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피의 세계』_ 07. '로크', '흄', '버클리'
0. opening
별 생각 없이 첫화의 제목을 초고에 쓰인 대로 듀스의 노래 가사로 정했다가 매주 내용과 어울리는 노래 제목을 찾느라 고생인데요...솔직히 천일동안부터 좀 억지스럽다고 생각했지만, 그래도 하다 보니 애정이 생겨서 대문 이미지를 고르는데 꽤나 시간을 쓰고 있습니다;; 나중에 outro에서 제목들에 대한 얘기도 꼭 되짚어 봐야겠어요...
오늘 제목인 "믿어지지 않는 얘기"는 팝보컬의 장인(이라고 저는 생각함...) 조규찬이 1997년 발매한 4집을 통해 선보인 노래 제목이에요. 갑작스런 이별에서 오는 인지부조화를 표현한 곡인데요, 우리가 함께 읽은 오늘 진도(?)에서도 영국의 경험주의자들이 17세기의 격변이 불러온 인지부조화에 어떻게 대응했는지 엿볼 수 있습니다.
지난 시간부터 유럽의 17세기는 20세기적 가치관의 태동을 엿볼 수 있는 시기라고 말씀 드렸죠? 오늘 만나는 철학자들은 한층 더 지금의 우리와 비슷한 사고방식을 보여주는데요, 실제로 우리의 상식들이 얼마나 '경험주의적'인지 책을 함께 읽으신 분들은 느끼셨을 거예요. 더불어 힐데와 알베르트 소령의 비밀도 거진 밝혀지는 단락이니 오늘 단락은 이래저래 중요하네요.
1. 실용적 자유주의_존 로크
스피노자가 태어난 해이기도 하고 데카르트가 권위적인 프랑스의 분위기를 피해 네덜란드로 이주해 활동할 즈음인 1632년, 영국에선 의회 중심의 민주정치와 삼권분립의 원리(입법권과 행정권의 이권분립까지만 그가 주장해요. 이를 기초로 훗날 프랑스의 몽테스키외가 우리가 잘 아는 입법-행정-사법의 삼권분립을 주창하죠.)를 만들고 후에 프랑스 시민혁명과 미국의 독립혁명에까지 지대한 영향을 끼치는 사람이 태어납니다.
존 로크가 바로 그 사람이죠. 그가 성장할 당시 유럽에서 가장 명망 있던 학자가 데카르트였던 만큼, 그도 처음엔 데카르트에 심취합니다. 그러나 오래지 않아 데카르트를 맹렬히 비판하죠. 감각적 경험의 착각을, 말하자면 고유의 경험을 뿌리쳐야 진리에 가까이 갈 수 있다는 것도 납득하기 어려웠지만 특히 '타고난' 이성으로부터 확실한 앎이 비롯된다는 합리주의의 기본 스탠스가 마음에 들지 않았어요.
아마도 타고 나는, 즉 신에게서 주어지는 이성을 가장 앞에 두는 합리주의(인식의 기준을 "이성에 부합하는가"에 두기 때문에 합리주의입니다. 우리가 보통 효율이나 융통성과 연관지어 쓰는 '합리적'이라는 말의 '합리'와는 쓰임에 약간 차이가 있어요.)가 지나치게 신의 권위에, 구체적으로는 신의 권위를 등에 업은 자들을 필요 이상으로 옹위하는 것으로 보였던 게 아닐까 싶어요.
영국은 그때쯤 그런 분위기가 형성되어 있었거든요. 30년 간의 종교 전쟁을 거쳐 왕과 귀족 중심의 강력한 중앙집권화를 이룬 유럽대륙의 여러 강대국들과 영국은 좀 달랐어요. 절대 왕정과는 동떨어진 의회 정치가 발달하고 있었거든요. 특별히 앞서가는 민주주의 유전자가 있어서가 아니라, 일찍부터 의회가 발달하게 된 계기가 있었어요. 그것도 어찌보면 영국의 잘나감보다 못나감에서 비롯된 계기였죠.
