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피의 세계』_ 08. '비예켈리', '계몽주의', '칸트'
0. 비예켈리_『소피의 세계』의 플롯이 말하는 것
“그러니까 문제는 ‘존재하느냐 않느냐’가 아니라 ‘우리가 무엇이냐’는 것이다. 살과 피로 된 육체가 인간의 실체냐? 우리 세계는 실제의 사물로 이루어져 있을까? 아니면 우리는 단지 의식에 둘러싸여 있을 뿐일까?”
_『소피의 세계』2권, 206쪽에서
소령의 오두막에서 소피가 발견했던 그림인 비예켈리(Bjerkely)는 자작나무 숲이 둘러싼 힐데의 집앞 뜰의 이름이었습니다. AI에게 물어보니 실제 있는 지명은 아니고 노르웨이어 자작나무(Bjerk)와 마을(Ly)을 합성해 만든 단어인 것 같다고 하네요.
여기서 'j' 하나만 빼면 공교롭게도 지난 주 만나봤던 버클리(Berkely)가 돼요. 오늘까지 읽으신 분들은 아마 소피와 소령 그리고 힐데 사이의 수수께끼를 눈치 채셨을 텐데, 이런 중요한 반전을 클라이막스 직전이 아니라 중후반쯤인 지금 제시하는 것도 아마 그 수수께끼가 버클리의 철학과 무관하지 않기 때문이겠죠?
「소령의 오두막」과 「비예켈리」는 여러 모로 연결되는 부분이 많은 단락이기도 하고, 『소피의 세계』의 전체적인 플롯이 지닌 비밀을 담고 있는 단락이기도 합니다. 소피가 소령의 오두막에서 거울을 보며 인지한 문장이 이 단락에서 그대로 반복되는 장면도 나오는데, 오랜만에 보니 저는 이 장면에서 영화 "인터스텔라"가 떠오르기도 하더군요. 새삼 이 책과 철학의 잠재력을 실감했습니다.
이쯤 되면 소설의 플롯에 대해 뭔가 더 늘어놓을 줄 아셨겠지만, 함께 읽는 모두의 재미를 뺏지 않기 위해 그러지 않으려고요. 다만 시간과 공간, 나아가 차원을 뛰어넘는 존재와 인식에 대한 고찰은 이 소설(이 책이 소설이라는 거 잊지 않으셨죠?)이 던지는 가장 핵심적인 화두라는 것, 이 소설은 그 화두를 무려 플롯으로 구조화 했다는 정도만 언급하겠습니다. 존재와 인식에 대한 고찰, 즉 존재론과 인식론은 철학의 가장 근본적이고도 오래된 질문이기도 하죠. 인용한 구절이 힌트가 되었으면 좋겠네요.
그럼 흄을 잇는 계몽주의자들의 이야기를 이어서 살펴 볼까요?
1. "진보"라는 새로운 신화의 탄생
고작 책 한 권을 12주에 걸쳐 쪼개어 읽는 계획을 세웠을 때 가장 걱정이 됐던 것은,
흐름이 끊기는 것이었어요.
후대의 역사일수록 자료와 기록이 많은 만큼 이야기가 촘촘해질 수밖에 없는데, 신화 시대에서 헬레니즘까지 경쾌하게(?) 이어갔던 것처럼 로마와 중세, 르네상스 이후의 근대, 그리고 20세기에 이르는 여정까지도 유기적으로 잘 이어갈 수 있을까. 노인의 혜안이 유년의 추억에서 출발하는 것처럼, 현재의 너무도 당연한 상식과 사고방식에도 오랫동안 축적된 경험과 사연이 얽혀 있다는 걸, 필연으로서 전달할 수 있을까.
깜냥을 잊고 제 진지함에 취해 내심 그런 주제넘는 고민을 했더랬습니다. 다행히, '그런 걸 내가 할 수 있을 리가 없지-' 하고 정신을 차려 연재를 시작할 수 있었습니다만, 9주차에 이르러 돌아보니 그렇게 정신을 차린 상태도 아니었나보다 하는 생각도 듭니다. 계속해서 주제넘는 욕심을 부리고 있었던 것 같거든요. 마치 필요한 지식이 있다면 원하는 것을 설계하고 실현할 수 있다고 믿었던 계몽주의자들처럼요.
