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아는 한 가지

『소피의 세계』_ 06. '바로크', '데카르트', '스피노자'

by 하소초


0. 안다는 것.

이 책이 나온지 벌써 30여 년이 지났다는 걸 감안하면, 오늘까지 우리가 읽기로 한 부분에서 꽤 재미있는 장면이 나옵니다. 바로 요즘 우리의 새로운 일상이 된 '생성형 AI'가 등장한다는 것인데요, 윈도우도 아니고 무려 도스dos를 운영체제로 쓰는 알베르토의 컴퓨터에서 '라일라'(laila는 황혼, 혹은 시간을 뜻하는 히브리어 lailah 또는 아랍어 layla의 변형에서 비롯된 단어라고 하네요.)라는 첨단 대화 프로그램(!)이 마치 대규모 언어 모델로 학습한 것처럼 소피와 유연하고도 유창한 대화를 나눕니다.


획기적인 '인공지능'의 발전으로 '안다는 것'에 대한 대중적인 사유가 어느 때보다 뜨거운 요즘입니다. 앎에 대한 정의는 물론 앎의 과정과 구조, 가능성에 이르기까지 모두 새롭게 모색되고 있는 중이죠. 버블이 우려될 만큼 이 새로운 '앎'에 대한 투자도 왕성합니다. 그만큼 새로운 '앎'의 방식에 대한 우려와 함께 기대 또한 크다는 것이겠죠. 마치 데카르트와 스피노자가 살았던 시대처럼 말입니다. 이 시대는 헬레니즘처럼 여러 모로 우리가 사는 시대를 상기시킵니다. 어쩌면 헬레니즘보다 훨씬 무겁게요.


ms dos의 시작 화면(좌)과 chat gpt의 시작화면(우)_출처 : extremetech, chat gpt


책에서 '바로크'로 명명하고 있는 유럽의 17세기는 헬레니즘처럼 격렬한 시대전환기이면서도, 우리가 사는 시대의 아주 기본적인 원칙들이 만들어진 시대거든요. 자본주의와 민주주의를 뒷받침하는 여러 제도와 가치관, 과학이라는 새로운 신앙과 기계적 세계관이 바로 이때부터 시작되었습니다. 오늘부터 앞으로 함께 살펴볼 이야기는 그런 면에서 갈수록 더 재밌을 수도, 하지만 어떤 면에서는 더 어려울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남의 얘기보다, 나의 얘기가 언제나 더 그러한 것처럼요.



1. 지식이 범람하는 시대, 고로 의심할 수밖에 없는 시대

종교개혁이 유럽에 몰고 온 후폭풍은 대단했습니다. 루터가 제시한 새로운 교회 모델(부패한 교황 대신 제후가 교회를 관장하는 루터의 '국가 교회 모델')은 제후의 권력을 키워 주었고, 교회 공동체에서 함께 보는 성경(자신이 사는 지역의 언어로 번역된 성경)은 '국어'를 중심으로 하는 민족의식을 형성하게 했습니다. 칼빈이 제시한 교회 모델(왕권과 충돌하지 않는 자율적 교회 공동체를 지향하는 '국가 독립 모델')은 이미 국왕 중심의 중앙집권화가 많이 진행된 나라들에서 더 폭 넓은 지지를 받으며 귀족과 상공인들이 중요한 사회 권력으로 부상하는데 큰 기여를 했죠.


유럽 사회의 머리 끝부터 발끝까지 일종의 권력 교체가 이루어지게 된 것이에요. 그리고 그 속도는 여러 곳에서 기존의 의식이 변화하는 속도와 다양한 양상으로 어긋났습니다. 변화의 속도가 어긋나면 충돌이 일어나게 마련이죠. 가톨릭과 개신교의 갈등은 결국 유럽 전역에서 30년 전쟁(1618~1648)으로 폭발하고, 이 전쟁에 파리한 얼굴(젊었을 때 초상화를 보면 예쁠 지경)의 병약한 청년, 데카르트도 참전합니다. 애국심이나 종교적 신념 때문이 아니었어요. 그는 처음엔 개신교 측인 네덜란드 신교군에 입대하지만, 2년 뒤 가톨릭 쪽 제후의 군대에 합류하기도 하거든요. 그럼 대체 무엇 때문에 그는 생사가 오가는 수라장에 뛰어든 것일까요?