로마가 무너진 이후의 중세는 알다시피 크고 작은 제후들의 권력다툼이 이어지는 전국시대戰國時代가 이어졌는데요, 어느 정도 큰 덩어리들(영국, 프랑스, 스페인 등)로 정리된 13세기 초쯤엔 강대국들의 영토 분쟁이 더 치열해지고 있었죠. 그런데 그때쯤부터 전쟁은 일종의 대규모 국가 사업의 성격을 띄기 시작해요. 큰 나라들이 큰 돈을 걸고 전쟁을 일으켜 상대의 땅을 얻으면 크게 버는 거고 반대면 크게 망하는 거죠.
(중세 초기의 자잘한 전쟁들과 달리, 12~13세기엔 큰 나라들이 붙는 만큼 대규모 군대 동원에 필요한 다양한 병종과 장비가 필요했어요. 요즘 말로 하면 방산업이 발달했고, 전쟁에 기댄 경제 자체가 크게 발달해요. 물론 그 저변엔 십자군 전쟁과 도시city의 성장으로 인한 사회 구조 변화, 그리고 화폐 경제의 확산이 불러온 여러 사회문화가 맞물려 있었습니다. 지난 4-5회차를 다시 보셔도 좋을 것 같아요.)
그런데 그때쯤 영국이 프랑스한테 자꾸 털렸어요. 졌어요. 백성들에게 엄청 세금 땡겨서 호기롭게 전쟁을 일으켰는데 망한 거죠. 왕은 쭈구리가 될 수밖에 없었어요. 성난 투자자 앞에 고개숙인 ceo처럼요. 그렇게 전제 왕권을 휘두르던 존 왕이 귀족들에 의해 강제로 서명하게 된 문서가, 왕도 법 아래에 있고(!) 과세는 귀족의 동의를 얻어야만 한다(!)는 내용의 대헌장Magna Carta(1215)이었죠.
대제국을 건설하기 불리했기에 민주제가 발달할 수 있었던 그리스처럼, 대륙의 강국들과의 경쟁에서 밀리는 바람에 영국은 일찍부터 법치주의와 의회주의를 발달시킬 기회를 잡을 수 있었던 거죠. 그런 영국이었기에 종교 전쟁 이후의 권력 교체도 강력한 왕권의 중앙집권화로 이어질 수 없었던 겁니다. 그것도 모르고 옆동네 왕들처럼 분위기 탈 줄 알았던 찰스 1세는 대헌장을 어기고 세금 마음대로 걷었다가 내전civil war을 경험하게 되죠. (이것이 청교도Protestant 혁명. 당시 의회 세력의 다수가 청교도였음.)
혁명 결과 찰스 1세는 처형 되고(!) 영국에서는 아예 왕정이 무너지기까지 합니다. 공화정이 들어선 것이죠. 물론 공화정의 권력자 크롬웰이 왕보다 더한 독재를 하는 바람에 옛날이 나았다며 얼마 안 가 다시 왕정으로 돌아가긴 하지만요. 그래도 의회로 뭉쳐 왕을 견제해 온 전통과 내전 승리를 거쳐 공화정 수립까지 경험한 영국인들의 사고방식은 그렇지 않은 이들과 아무래도 좀 달랐겠죠?
로크는 타고난 이성보다 개개인이 지닌 고유의 경험이 진리의 통로라고 생각했습니다. 경험을 통하지 않고는 아무 것도 인식할 수 없다고 여겼어요. 경험된 사태와 관계없는 관념이나 표상은 거짓된 표상이라 했죠. 이 관념이니 표상이니 하는 말을 조금 설명하고 지나가야 할 것 같아요. 이 개념은 현재 우리의 현대문명에도 (우리도 모르게) 내재되어 있는 것이니까 기호학을 빌려와서 좀 얘기해도 좋을 것 같네요. 대신 살짝 돌려서.
신호등을 예로 들어볼까요? 신호등은 붉은색, 노란색, 초록색의 동그란 등이 나열되어 있죠. 우린 붉은등이 켜지면 서고, 초록색이 켜지면 가고, 또 노란색이 켜지면 과속을 하고 싶은 욕망을 느끼지 속도를 줄이지 않습니까. 여튼 신호등의 색깔을 통해 우리는 어떤 메시지를 이해하죠. 이때 신호등의 색깔을 기표, 기표를 통해 이해하는 혹은 떠올리는 메시지를 기의라고 합니다. 그것이 기호의 기본구조이기도 하고요.