18세기 유럽의 지식인들은 그런 자신감을 가질만한 배경을 지니고 있었어요. 르네상스, 종교 개혁, 과학 혁명을 거치며 얻은 새로운 지식의 힘은 유럽을 점점 고양시키고 있었습니다. 바다 너머 새로운 대륙을 발견하고, 식민지를 정복하고, 약탈해온 물자와 금융 혁신으로 경제가 발달했죠. 거대한 자연 속의 숨은 법칙도 조금씩 정복되고 있었고요. 세상은 끝없이 발전할 수 있을 것 같았어요.
더 나은 미래에 대한 끝없는 낙관. 진보라는 신앙은 그렇게 등장합니다. 사람들은 여전히 교회를 다니고 기도를 했지만, 점차 경건한 의식과 세속적 현실은 마땅히 다른 것이라 생각하기 시작했어요. 직접 경험하고 이성적으로 생각할 줄 아는 것이야말로 곧 '현실 감각'이 되었죠. 매일이 다른 현실의 변화는 신에게 무릎 꿇은 대가가 아니라 이성(Reason)과 경험(empiricism)을 통한 탐구의 성취였으니까요.
덕분에 교회도 합리화의 압력을 받게 됩니다. 예수의 소박한 가르침(이웃을 사랑하라 등)만 남기고 '교의'와 '신조'의 억압에서 해방되자는 인본주의적 기독교 운동과, 신은 자연법칙 속에서만 자신을 드러낸다는 이신론理神論Deism)등의 자연종교(Deistic religion)가 그렇게 등장해요. 전자가 기독교의 내부적 변화라면 후자는 새롭게 등장한 종교적 태도라 볼 수 있죠.
『소피의 세계』에서는 마치 자연종교와 이신론이 인본주의적 기독교 운동에 포함되는 것처럼 그것들을 한 항목 안에서 뒤섞어 설명합니다. 둘 다 초월적 권위보다 인간의 경험과 이성을 중시한다는 점에서 기존 기독교와 구분되는 점이 있어 그렇게 한 것 같아요. 신 중심에서 인간 중심으로 사고의 초점을 옮긴 사상 전반을 '인본주의'라 하니 사실 인본주의라는 용어 자체의 함의가 넓기도 합니다. (그래도 좀, 아쉬워요.)
인상적인 것은 기독교의 유연함입니다. 과학과 대비되는 과거의 미신으로 전락할 위기에 처한 교회가 끝끝내 사람들의 일상을 지키는 문화로 남을 수 있었던 건 시대의 흐름에 발맞춰 신앙의 초점과 방법을 기꺼이 바꿔나간 그 유연함이었으니까요. 그리고 그렇게 유연하게 살아남은 덕에 기독교는 그 후로도 오랫동안 서양의 공동체 의식에 기여할 수 있었습니다.
기초 질서와 전통을 생산하고 전승하여 공동체의 결속을 안정시켜 주는 종교의 기능을 생각할 때 이점은 꽤 부러운 지점입니다. 비슷한 시기에 시대 변화에 걸맞는 개혁을 주장했던 조선의 실학 운동은 사실상 주류가 되지 못했고 끝내 기득권의 패악을 수호하는 질서로 전락한 유교적 관습은 결국 그 힘을 동경하던 이들에게 가장 천박한 방식으로 왜곡되어 지금은 시대의 걸림돌 취급이나 받는 지경에까지 이르렀으니까요.
이상적 농업 사회 건설을 위해 기획된 종교(유교)의 풍속을 4차 산업혁명이 시작된 현대 사회에서도 똑같이 이어가지 못해 아쉽다는 얘기는 아닙니다. 다만 절기마다 챙기고 나누던 가르침이 애초에 공동체의 결속을 유지하고 친목을 도모하기 위한 소망이었음을 생각하면, 그 소망을 현재에 어울리는 합의로 전승하지 못한 채 각 세대의 고집과 대립으로 소모하는 현실이 안타깝게 느껴지는 것이죠.
(그래서, 요 책이 끝난 다음엔 그 전승이 강제로 왜곡되던 시절을 돌아보는 독서를 해보려 계획 중이에요...)