30년 전쟁의 세력분포_출처 : 백조히프의 놀이터(네이버 블로그)


놀랍게도 호기심 때문이었습니다. 돌아이었던 것 같아요. 삶의 극한 상황 속에서 인간의 존재와 진리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을 던지고 싶었던 것이죠. 종교 개혁 시기의 극심한 혼란 속에서 자란 데카르트는 신학이나 스콜라철학처럼 외부 권위(신의 권위)나 전통(교회의 질서)에 의존한 믿음들이 무너지는 걸 경험했거든요. 그렇다고 당시 대다수의 지식인들처럼 진리에 대한 판단을 유보하는 방관적 회의주의에 빠지고 싶지도 않았습니다. 범람하는 의견의 시비를 고찰하지 않고 잘해야 상대주의로 도망치는 지식인들의 태도는 비겁하고 무책임해 보였습니다. 진리에 무관심한 자들이 세상을 더 나은 곳으로 이끌어줄 것 같지 않았어요.


그래서 그는 외부 권위나 전통의 맥락 대신 철저한 논리 구조로 사유하는 수학에 매료됩니다. 그리고 진리 탐구의 방법 또한 수학처럼 명료한 확신에서 출발한 논리적 과정으로 구축되어야 한다고 생각하죠. 그 명료한 본질을 찾기 위해 전쟁에 뛰어든 그는 실제로 전쟁 중의 경험과 사색을 바탕으로 자신만의 철학의 기초를 닦습니다. 전쟁 중에 그게 어떻게 가능한가 싶겠지만, 귀족 출신인 그는 병사가 아닌 장교로 참전했기 때문에 실제 전장에서 싸우진 않았어요. 게다가 병약한 체질 탓에 주로 후방에 배치되어 혼자 침대에서 뒹굴뒹굴 (심지어 늦잠 자는 습관을 유지했다고 합니다.) 철학적 탐구를 이어갈 수 있었다고 하네요.


출처 : 코파일럿 생성 이미지. (얘한텐 이제 이런 거 시키지 말아야지...)


그가 막사에 누워 파리의 움직임을 보다가 좌표평면을 고안했다는 일화(확실한 근거는 없습니다.)는 유명하죠. 좌표평면은 수학적 사고를 공간과 현실에 적용할 수 있게 해주었고 이후 미적분, 근대 물리학과 공학의 수학적 모델링 등이 등장하는 데에도 큰 영향을 미쳤대요. 수포자의 지옥문을 열어젖힌 장본인이 철학자였다는 사실은 수학의 본질이 실은 지극히 문과적인 동기와 맞닿아 있다는 것을 알게 해줍니다. 실제로 서양의 여러 대학들에서는 수학을 문과 계열 학문으로 간주하기도 하죠. 이는 수학을 지극히 계산 기술로만 접근하는 우리나라의 수학 교육을 되돌아보게 하는 면이 있어요. (어쩌면 수포자는 계산 학대 거부자일 뿐인지도..)


앗, 잠시 삼천포(문과의 한풀이)로 빠졌는데, 그래서 데카르트는 어떤 철학을 추구했느냐. 그는 지식의 확실성을 확보하기 위해 의심할 수 없을 때까지 의심해보기로 결심합니다. 수학적 명제조차도요. 회의와 싸우기 위해 회의를 끝까지 밀어붙인 거예요. 그리고 그 의심 끝에, 결국 자신이 의심한다는 것까지 의심할 수는 없다는 결론에 이릅니다. 의심의 바닥에 이르러 마침내 그 유명한 '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cogito, ergo sum(본래 자국어인 프랑스어Je pense, donc je suis로 작성했으나 철학적 권위와 논리적으로 간결한 구조를 확보하기 위해 라틴어로 번역했다고 해요.)'에 이른 것입니다. "내가 아는 한 가지"를 찾은 것이죠.