그럼, 기호가 아닌 사물을 인지할 때는 다를까요? 사실 다를 게 없습니다. 우리는 사과의 빛깔, 향기, 냄새, 촉감 등을 감각하여 사과라는 메시지를 인지하죠. 이때 우리가 감각해낸 것들이 표상, 그 표상을 통해 인식한 것이 관념이라고 보면 됩니다. 사과가 실재하는지 아닌지는 알 수 없지만, 우리는 나름의 표상화를 통해 하나의 관념을 얻는 것이죠.
데카르트 같으면 이것을 “사과가 실재하는지 모르겠지만 내가 빨간색을 인식하고 매끈함을 느끼고 있는 건 어쩔 수 없는 사실이잖아. 그것만은 의심할 수 없군.”이라고 설명했겠죠. 하지만 로크는 그것마저 의심했습니다. “사과를 보고 있다고? 마치 보는 주체로서의 자신이 확실히 존재한다는 듯이 얘기하는군. 난 내가 사과를 보는 것이라고 말 못하겠어. 하지만 사과가 보이는 경험을 하고 있다고는 말할 수 있겠군.” 이것이 로크의 입장이었습니다. 감각에서 오지 않는 것은 마음에도 없다고 생각했죠.
데카르트가 이성을 근거로 경험되는 것들의 실재를 증명하려 했다면, 로크는 경험이 없다면 이성도 존재할 수 없다고 생각했어요. 그러니 이성을 근거로 존재를 함부로 확신할 수도 없었죠. 레벨업 된 의심 느껴지십니까?
로크는 경험을 인식의 근거로 삼은 뒤 우리의 인지경험을 두 가지로 나눕니다. 체험과 실험을 거쳐 증명이 가능한 객관적인 요소는 '부인할 수 없는' 1차 감각 성질. (이 '1차 성질'에 해당되는 지식들은 믿을만한 지식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사과의 색, 촉감, 모양, 크기 등이 그런 것이죠. 그리고 맛있다, 예쁘다와 같은 주관적 인지경험은 2차 감각 성질이라는 것이죠.
그리고 2차 성질을 근거로 만들어낸 표상을 근거로 만들어낸 지식들, 혹은 1차 성질을 멋대로 갖다 붙여서 머릿속에서 만들어낸 표상을 근거로 만들어낸 지식들(복합 표상)을 가려내려고 합니다. 우리가 가지고 있는 지식들은 대부분 복합적인 성질을 가지고 있는 것이니 정확히 분석해서 뭐가 더 이상 의심할 수 없는 1차 성질인지 가려내야 믿을만한 지식과 실재가 가려진다는 겁니다.
천국에 황금으로 된 문이 있는지 어떻게 알아? 황금 표상과 문 표상을 합쳐 멋대로 상상한 거잖아. 완벽한 신이라는 건 여러 가지 능력을 조합해서 만들어낸 표상이잖아. 그렇게 대강대강 생각할 거야? 하고 매의 눈으로 당시 지식사회에 획기적인 비판들을 쏟아내죠. 이러한 주장은 당시 지식계, 특히 과학계에 큰 영향을 미칩니다. 아니, 어쩌면 이미 로크가 거꾸로 과학계에서 영향을 받았던 것인지도 모르겠어요.
로크가 활동하던 시기는 청교도 혁명 이후 확산된 과학적 방법론의 영향으로 영국에 왕립학회가 설립된 시기이기도 하거든요. (왕정 복고 후 다시 왕 위에 오른 찰스 2세가 1세처럼 되지 않기 위해서라도 실증적인 지식 연구를 존중하는 태도를 보이려 설립을 지지했죠.) 잘 보시면 로크가 분류한 1차 성질의 지식이 우리가 요즘 말하는 과학적 지식이란 개념과 거의 일치한다는 걸 알 수 있어요.