2. 결국 믿음의 문제_임마누엘 칸트
이성의 힘으로 세계를 끝없이 개선해 나갈 수 있을 것이란 믿음의 실천은 『백과전서』(알베르토처럼 그냥 백과사전이라고도 합니다.)의 출간으로 이어집니다. 인류가 누적해 온 지식을 총체적으로 정리해서 세계를 더 합리적으로 개선하는데 기여하겠다는 것이었으니, 디드로(Denis Diderot) 등의 여러 필자는 일종의 사회 개혁 도구로서 그 책을 만든 셈이었죠. 그것도 20여년에 걸쳐 28권이나요.
가엾게도 그 노력에 비해 상업적 성공은 거두지 못했지만(사전예약제로만 판매된, 단가가 매우 비싼 책이기도 했고 교회나 왕실이 무신론적이라고 출판을 금지 시키거나 아예 필자들을 투옥시키기도 했대요.) 이 전집이 유럽에 일으킨 반향은 대단했습니다. 원본은 4300질밖에 출간되지 않았지만 유럽 곳곳(주로 왕이나 종교의 권위가 약했던 곳)에서 약 40,000질의 불법 복제(!)판이 출간된 이 전집은 계몽지식인들의 필독서가 됩니다.
프로이센(독일)의 변두리에서 평생을 살았던 칸트(Immanuel Kant 1724~1804)도 직접은 못 구해봤더라도 간접적으로나마 이 책의 내용을 접하고 있었을 거예요. 칸트가 한창 젊고 명민하던 시기에 『백과전서』는 이미 유럽 지성의 상징이었으니까요. 계몽주의를 견인한 로크, 몽테스키외, 루소의 사상도 모두 이 전집 안에 체계적으로 정리되고 있었죠. 칸트에서 이루어지는 근대 인식론의 종합도 그러한 토양 위에서 가능했을 겁니다.
지난 시간까지 앎을 탐구하던 의심쟁이들 얘기 했었죠. 이성을 지식의 근원으로 보는 사람들과 경험을 지식의 근원으로 보는 사람들의 팽팽한 이야기였잖아요. 그런데 그러한 분류는 사실 후대에 된 것입니다. 데카르트는 스스로를 합리주의자라 한 적이 없어요. 흄은 자신이 로크와 같은 부류로 묶인다고 생각하지도 않았죠. 그들이 살던 당시엔 합리론이니 경험론이니 하는 개념 자체가 없었거든요.
그럼 누가 그런 짓(?)을 했느냐. 바로 칸트입니다. 그의 직업이 철학을 연구하는 교수였거든요. 그것도 최초의 철학 교수였습니다. 칸트 이전엔 '철학'이라는 분과 자체가 없었습니다. 그렇다보니 "직업이 뭐예요?"하고 물으면 "철학입니다."하고 답할 수 있었던 최초의 사람은 칸트였던 셈이죠. 철학을 마침내 학문으로 정립한 최초의 직업적 철학자. 어쩌면 계몽주의 시대에 태어났기에 얻을 수 있었던 칸트의 위상입니다.
(사실 계몽주의 시대에 이르러서야 지금의 우리에게 익숙한 시스템의 학교가 마련돼요. 『소피의 세계』에도 나와 있듯 교육학이라는 것 자체가 이 계몽주의의 산물이죠. 수도원과 분리된, 말하자면 새로운 학문들을 신학의 테두리 밖에서 가르치는 교육이 시작된 것입니다. 모든 학생이 일제히 강단에 선 스승을 바라보며 지식을 주입 받는 '계몽의 구도'가 만들어진 것도 다 이때부터의 일이고요. )
기존의 인식론을 경험론과 합리론으로 분류하고 정리한 칸트는 그 둘을 종합합니다. 그는 모든 지식이 감각 경험 덕분인 건 맞지만, 우리가 외부 세계를 어떻게 인식하는지 결정하는 중요한 전제 조건들은 우리의 이성에 내재(대표적인 것이 시간과 공간에 근거한 인과율)한다고 보았어요. 감각 경험으로 만들어진 인상들은 이성에 내재되어 있는 의식의 필터를 거쳐 마침내 인식으로 완성된다는 것이죠.
그렇다면 우리의 앎과 지식은 진실로 인식된 것일 뿐, 진실 그 자체라고 볼 수는 없는 것이었어요. 진리와 진실에 대한 우리의 모든 논의는 이성 안에 내재된 우리의 인식 법칙들에서 자유로울 수 없었으니까요.(알베르토는 이를 색안경을 통해 설명했죠.) 우리는 '사물 자체' 가 어떻게 '보이는지'에 대해서만 알 수 있다는 게 칸트의 결론이었습니다. 안경 너머 세상을 볼 수 없는 것이 인간의 조건이라는 것이죠.