『자연의 빛에 의한 진리 탐구(Inquisitio Veritatis per Lumen Naturale)』의 한 부분_출처 : wikiwand


생각하는 존재에 대한 확신은 그 존재의 생각, 관념의 단단한 토대가 되어줍니다. 그리고 관념은 그 관념이 있게 한 존재에 대한 확신으로 이어지죠. "완전함에 대한 관념은 완전한 존재가 있기에 가능하다."는 것이 데카르트식 신의 증명이었습니다. "완전함에 대한 관념"은 곧 "이성"을 뜻하는 것이기도 했는데요, 이는 외부의 현실에 대한 인식에 대한 탐구로도 이어집니다. 그는 감각을 통해 얻은 외부의 인상들은 언제든 변할 수 있지만, 자명한 직관, 즉 이성을 통해 측정이 가능한 양적 성질들은 변하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했어요. 이성은 완전함에 대한 관념이고 그것은 완전한 존재, 즉 신에 의해 보증되는 것이니까요.


말하자면, 적어도 이성에 기반한 외부 현실에 대한 확신은 축적할 수 있다는 것이에요. 직관의 자명함에서 시작하여 신의 존재, 외부 현실에 대한 인식의 타당함까지 정복한 데카르트는 이제 존재의 본질을 탐구합니다. 그는 모든 존재는 두 가지 실체로 분류할 수 있다고 생각했어요. 책의 용어를 따르자면 정신적 존재인 '영혼'과 공간적(혹은 물리적) 존재인 '연장(延長)'으로 나뉜다고 본 것이죠. 그리고 오직 인간만이 그 두 가지 속성을 모두 지닌, 즉 정신적이면서도 물질적인 존재라고 보았죠. 마침내, '생각하는 나'의 본질에 대한 성찰을 완성한 것이에요.


바로크식 가발을 쓴 뉴턴, 그의 미적분 또한 데카르트에 빚진 바가 있다. _출처 : 매일신문


차곡차곡, 자신만의 방식으로 진리의 체계를 쌓아나간 데카르트의 철학은 르네상스로 들끓던 수많은 지식들과 흔들리는 신앙이 남긴 수많은 잔상들의 종합이었습니다. 수학적 냉철함으로 만든 인식의 토대 위에 과학과 기술의 유행이 만든 유물론의 이미지로 현실을 규명하고 에라스무스의 개혁을 계승하듯 이성적 삶을 실천하는 영혼의 자유를 추구했죠. 그리고 이러한 그의 업적은 지금까지도 강력히 우리 세계를 지배하는 여러 근대적 사고방식의 출발점이 되었습니다. 데카르트의 철학이 20세기적 관점의 가능성과 한계로 이어지는 구체적 양상은 아마 앞으로 우리가 함께 읽을 내용에서도 꽤 큰 부분을 차지할 것 같아요.



2. 아웃사이더의 우주적 자유

스피노자는 출생 전부터 종교개혁의 파고에 휩쓸립니다. 당시 유대인은 예수 살해 민족이라는 낙인으로 유럽에서 왕따 받고 있었는데, 마침 세력 다툼이 첨예했던 가톨릭과 개신교 양쪽의 예민함이 유대교 박해를 더욱 자극했거든요. 유대인이었던 스피노자 집안도 원래 포르투갈에 살았는데 가톨릭의 종교 재판을 피해 상대적으로 종교적 관용이 높고 유대인 공동체도 형성되어 있었던 네덜란드로 이주하게 되었어요. 스피노자는 그 덕에 네덜란드의 관용적 문화와 유대 공동체의 교류에 의지한 경제적 풍족함 속에서 태어나 자라게 됩니다.


