하는 과정을 호쾌한 만화적 상상으로 풀어낸다.
이 양 극단에는 각각 질서와 체계에 대한 지향과 자유, 탈규율에 대한 욕망이라는 성격이 전제된다. 진노우치 가문은 스포츠 정신으로 무장해 있고 겐지는 수학 영재다. 스포츠는 '규칙'에 대한 존중을 바탕으로 성립되며 수학은 인류가 발명한 가장 엄격한 추상 논리 '체계'이다. 이에 반해 러브머신의 '게임'은 오히려 규칙과 체계에 대한 반발에 가깝다. 이걸 망가뜨리면 어떻게 될지, 저걸 어그러뜨리면 어떻게 될지 궁금해서 못 견디겠다는 듯이 러브머신은 자신만의 '게임'에 끝없이 몰두한다.
전통의 붕괴에 대한 저항과 탈규율에 대한 욕망. 사실 이 둘은 우리의 현실을 지탱하는 순환고리의 양 극단이라고 할 수 있다. 어느 한쪽이 언제나 옳고 다른 쪽이 영원히 그르다고 할 수 없는 가치인 것이다. (스포츠는 언제나 게임을 내포하고 있으며 게임은 수시로 스포츠로 합의되곤 하니까.) 그럼에도 전자에 '가족'이라는 현실 공동체의 상징을, 후자에 '머신'이라는 가상 시스템의 상징을 부여한 뒤 피해자 대 가해자라는 설정을 만들고, 결국 혼란으로 인한 상처를 회복하려는 전자의 승리로 이야기를 마무리 짓는 것은 왜인가.
그것이 이 영화가 당금의 현실에 더 필요하다고 여기는 메시지이기 때문일 것이다.
오랫동안 이어져 온 것들에 대한 이해와 공감이 부재한 혁신은 러브머신의 맹목적 호기심처럼 파괴적일 수 있다. 그리고 그 파괴력에 맞설 수 있는 것은 오랫동안 쌓아온 믿음으로 똘똘 뭉친, '우리' 스스로에 대한 긍정과 애정이다. 영화가 전달하고자 하는 바는 이렇게 두 문장으로 요약할 수 있지 않을까.
그리고 이 메시지들은 영화가 개봉했던 2009년 당시만 하더라도 OZ라는 설정으로 막연히 상상됐던 인포스피어(infosphere)*가 마침내 현실이 되어버린 작금에 이르러 더 긴박하게 느껴진다. '더 쾌적하고 풍부한 편리를 앞세운 새로운 삶의 방식이 오히려 우리의 실존과 행복을 위협할 수 있다'는 경고는 이미 크고 작게 실현되어 우리 모두 체험하고 있는 바이기도 하니까. 그렇다면 오늘날 우리를 공격하는 러브머신은 무엇일까. 진노우치 가처럼 그에 대항할, 소박하지만 끈질긴 신뢰같은 것이 아직 우리에게 남아 있기는 한 것일까.
승부의 결과가 뻔히 드러나는 위험(과 더불어 도박과 결부된 부정적 이미지 등)을 감수하고 마지막 대결을 고스톱으로 결정한 것은, 게임을 진행시키기 위해 끊임없이 상대의 마음을 고심해야 하는 고스톱의 기본이자 핵심 요령이 영화가 주장하고자 하는 관계의 기본자세와 닮아 있기 때문일 것이다.
상대의 마음을 헤아리고자 하는 그 자세가 우리를 외로움에서 구하고, 함께 밥을 차려 먹을 수 있는 관계를 만들어 낸다. '변함없이 가족 모두 모여서 밥을 먹거라.'라는 할머니의 유언이 가족의 질서를 뿌리치고 이탈했던 와비스케(그가 러브머신의 개발자라는 점을 유념할 필요가 있다.)를 결국 포용하듯이, 밥을 먹어 현실의 생존을 유지하고 서로를 혼자 두지 않음으로써 현실에 연결되어 있음을 느끼게 해주는 이 '현실적'인 노력들이야말로 비로소 우리의 삶을 가상의 욕망에 흔들리지 않는 단단한 관계로 엮어주는 것이 아닐까.
그것이 바로 이 영화가 러브머신에 대항해 승리하는 가족을 그림으로써, 그리고 그 가족이 가족을 부정하고 가족에서 이탈했던 이마저 다시 포용하는 모습을 그림으로써 긍정하고자 했던 '사랑'의 가치일 것이다. 편리함에 취해 관계의 책임을 소홀히 해서는 안 되는 것이라고, 그 사이의 균형을 잃어서는 안 된다고, 영화는 넌지시 타이르고 엄하게 꾸짖는다.
*인포스피어(infosphere)_상호 연결된 정보적 유기체인 인포그(infog)로 이루어진 총체적 환경. 루치아노 플로리디가 창시한 정보철학에 등장하는 개념이다. 현대 사회에서 인간을 포함한 모든 존재는 궁극적으로 정보적이라는 점에서 평등한 '정보적 존재자'라는 관점을 바탕으로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