그래서 칸트는 경험으로부터 탐구하되 경험으로부터 가장 멀리 떨어져 있다고 할 수 있는 의식과 이성을 탐구하는 것을 자신의 철학적 목표로 삼습니다. 인간의 앎은 결국 경험으로 시작해 이성의 최종적 판단을 통해 완성되는데 그 둘 사이에서 이성으로 증명할 수도 없고 경험할 수도 없는 무언가가 모든 감각 경험에 관여하고 있다면, 결국 파고들어야 하는 것은 그것이라고 본 것이죠.
그런데 그러한 이성 비판이 필연적으로 닿을 수밖에 없는 의문이 있었습니다. 바로 그 당시 계몽주의 신지식이 몰아붙이고 있던 신학적 진실들이었죠. "우리의 모든 지식은 감각을 통해 얻은 인상을 이성에 내재된 의식의 속성에 따라 인식함으로써 만들어진다. 그렇다면 감각 인상을 얻을 수 없는 신을, 혹은 영혼의 존재와 우리의 의지를, 대관절 우리는 어떻게 안다고 말 할 수 있을 것인가?"
그렇게 칸트는 온갖 형이상학적 명제들(불멸의 영혼, 신, 자유의지, 도덕 등) 앞에서 늘 실패할 수밖에 없는 이성을 발견합니다. 그러나 그 실패의 숙명 속에서도 형이상학적 진리를 갈구하는 인간 이성의 또다른 속성을 발견하죠. 이성의 역설 속에서 칸트는 생각합니다. 우리에게 남은 것은 결국 믿음(faith)뿐이다. 우리가 감각할 수 없는 무언가를 알고자 한다면, 그것은 믿음을 통해서만 가능하다는 게 그의 결론이었어요.
아니 굳이 그렇게 해서까지 (거의 우격다짐으로) 그것들을 믿어야 돼? 하는 비아냥이 절로 올라오지만 칸트에게 있어 형이상학적 진리에 대한 믿음은 앎의 절대적 기준인 이성을 비로소 완성하는 실천이었어요. 선천적으로 주어진 인간의 이성이 명백한 실패의 조건 속에서도 끝없이 형이상학적 진실에 파고든다는 것은 어쩌면 그 형이상학적 진실이야말로 인간의 이성에 내재된 본원적(자연적) 희망이라는 증거일 테니까요.
그렇다면 그 본원적이고도 자연적인 희망을 추구하는 믿음은 이성에 내재된 보편적 의식을 실천하는 것이 됩니다. 칸트가 말하는 믿음은 단순한 종교적 신념이 아니라 그러한 실천을 위한 이성적 믿음이었던 것이죠. 그리고 바로 이 지점이 흄과 칸트의 차이를 만듭니다. 칸트는 흄을 읽고 미망에서 깨어났다고 고백할 만큼 흄의 영향을 강하게 받았지만(이성과 인과율 등의 의식을 구분한 것에서도 그 영향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흄처럼 "감정이 옳고 그름을 결정할 뿐이므로 도덕은 무용하다"라고 생각하고 싶지 않았어요.
칸트는 형이상학적 믿음에 근거한 선과 악, 그리고 그것에 근거한 도덕과 윤리 의식은 천부적으로 주어진 이성이 추구하는 희망이므로, 그것을 믿음으로 긍정하고 그 믿음에 따라 사는 것, 즉 양심에 따라 사는 것은 우리의 삶을 이치에 부합하는 삶으로 만들어 준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므로 그러한 의식, 즉 도덕 법칙이 우리 삶의 기초가 되어야 한다고도 주장했죠. 도덕 법칙은 수학적 지식만큼이나 이성적인 것이니 도덕적이고 윤리적 삶을 위해 우리는 이 의식과 모순되지 않는 행위와 실천을 꾸준히 모색해야 한다고요.