그리고 자랄수록 그 명석함 만큼 모두의 기대를 받게 되죠. 집안에선 아버지의 사업을 물려받을, 유대 공동체에선 랍비(율법학자. 기독교로 치면 목사나 신부에 해당하지만 유대교의 성격상 랍비는 종교 지도자인 것은 물론 민족 지도자로 받아들여진다.)가 될 재목으로 주목 받았어요. 그런데, 스피노자는 우리에게 부유한 랍비로 기억되지 않잖아요? 그는 고분고분 어른들이 바라는 대로 자라기는 커녕 유대교에서 말하는 신을 부정하고 율법을 비판해요. 그리고 유대 공동체에서 혹독한 파문을 당하죠. 가족과의 연도 물론 끊기고요.


17세기 화가의 자화상. 안경 수요가 꽤 있었던 듯_출처 : 옵틱 위클리


그가 렌즈 세공으로 생활비를 벌었던 검소한 철학자로 기억되는 것은 그래서입니다. 유대 공동체에서 파문 당했기에 유대인 네트워크에 기댄 경제 활동을 할 수도 없었고, 유대인이었기에 비유대인의 세계에서 취직하기도 쉽지 않았습니다. 때문에 그는 처음엔 개인 교습(지금으로 치면 무허가 과외) 등으로 우선 돈을 벌었고 갈릴레이 이후 눈부시게 발전하고 있던 광학(光學)에 대한 관심으로 틈틈이 렌즈 세공을 배워 최소한의 사회적 활동으로 돈을 벌 수 있는 수단을 마련한 것이죠. 렌즈 세공은 혼자 방 안에서 할 수 있는 작업이었으니까요.


데카르트나 스피노자나 혼자 있는 시간에 목숨 거는 전형적인 동굴남이었네요.


그런데 렌즈세공-철학연구-렌즈세공-철학연구만 반복하던 그에게 독일에서 대학 교수 자리 제안이 온 적도 있었어요. 생전에 자기 이름을 걸고 출간한 유일한 책이 『데카르트 철학의 원리』였을 만큼 그는 데카르트 전문가로 유명했거든요. (물론 동굴남으로 사는 것이 자유로운 철학 연구에 이로울 뿐만 아니라, 공적 자리에서 또 다시 마주하게 될 박해가 두려웠던 그는 거절합니다. 성서를 비판하고 사상의 자유를 옹호하는 등 매우 급진적인 견해를 담았던 그의 또 다른 생전 저서 『신학-정치론』도 익명으로 출판할 정도였어요.)


1670년 익명으로 출판된 신학정치론_출처 : 위키백과


그러나 그는 데카르트를 앵무새처럼 그대로 옮기는 사람은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데카르트의 이원적 실체론(실체=영혼_정신+연장_물질)을 비판하고 일원론(모든 자연은 곧 신이므로 실체는 오직 하나)을 주창했죠. 데카르트는 생각하는 특성을 지닌 특성과 공간을 차지하는 특성을 가진 연장은 철저히 독립되어 있으며 그러므로 물질을 이해하는 방식으로 정신을 이해할 수 없다고 생각했어요. 이를테면 정신을 측정하려 한다든지 물질처럼 관찰하려 한다든지 할 수 없다는 거죠. 이것은 당시 부상하던 유물론, 즉 물질적 현상으로만 세계를 이해하는 분위기 속에서 정신이나 영혼, 혹은 이성의 가치를 옹호하기 위한 태도였다고도 보여요.(제 생각이에요.)


그러나 그러다보니 설명이 안 되는 것들이 많았겠죠. 데카르트가 좋아하는 직관에 근거했을 때 정신과 물질은 분명히 서로 영향을 주고받는 것 같았거든요. 마음과 몸의 관계를 생각해 보세요. 지금이야 뇌과학이나 심리학의 발달(그런데 이런 학문의 등장도 다 마음과 몸의 관계를 고민하게 한 데카르트 덕분입니다.)로 현대인들은 둘이 영향을 주고받는 것이 명백하다고 생각하지만 당시엔 그런 게 아직 없었잖아요. 그러니 혼란스럽죠. 그래서 데카르트의 이원론은 여러 모로 논란의 대상이 되었다고 해요. 데카르트도 정신과 물질의 연관성을 부정하진 않았지만, 정확히 어떻게 연관이 되는지는 설명하지 못(안?)했으니까요.