로크는 이밖에도 사유재산, 자연법과 저항권 등 이루 말할 수 없는 현대적 유산을 많이 남겼지만...그건 계몽주의 때 다시 짚어보기로 해용;;
2. 존재는 지각되는 것이다_조지 버클리
그런데 로크보다 한술 더 뜬 사람이 있었어요. 아일랜드에서 주교로 일하던 버클리라는 사람인데요, 이 사람은 1차 성질까지 의심했어요. 뭐야 그게. 삼라만상을 물질적 현상으로만 설명하려드는 걸 믿으라는 거야? 신은 어쩌고? 주교였던 그는 당시 과학과 기술의 발전으로 점차 세상을 신의 의지보다는 과학적 설명으로 이해하려는 사람들을 그냥 두고 볼 수 없었습니다.
앞서 얘기한 정치적, 사회문화적 배경 덕에 대륙과 달리 신학과 여타 학문의 분리가 빠르게 진행되고 있던 영국에서 기독교는 (현재 우리나라의 유교적 의식이 점차 그런 대접을 받는 것처럼) 자꾸 과거의 전통으로 밀려나는 것 같았을 테니까요. 그는 하루가 멀다 하고 새로운 지식이 탄생하는 과학 혁명의 한복판에서도 신학이 건재할 수 있음을 증명하고자 했습니다. 그래서 점차 '상식'이 되고 있던 1차 성질에 근거한 지식들(말하자면 실험으로 증명가능한 지식들)에 당당하게 도전합니다.
신을 증명할 확실한 경험이 없다? 그렇다면 1차 성질들은 명징한가?
의심의 또 다른 업그레이드가 시작되는 겁니다. 버클리는 표상 너머, 표상과 분리된 물질(표상의 대상)이 존재한다는 것 자체를 의심했습니다. 우리는 어차피 표상화를 통해 지식을 만들어냅니다. 그 표상을 토대로 실재의 물질세계를 추론할 수 있다고들 하지만(그걸 과학적 증명이라고들 하지만), 그 추론이 참이라는 건 어떻게 증명할 것이냐. 1차 성질이고, 2차 성질이고 어차피 추론을 통해 알아낸 것이고, 그 추론은 우리의 관념에 불과한 것이지 우리를 둘러싼 물질세계가 확실히 존재한다는 것을 증명할 수 있는 것은 아니지 않느냐.
버클리는 그렇게 물질세계의 존재 자체를 알 수 없는 것으로 규정해버립니다. 우리가 지각하는 것은 관념일 뿐이고, 혹 관념이 아니라 하더라도 적어도 물질은 아닐 것이라는 것이죠. 그래서 버클리는 자신의 이론을 스스로는 비물질론이라 칭했다 하네요.
그렇다면 버클리는 세계의 존재를 부정하는 불가지론자였느냐 하면 또 그것은 아니었어요. 버클리는 세계의 존재는 긍정했습니다. 단 물질이 아닌 우리의 관념으로서 존재한다고 생각했죠. 적어도 지각되는 관념 자체를 부정할 수는 없으니까, 우리는 그 관념에 기대어 살아간다. 데카르트의 “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라는 말 만큼이나 유명하다는 “존재하는 것은 지각되는 것이다.”란 명언은 그렇게 탄생합니다. 세상은 지각되는 한도 내에서 존재한다는 것입니다.
버클리의 인식론은 그 지점에서 새로운 국면으로 접어듭니다. 존재는 지각될 뿐이라면 세상은 내가 지각할 때만 존재한다. 거울 속의 나는 내가 볼 때만 존재할 뿐, 내가 고개를 돌렸을 때 얘가 내 뒤통수를 비출지 그냥 나를 응시하며 씨익 웃고 있을지 우찌 아냐는 것이죠. 아까 얘기한 사과도 내가 지각할 때만 존재한다. 내가 지각하지 못한다면 적어도 나는 사과가 존재한다고 말 할 수 없다. 이런 입장입니다. 좀 이상하죠? 너는 지각 못해도 나는 여기 사과가 존재하는 걸 지각하고 있잖아. 근데 어떻게 네가 지각 못한다는 이유로 사과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거야. 니 지각이랑 존재가 뭔 상관이야. 이런 반론이 가능할 겁니다.