"도덕적 행위" 또한 그렇게 우리의 선천적 의식에 내재되어 있는 도덕 법칙(정언적 명령)과 일치되는 행위를 하는 것이라 정의합니다. 도덕적 행위라고 하는 것은 이익에 대한 기대가 없어도, 이성에 내재한 도덕 법칙을 따르기 위한 자기 극복의 결과여야 한다는 것이죠. 말하자면 기업의 이미지 재고를 위한 봉사 활동 같은 건 도덕적 행위라고 할 수는 없다는 것입니다. 그들은 이득을 위해 도덕적 행위처럼 보이는 행위를 한 것이지 도덕 법칙과 양심의 발현으로서 도덕적 행위를 한 것은 아니니까요.
중요한 것은 그 극복의 순간이 우리의 자유의지가 발휘되는 순간이자 우리가 진정으로 자유로워지는 순간이란 것입니다. 우리를 지배하는 감관의 질서에 저항하여 선천적으로 주어진 이성(에 내재한 의식)의 의지를 실현시키는 것이니까요. (중독되는 것이 자유로운가, 중독을 극복하는 것이 자유로운가.) 칸트는 그 자유가 비로소 인간을 인간답게 한다고 우리에게 얘기합니다.
3. 인류 보편의 윤리와 도덕적 책임
아직까지도 우리의 윤리관은 칸트의 생각을 기초로 한 부분이 많습니다. 법적 책임의 근거를 '자유로운 의사결정' 즉 책임능력 여부에 두고 있는 형법의 '책임주의 원칙'같은 경우를 대표로 들수 있겠네요. 책임능력이 제한적인 심신미약은 처벌 감경, 책임능력이 없는 심신상실은 처벌 면제, 판단력이 미숙하다 하여 형사처벌이 아예 불가한 혹은 14세 미만의 촉법 소년도 모두 같은 원칙이 적용되는 예입니다.
문제는 계몽주의 시대부터 어렵게 닦아온 우리의 기본권을 보호하기 위해 만든 이 원칙이 약삭 빠른 이들에게 악용되는 경우가 갈수록 너무 많다는 것이에요. 칸트 책임져. 관련 뉴스를 볼 때면 정말 정언적 명령에 근거한 분노를 금할 수가 없습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 원칙을 간단히 무시하자는 주장, 이를테면 '이제 애들이라고 봐주지 말자'와 같은 주장을 해도 되는 것일까요? 저는 그다지 바람직한 주장 같지는 않습니다.
그것은 도덕의 '사적私的' 실천에 머물지 않았던 칸트의 구상을 생각할 때 더욱 그렇습니다. 칸트는 그 시절에 이미 ‘이성의 공적사용’을 주장하며 국제연맹과 세계시민을 구상했어요. 두 구상 모두 '우리 모두는 특정 집단의 논리에 한정되는 사람들이 아니라 보편적 인류 공동체의 일원'이라는 인식을 바탕으로 한 것이었죠. 우리는 그 인식을 바탕으로 할 때에야 '책임주의 원칙'에 근거한 처벌 제한이 무엇을 위한 것이었는지 비로소 뚜렷이 알 수 있습니다.
그것은 단순히 심신미약자나 심신상실자 혹은 촉법 소년의 사적 책임 면제를 의미하는 것이 아닌 것입니다. 혼자서는 온전히 자유의지를 실현할 수 없었던 그들의 잘못은 같은 공동체의 일원으로서 그들을 돌볼 의무가 있는 우리 모두의 문제라는 의미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책임능력 따위 따지지 말고 잘못을 했으면 잘못을 한 사람이 직접 책임을 지게 해달라는 요청은, 오히려 책임을 외면하는 행위라고도 볼 수 있는 것이죠. 그들과 함께 사는 공동체의 일원으로서 나눠 갖는 연대의 책임을요.
그렇다면 그들의 천인공노할 죄를 다 용서해고 그들의 벌을 우리가 1/n으로 대신 받자는 뜻이냐 하면 당연히 아닙니다. (우리가 예수는 아니잖아요. 예수는 그나마 몰빵이었음.) 우리가 진짜 문제 삼아야 할 것은 보편적 윤리에 근거한 연대와 돌봄이 나날이 희박해지는 현실이라는 것입니다. 책임능력이 미흡한 이들의 처벌을 제한하는 것은 애초에 그들이 공동체의 돌봄이나 관심 속에 있었어야 한다는 전제 때문이니까요.