스피노자의 범신론을 표현한 ai 생성 이미지_출처 : freepik


스피노자는 바로 그 연관성을 설명하려 한 것입니다. 그 설명을 이해하려면 우선 스피노자가 성서를 역사적 관점에서 이해하려 한 사람이었다는 점을 알아야 할 것 같아요. 그는 성서의 철자 하나하나를 하나님의 말이라고 곧이곧대로 받아들이면 안 되고, 성서가 쓰인 시대 상황을 바탕으로 이해해야 한다고 주장했죠. 이러한 관점은 당시 유대교, 가톨릭, 기독교 어느 곳에서도 인정받는 것이 아니었어요. 그래서 앞서 나왔듯 말포이처럼 무슨 말만 하면 엄청 탄압 받고(입 닥쳐, 스피노자!) 결국 그게 눈치 보이고 두려워 책도 익명으로 내고 교수직도 거절했던 것이죠. (물론 그를 지지하고 지켜준 이들도 없지 않았지만요. )


이런 말을 하면 스피노자는 무신론자였나- 하는 분들이 있으실 것 같은데, 유럽은 기독교 중세를 거쳤잖아요. 서양인들에게 하나님을 믿는 신앙인으로서의 태도는 우리가 한국에서 경험하는 교회 문화 정도가 아니예요. 효나 예의범절같은 우리의 유교 문화처럼 아주 오랫동안 축적되어온 삶의 태도입니다. 신앙은 유럽인들에게 매우 당연한 것이었어요. 스피노자가 성서를 비판적으로 이해하고자 한 것은 성서를 더 잘 받아들이기 위해 새로운 관점을 제시한 것이지 성서를 부정하는 건 아니에요. 조선 후기 유학자들이 훗날 실학으로 평가받는 실사구시를 주장했다고 해서 유학을 부정한 것은 아닌 것처럼요.


이익, 박지원, 정약용의 실학은 모두 유학_출처 : 세계일보


여튼, 성서의 역사적 해석을 주장하다 파면당할 만큼 스피노자 철학에는 시간의 흐름이 아주 중요한 전제로 깔려 있어요. 영원한 시간, 영원의 관점에서 사물과 세상을 이해하려 했죠. 그리고 삶을 우주적 연관 속에서 이해하려 했습니다. 아시다시피 우주는 우리에게 시간과 공간에 대해 아주 다른 차원의 성찰을 제공하잖아요? 스피노자가 렌즈 세공을 생업으로 삼을 만큼 광학에 조예가 깊고 천문학에 관심이 많았다는 것은 우연이 아닌 것 같아요. 그리고 그 필연은 영원을 관통하는 일관된 질서의 발견으로 이어집니다. 스피노자는 그것을 신이 부여한 이 세계의 질서, 즉 자연이라고 생각한 것 같습니다. 자연의 모든 곳에 신의 질서, 즉 신이 깃들어 있다고 본 것이죠.


'신'에 대한 스피노자의 독특한 견해는 물론 망원경으로 밤하늘을 바라보다가 난데없이 뿅 등장한 것은 아니었을 겁니다. 당연히 기존의 견해에 대한 면밀한 숙고를 디딤돌 삼아 발전시킨 것이었겠죠. 당시 아직 주류 철학이었던 스콜라 철학에서나 새롭게 등장해 인기를 얻던 데카르트의 철학에서나 '신'을 현실의 외부에서 관여하는 초월적 존재이자 원인이라 정의했는데, 그게 스피노자는 참 이상했거든요. 말하자면 논리에 허점이 있어 보였어요. '신이 모든 것의 원인이고 그러므로 신의 원인조차 신이라면 그것은 신이 신이 되었다는 것이니 결국 결과로서의 신은 원인으로서의 신이 변화한 것일 뿐'이라고 보는 게 스피노자에겐 자연스러웠어요.


그렇다면 우리는 외려 신을 마구잡이로 초월적이고 외부적인 실체로 정의할 것이 아니라 그 변화를 성찰해 봐야 한다고 스피노자는 생각했습니다. 수학의 논리처럼 엄밀한 인과 관계에 따라서요. (그도 데카르트처럼 수학적인 철학을 전개했어요. 수학 혁명의 막바지에 탄생한 철학자들의 숙명이랄까요.)