왜냐하면 세상은 생각보다 보편적인 질서로 가득 차 있으니까요. 개인적인 지각을 이유로 사과가 있다 없다 할 수는 없을 겁니다. 하지만 버클리는 이때다 하고 바로 그 지점을 파고듭니다. 니들이 뭐라 건 나는 지각되는 것만이 존재한다고 말할 수 있어. 단 내가 지각을 거두더라도 혹은 니들이 지각을 거두더라도 사과가 존재하는 것은 신이 그것을 지각하고 있기 때문이지. 이 세상의 존재 또한 신이 모든 것을 언제나 지각하고 있기 때문에 유지되는 거야. 버클리는 그렇게 보편적 질서의 자리를 신으로 채워 넣는 데 성공합니다.
물질세계의 원리를 바탕으로만 세상을 이해하는 태도(유물론)로 신을 경시하는 사람들과 어차피 우리가 알 수 있는 것은 아무 것도 없다(불가지론)며 신에서 멀어지는 사람들이 위태로워 보였던 한 신학자의 몽니 같으신가요? 하지만 요즘 한창 뜨고 있는 양자컴퓨터에 관심이 있는 분이라면 그렇게 생각하지 않으실 겁니다. 입자 상태는 관측 전까지는 확정되지 않는다는 '관측자 효과'(아인슈타인도 이걸 납득하지 못했다 하죠.), 즉 관측되어야 상태가 결정된다는 양자역학의 핵심 이론이 지각되어야 존재한다는 버클리의 관념론과 너무도 유사하기 때문이죠. 근대 과학에 지기 싫었던 그의 신앙이, 그를 근대 과학을 넘어선 통찰에 수백 년이나 앞서 도달하게 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3. 그렇다면 아무 것도 알 수 없다._데이비드 흄
그래도 해결되지 않는 것이 있었어요. 진짜 지각과 가짜 지각을 어떻게 구분하냐는 것이죠. 지난주에 추천해드린 매트릭스와 토탈리콜 혹시 다들 보셨나요? 그 영화들을 보면 정말 뭐가 꿈이고 현실이고 심어진 기억인지 대체 알 수가 없잖아요. 특히 토탈리콜의 설정이 정말 대단한데, 저는 아직도 영화가 끝난 후 멍해진 여운이 기억나네요. 안 물어보신 거 압니다. 안 보신 분들도 지금부터 이야기하는 내용을 읽다 보면 보고 싶어지실 지 몰라요.
버클리는 진짜 지각과 가짜 지각을 경험의 통일성으로 구분할 수 있다고 얘기했어요. 무슨 말이냐면, 진짜 관념은 우리의 취향이나 의지로 좌지우지되거나 하지 않고 다른 관념과 연계되어 맞아 떨어진다는 것이죠. 사과에서 단 냄새를 맡았다면 맛도 달아야 한다. 하지만 꿈이라면 냄새는 단데 맛은 쓸 수가 있다. 그러므로 꿈이 만들어 내는 건 가짜 관념. 자, 근데 이 설명 속에 허점이 있어요. 경험의 통일성이라니. 냄새를 맡은 내가 맛을 보는 나와 동일한 나라는 걸 어떻게 증명할 수 있지?
그렇게 의심의 끝판왕 데이비드 흄이 등장합니다. 오늘의 내가 어제의 나로부터 연속되는 것이라는 것을 어떻게 증명하지? 스피노자가 데카르트의 영향을 받았다고 하더라도 데카르트의 존재와 스피노자의 존재 자체가 불확실한데(왜냐하면 둘 다 우리가 여러 표상을 종합해 만들어낸 것들일 뿐이잖아.) 정말 그 영향관계가 있다는 걸 어떻게 증명하지? 시간적으로 앞서 일어난 일이 뒤에 일어난 일의 원인으로 작용한다는 것은 어떻게 참이라고 증명하지? 역사를 통해 교훈을 얻을 수 있다니, 실험을 통해 과학적 증명을 할 수 있다니, 어떻게 그런 증명되지 않는 의심스러운 사고방식을 그냥 순진하게 받아들여 살고들 있는 거지?