촉법소년의 망가진 도덕 관념을 목도하는 일은 괴롭고도 화 나는 일입니다. 하지만 그보다 더 화가 나는 일은 돌봄에서 벗어나는 아이들이 나날이 늘어나는 현실을 막아 볼 엄두조차 낼 수 없는 우리의 각박한 삶입니다. 제도로나마 남아 있는 연대의 희망을 자신의 면피 수단으로 이용하면서도, 틈만 나면 우리의 책임을 가능한 각자의 것으로 갈라 놓는 기획을 기회처럼 포장하는 권력자들의 협잡도 참기 힘든 우리의 일상이죠.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손 쉬운 분노로 정말 분노해야 하는 것들을 눙치지 않는 것. 그리고 오랜 세월 제도로 다듬어 이루려 했던 보편적 도덕 관념의 이상을 완전히 도둑 맞기 전에, 각박한 일상에 눌려 방치해 왔던 우리의 소박한 희망들을 기억해 내는 것. 고작 그 정도일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그 사소한 실천이 큰 목소리로 흉악함을 비난하는 것보다 훨씬 효과적일 것이라고 저는 생각해요. 그 사소함이 인류 보편의 원리에서 비롯된 것이라면 분명 그 실천은 혼자 하는 일이 아닐 테니까요.
책속에서 힐데의 아빠가 냉전이 끝나가던 90년대 초 특유의 낙관을 담아 UN에 대한 기대를 자주 드러내는 것도 책이 전하는 철학적 여정을 통해 독자들이 보편적 정의, 평화, 인권의 의미를 좀더 깊이 새겨보기를 바랬던 작가의 기대가 반영된 것으로 보여요. (결국 강대국에 종속된 작금의 몇몇 국제 기구들을 보면 힐데 아빠의 기대가 좀 슬프게 느껴지긴 하지만요. ㅠㅠ)
4. subtext 소개 및 진도 확인
이번 주 subtext는 파트리크 쥐스킨트의 『향수 : 어느 살인자의 이야기』입니다. 워낙 대중적인 작품이라 이미 읽으신 분들도 많으시죠? 이 소설의 배경이 바로 계몽주의 시대의 유럽입니다.
그렇다고 계몽주의를 담고 있는 소설은 아니예요. 오히려 계몽주의에 대한 아주 색다른 방식의 비판을 담고 있죠. 이성에 대한 신봉이 얼마나 파괴적이고 허망할 수 있는지를 (괴물같은 후각으로 일반인은 감각하지 못하는 모든 아름다움을 경험하면서도 정작 자신은 아무 냄새도 갖지 못했던) 기괴한 남자의 연쇄살인과 향수 제조에 대한 집착을 통해 드러내요.
영화로도 만들어졌습니다. 개봉됐을 당시엔 영화 말미에 집단 섹스 장면이 있다고 해서- 아 좋은 작품을 상업영화로 망쳐놨나보다 해서 안 봤었는데요, 의외로 명작이라는 평을 듣고 최근에 보니 소설에 밀리지 않더라고요. 굉장히 효율적이면서도 충실하게 원작을 반영하면서도 결말의 처리는 개인적으로 원작보다 낫다는 생각마저 들었습니다. (새삼 원작의 결말에서 묘사되는 주인공의 마음이 너무 처참하더군요.)
『은교』를 영화로 봤을 때의 느낌과 비슷했어요. 원작과 구분되는 정체성이 확실히 있는 작품이었죠. 여유 없으신 분들은 영화로 보시는 것도 권해 드립니다.
이제 낭만주의, 헤겔, 키에르케고르를 읽을 차례입니다.
그런데, 그보다, 이번엔 정말 어처구니 없이 약속을 어겨서, 뭐라 드릴 말씀이 없어요.
회초리를 맞을 수도 없고...초반에 흐름 어쩌고 한 것도 너무 민망하네요...

대신 다음 주 화요일이 되기 전에, 벌충의 의미로
계몽주의 시대의 사회 변화에 대한 얘기를 하나 더 올리도록 할게요.
혹여 화요일에 맞춰 찾아주신 분이 있으시다면, 정말정말 죄송합니다. 아무도 없었던 건 아니겠죠.ㅜㅜ
이번 주에 한 번 더, 그리고 또 다음 주 화요일에 다시 찾아 올게요~
그때 또 인사 나눠요~ 안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