신이 우리를 포함한 모든 현실의 원인이라면 현실 속의 다양한 모습들은 신이라는 변화의 대상이 변화의 작용을 거쳐 산출한 변화의 결과이고 그렇다면 인간을 포함한 모든 자연과 그것들이 만들어내는 현상들은 신의 섭리, 즉 신이 반영된 각각의 양상(modus. 양태라고도 번역됩니다.)이라고 할 수 있다. 거꾸로 생각하여 세상의 수많은 양상들의 원인을 거슬러 올라가다보면 도달하게 되는 단 하나의 실체가 있을 텐데, 이 실체는 '자기가 스스로의 원인'이 될 수밖에 없다. 이 유일한 실체를 우리는 '신'이라 해야 할 것이다.


요약하자면 이런 식인데요, 결국 현실의 실체(존재의 본질)는 데카르트가 말한 것처럼 정신적인 것과 물질적인 것으로 나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이 정신적인 것이든 물질적인 것이든 신이라는 유일한 실체의 다양한 양상 중 하나일 뿐이라는 게 스피노자의 주장이었죠. 그리고 그 다양하고 복잡한 모든 양상의 유일한 실체는 오직 '신'일 뿐이라는 것이 스피노자식 일원론의 요지입니다. 스피노자에게 신은 질서를 만든 분리된 개체가 아니라 세상 혹은 세상의 질서 그 자체였고 그것들은 물질과 정신적인 존재는 물론 그 외 무한히 많은 다른 속성도 포함할 수 있었어요. 데카르트의 이원론은 인간이 정신과 물질 두 가지 속성만 인지할 수 있기 때문에 나온 것이라 보았죠.


자신의 존재를 지키고자 하는 욕망과 코나투스는 스피노자 철학의 핵심이다._출처 : 을유문화사(좌), 유튜브(우)


스피노자의 일원적 실체론은 '자유'에 대한 생각도 한 차원 끌어올립니다. 인간의 실체를 둘로 나누어 인식한 데카르트에게 자유는 의지의 영역이었습니다. 이성의 명확한 인식을 놓치지 않는다면 육체라는 물질적 요소에 휘둘리지 않는는 자유로운 선택을 할 수 있다. 말하자면 이성적 선택의 의지가 실현됐을 때 인간은 자유롭다는 것이었어요. 하지만 스피노자는 인간을 비롯한 모든 존재는 신이라는 실체에서 비롯된 인과의 과정 속에 존재하는, 그리고 그 과정의 본질에 따라 작동하는 양상일 뿐이므로 개별적 의지는 불가능하다고 보았어요. 모든 것은 인과에 따른 필연이니까요.


그러므로 진정한 자유는 자신이 속한 그 인과의 필연을 이해하는 것에서 온다고 주장했습니다. 자유를 의지에서 인식의 수준으로 끌어올린 것이죠. 그렇다면 자유라는 게 너무 어려워진 게 아닌가 싶지만, 자유에 대한 스피노자의 관점은 우리에게 인간중심주의의 그물을 벗어나는 길을 열어 줍니다. 우리 모두는 하나로 수렴되는 질서의 필연 속에 있는 고유의 존재라는 걸 깨달을 때 정념(passio)에 예속(servitus)되지 않고 자신만의 역량(conatus)을 극대화하여 마침내 자유롭게 자기다운 자기 자신이 되어 행복해질 수 있다는 생각은 인간과 자연을 가리지 않고 평등하게 적용되니까요.


데카르트가 과학 기술 발전과 인간중심주의, 그리고 자연과 타자에 대한 지배적 태도가 공존하는 모더니즘의 씨앗을 뿌렸다면 스피노자는 다원주의와 생태주의 나아가 근래 등장한 정보철학에 이르는 포스트 모던적 사유의 비전을 미리 제시했다고도 볼 수 있을 것 같아요. 우리의 20세기와 21세기가 이렇게 심오한 얼굴을 하고 출발했을 줄이야.