그렇게 흄은 우리를 둘러싼 세계의 존재는 물론이고, 신의 존재, 자아, 인과에 대한 지식을 다 부인해버립니다. 버클리가 붙잡고 있던 신을 놓아버리면서 결국 데카르트부터 버클리에 이르기까지 17세기 철학자들이 어떻게든 극복해보려 했던 회의론을 받아들이는 셈이 된 것이죠. (『소피의 세계』에서도 그를 불가지론자不可知論者라고 정의합니다.) 경험을 통해서만이 우리가 지각하고 인식할 수 있다면 결국 어떤 것도 확실히 존재한다고 증명할 수 없음을 인정한 것이죠.
우리는 무엇이 진짜이고 진리인지 아무 것도 알 수 없다. 존재의 본질에 대한 지식 따위 개나 줘버려. 그게 흄의 결론이에요. 뭐야 이게 싶으시죠. 지식 따위 배울 필요가 없다는 거냐? 하는 생각도 드실 수 있고요. 하지만 물론 그게 아닙니다. 흄은 지식의 성격을 재정의한 것뿐이에요. 과학 혁명과 더불어 사람들은 드디어 명징한 진리에, 모든 자연 법칙의 본질에 도달하기 시작했다고 생각했고, 마침내는 도달할 거라 생각했어요. 흄은 그런 생각을 꼬집은 겁니다.
흄은 우리가 인과율을 바탕으로 관찰과 실험을 통해 발견하고 귀납적으로 일반화한 개념들은, 즉 모든 과학적 개념이나 물리적 대상은 실제로는 관찰 가능한 현상들의 규칙성에 대한 지식일 뿐 그 너머의 본질에 대해서까지 알려주는 것은 아니라고 주장했어요. 무슨 무슨 법칙을 발견했다 하더라도 그건 어디까지나 우리가 관찰한 영역 안에서만 성립하는 법칙이라는 것이죠.
이것은 당시 새롭게 떠오르고 있던 귀납법에 대한 성찰을 요구하는 주장이었어요. 관찰을 통해 까마귀는 까맣다는 걸 알아냈니? 그런데 어느 날 하얀 까마귀가 나타나면 어떡할 거니? 우리가 면밀한 관찰과 실험을 통해 획득한 지식이란 건 다 그런 거야. 우리가 알아낸 걸 본질에 대한 지식으로 착각하면 안 돼. 그런 식의 지식은 우리가 관찰할 수 있는 현상의 범주를 넘어설 수 없다는 걸 잊지 마.
흄의 철학을 바탕으로 칸트나 존 스튜어트 밀 같은 현상론자들이 등장할 수 있었어요. “물리적 대상이나 과학적 대상에 대한 지식은 현상에 대한 지식으로부터 정의된다.”를 요지로 하는 생각이 이후 철학은 물론이고 정치, 경제에 어떤 영향을 끼쳤는지, 그리고 그것이 현재 우리의 정치 경제와는 어떻게 연결되는지는 다음 시간부터 조금씩 이야기하도록 하겠습니다.
4. 다음 주 진도 및 subtext소개
지난 주부터 이번 주를 거쳐 다음 주까지 함께 읽는 내용은 모두 인식론이라 분류되는 내용들이에요.(사실 존재론도 좀 짬뽕되어 있긴 하지만 인식론 중심.) 플라톤 때부터 시작된 철학의 근본적인 질문 중의 하나이죠. 나의 앎은 어디서부터 오는가? 내 앎이 진짜 앎이라는 것을 어떻게 증명할 수 있는가? 와 같은 고민이 인식론의 주된 내용이라고 합니다.
"대체 나는 무엇을 아는가? 나는 나의 앎을 증명할 수 있는가?"와 같은 질문은 사실 타인과의 소통과 그것을 근거로 한 공존을 위해서라도 아주 기본적으로 요구되는 성찰입니다. 왜냐하면 내 앎에 대한 성찰을 거친 후에라야 우리는 "나는 이렇게 생각해. 너는 어때?"라고 물을 수 있을 테니까요. 서로에게 건네는 그 물음을 곰곰이 되씹으며 우리는 지금의 체제와 제도, 관습들을 만들어 왔을 겁니다.