대륙 합리론 삼총사, 데카르트-스피노자-라이프니츠_출처 : 유튜브


3. 다음 주 진도 및 subtext 소개 및 마무리

사실 개인적인 취향 때문에 분량 배분에 좀 실패했어요. 데카르트에게 미안한 마음을 담아, 데카르트를 위한 변명으로 마무리를 해볼까 합니다.


데카르트의 cogito, ergo sum에 대한 비판은 매우 흔합니다. 틀렸다는 거죠.(전 심지어 어떤 만화책의 각주에서 저 문구에 대해 '서툰 생각'이라고 짤막하게 부연하는 걸 본 적도 있어요.) 하지만 데카르트의 오류는 그 시대 사람이 도달할 수 있는 명석함에서 오는 것이기도 했어요. 수학 혁명의 끄트머리와 과학혁명의 초입을 살았던 그는 당대 가장 최신의 방법으로 우리 삶의 근본 문제들을 규명하려 한 첫번째 개척자였을 뿐이에요. 그럼에도 그는 매우 신중했습니다. 철저한 의심 끝에 도달한 확신을 전제로 신과 영혼 등을 연역해 나간 그의 철학 방법만 보아도 알 수 있죠.


문제는 바로 그 전제를 의심하지 못했다는 것이겠죠. '나는 확실하게 알 수 있는가', 즉 '명석판명하게 통찰할 수 있는가'로 의심을 시작했는데 '나는 명석판명하게 통찰하므로 존재한다.'는 식의 순환논리로 결론을 내버린 셈이니까요. 희대의 천재가 이런 어처구니없는 자가당착에 빠졌다는 게 놀랍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놀라울 것도 없다는 생각도 듭니다. 우리보다 200년 후쯤 태어난 이들은 아직 우리가 깨닫지 못한 우리의 자가당착들을 보면서 어처구니 없어 할 지도 모르니까요. 그렇게 현재를 돌아보게 되는 것이 소피의 세계를 읽는 숨은 재미이기도 한 것 같습니다.


다음 주에는 대륙의 합리론(보통 프랑스의 데카르트, 네덜란드의 스피노자, 독일의 라이프니츠를 근세 합리주의 삼총사로 꼽아요. 『소피의 세계』에서는 라이프니츠를 그리 비중있게 다루지 않네요. ㅠ) 에 대항하듯 영국에서 등장한 경험주의자들을 살펴 볼 겁니다. 어찌 보면 데카르트의 태도를 발전시켜 더 치열하게 의심을 밀어붙인 학자들이라고도 할 수 있겠는데요, 그 각각의 이름을 딴 '로크', '흄', '버클리' 세 단락을 다음 주까지 함께 읽기로 해요.


출처 : 교보문고


이번 주 subtext는 『데카르트&버클리-세상에 믿을 놈 하나 없다』라는 책입니다. 김영사에서 나온 <지식인 마을>시리즈의 두번 째 책입니다. 이 <지식인 마을>시리즈야말로 ‘청소년 도서로 기획됐지만 사실은 어른 취향에 너무 적합한’ 시리즈예요. 어른 취향의 주제를 청소년의 눈높이로 풀어낸 기획이라 읽기 아주 좋죠. 처음 나왔을 땐 표지 디자인이 너무 아동틱했는데 요즘엔 그마저도 세련되게 바뀌어서 지하철에서 서서 읽어도 전혀 부끄럽지 않답니다. 이번 시간을 정리하고 다음 시간을 부드럽게 준비하고픈 분은 물론 '앎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본격적인 성찰을 원하시는 분이라면 강추.


아, 연휴인 김에 영화 토탈리콜과 매트릭스를 곁들여 보신다면 더욱 좋겠네요.


출처 : bric(좌), 씨네21(우)



연휴의 함정에 빠져 아슬아슬했던 이번 주 숙제는 이렇게 마감합니다.


열심히 할테니, 다음 주에도 꼭 검사하러 와주세요. (제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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