그리고 앞으로도 우리는 계속해서 그러한 성찰을 통해 우리의 상식을 되돌아봐야 하겠죠. 그 과정에서 우리가 미처 발견하지 못한 우리 안의 부당함 혹은 미진함들을 계속 발견해야 할 테니까요. 생몰의 순환은 끝이 없고 그렇기에 상황은 계속 변하며, 우리는 끝없이 그 변화에 대응해야 합니다. 그 불편함을 끝끝내 소화해내는 것이 어쩌면 우리의 인식이 감당해야 할 과제이겠죠.
이제 18세기로 넘어갈 시간입니다. (사실 흄 얘기를 할 때부터 이미 18세기였답니다.) 현재에 이르기까지 이제 한 250여년밖에 안 남았네요. 지금까지 거쳐 온 시간에 비하면 짧은 시간이지만 점점 밀도가 높아져 가니 남은 5회 차 안에 준비한 이야기를 다 할 수 있을지 걱정입니다. 부디, 제가 너무 중언부언하지만 않기를 바랄 뿐입니다.
다음주까지는 비예켈리, 계몽주의와 칸트 단락까지 함께 읽기로 해요. 아, 그리고 이번 주 subtext!
애덤 스미스의 『도덕감정론』입니다.『국부론』과 같은 저서와 함께 경제학의 창시자로서 그를 기억하는 사람이 많겠지만, 사실 그는 스스로를 윤리철학자로 생각했고 그런 만큼『도덕감정론』을 자신의 대표작으로 여겼어요.『국부론』 또한 『도덕감정론』으로 정립한 인간에 대한 이해를 사회적으로 올바르게 적용하는 예시로서, 말하자면 『도덕감정론』의 응용편 정도로 집필했다고 보는 설이 많아요.
그래서 그런지『국부론』에서 설명하는 경제 원리에서도 언제나 인간의 도덕성이 전제됩니다. 안타깝게도 탐욕스러운 자본가나 정치세력, 혹은 그들과 결탁한 지식인들에 의해 그 부분은 생략된 채 시장의 자율성을 옹호하는 도구로서만 너무 오래 회자됐지만요. 애덤 스미스가 죽기 전 『국부론』을 폐기해 달라고 했을 거라는 오해는 아마 그러한 오용에 대한 비판 의식에서 비롯됐을 겁니다.
아, 그런데 뜬금없이 왜 애덤 스미스냐 하면, 그가 바로 흄의 유명한 절친이었거든요. 두 사람은 살아 있는 내내 서로 존중하며 끈끈한 교류를 이어갔대요. 흄의 철학을 많이 존경했던 애덤 스미스가 흄이 사후 그를 추모하는 책을 썼을 정도라니, 그가 흄에게서 받은 영향의 크기를 짐작할 만 합니다. 애덤 스미스 사상의 정수가 담겨 있다는 『도덕감정론』을 소개하는 이유 또한 그런 연관성 때문이에요.
흄의 철학을 이어 받아 경제학의 토대를 마련한 책이니 이 책은 18세기 계몽주의의 인식론과 19세기 자본주의 경제의 교량 역할을 하는 윤리론을 담고 있는 셈이에요. 우리의 지금 진도와 함께 읽기에 매우 적절한 책일 뿐만 아니라, 자본주의에 대한 우리의 상식이 놓치고 있는 것들을 제시해 줄 수 있는 책이라고도 할 수 있죠. (400페이지나 되는 이미지의 책이 부담된다면 좀더 짧게 편집하거나 재미있게 기획한 책들을 찾아 보는 것도 좋은 방법이 될 것 같습니다. 세계사에서 나온 『내 안에서 나를 만드는 것들』도 그런 책이라고 합니다. )
언제 다 읽나 했던 책도 이제 절반을 넘어섰네요. 함께 읽어주셔서 늘 감사 드립니다.
다음 주에도 또 숙제 검사 하러 만나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