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들과 어울릴 때 나는 내가 조금 손해를 봐도 괜찮다는 주의였다. 친구가 요구해 주는 건 웬만해서 다 들어주고, 내가 도움을 줄 수 있다면 최대한 주고 싶었다. 놀 수 있으면 최대한 놀고 같이 뭔갈 할 수 있으면 최대한 하고 그래야 친구들과 친해질 수 있다고 믿었다. 이렇게 생각했던 나는 정말 순수했던 거다.
어렸을 때, 유치원이 끝나고
아파트 놀이터에서 다른 친구
언니들과 놀고 있었다.
나는 그 언니들과 노는 게 너무 재밌었다
술래잡기, 도둑 잡기, 지옥탈출, 무궁화 등등. 정말 재밌게 놀고 있었는데,. 어느 순간부터 그 언니들이 나만 술래를 시켰다 맨날 짠 것처럼 가위바위보에서도 지고, 맨날 내가 걸리고, 가끔은 심부름도 시켰다 "혹시 너희 엄마 돈 좀 있어? 우리 목마르니까 음료수도 먹게. 너도 먹으면 좋잖아~"라는 말에 혹해. 그 길로우리 집에 가서 음료수 사 먹을 돈을 달라고 한 적도 있었다. 처음엔 "엄마! 나 놀이터에
있는 언니들이랑 같이 음료수 먹으러
가려고 하는데 용돈 줄 수 있어?" 라고 말했을 때 순순히 엄마도 "그래 재밌게 놀아~"이러고 줬지만 이게 두 자릿 수가 되고, 처음엔 음료수에서 아이스크림으로 바뀌고 그러면 엄마도 점점 의심을 하게 되는 것이다. 나중엔 엄마가 나를 앉혀두고 "그 언니들이랑 노는 게 좋아?"라고 물어봤다 "응! 좋아! 언니들이랑 놀면 재밌어!" "엄마는 너랑 같이 다니는 그 언니들이라는 사람 맘에 안 들어." "왜..?" "걔네들 너한테 항상 뭐 시키고
엄마(자신)한테 항상 사달라고 하잖아."
맞는 말이었다. 시간이 지나면서
언니들의 요구는 점점 당연시되어 갔다.
장보고 돌아오는 우리 엄마에게 다가가선
"안녕하세요 저 (슈붕)이랑
같이 노는 애들이에요~"
이러면서 인사를 한 뒤,
장본 비닐봉지를 뒤적이며 아이스크림을
뒤적이다가 "없네?"라고 하며 흩어졌다
그 태도에 엄마들은 어이가 없었는지
그 자리에선 아무 말도 안 했지만
집에서 "걔네들 뭐야??"이러면서 황당해했다.
"다음부터 그 애들이랑 놀지 마!"라고 했지만,
내가 놀이터에서 노는 애들은 그 언니들밖엔
없어서 그럴 수도 없는 상황이었다.
"응.."이라고 얘기하면서도 난 어쩔 수 없이
그 언니들과 놀 수밖에 없었다.
한 번은 내가 노는 것을 우연히 목격한
이모할머니께서 잠깐 지켜보다가
그 언니들한테 말을 걸어온 적이 있었다.
나는 잠깐 이모할머니가 자리를 비켜달라고
하시길래 잠시동안 혼자서
놀이기구를 타면서 놀았다.
그러고 나서 그 언니들이 원래의
자리로 돌아간 뒤, 나에게
"재밌게 놀고 와~"라고 하셨다.
나는 그냥 "네!"하고 신나게 답하고
다시 언니들과 놀러 갔다
신나게 집에 돌아온 뒤,
엄마가 "우선 씻고 여기 앉아봐." 하는
말에 알겠다고 한 뒤, 씻고 엄마 앞에 앉았다
엄마랑 이모할머니는 둘이서
나에게 "걔네들이랑 놀지 말어."라고 했다.
엄마는 "항상 네가왜 걔네들
따까리가 돼서 놀고 있냐?
친구가 걔네들밖에 없는
것도 아닌데."라고 했고,
이모할머니는 "걔네들 너만 술래 시키는 거
다 짜고 그러는 거라고 하더라
내가 걔네들한테 '너희 짜는 거 아니냐?'
라고 했더니
'어? 할머니 눈치 좋으시네?'라고 하더라.
요즘 애들 보통이 아니야~"라고 하셨다.
이어서 이모할머니는 한숨을 푹 쉬시며
"이래 순둥 해갖고
이 험한 세상 어떻게 살아가냐.
아이고.."라고 하셨고
엄마는 "(슈붕)아, 이상하다고
느낀 적도 없어?
왜 네가 걔네 신발을 가져다주고.
왜 네가 엄마한테 맨날 사달라고
해야 하는 건지? 한 번쯤은
걔네 엄마가 사줄 수도 있는 거잖아.
왜 맨날 엄마한테만 그런 걸 요구하는지
정말 한 번도 생각해 본 적 없어?"
나는 나름 아는 것들을 얘기했다.
"얘는 ~~ 한 사정이 있고,
언니는.. 잘 모르겠어."
"그 언니라는 사람이 문제구만?
너 그 언니에 대해서 아는 거 있으면
다 말해봐."
"....."
말을 할 수가 없었다.
그 언니는 그런 걸
얘기하지 않기도 했고,
한 번도 그 언니 집에 놀러 간
적도 없었기 때문이다.
"그래도 걔도 문제긴 해,
그 애들이 엄마가 장 본 거 뒤적일 때
얼마나 놀랐는지 알아?
나중에 내가 얘기해야겠네."
"엄마 그러지 마ㅠㅠ"
"물론 너는 이게 난감할 수도 있지만
주변 어른 중에 이런 걸 알려줄 어른이 없다면
그 애의 친구 엄마라도 말해줘야 하는 거야."
엄마의 말이 계속 이어졌다
"그리고 (슈붕)아. 싫으면 싫다고 말해도 돼.
사람들은 네가 기분 나쁘다는 걸 몰라.
그러니 네가 말을 해줘야 해."
"그렇지만 나도 그 언니랑 그 친구랑
같이 노는 게 좋은걸..."
엄마는 속이 터진다는 듯 얘기했다.
"그럼 넌 그렇게 따까리로
있으면서 노는 게 좋다는 거야??"
한 번도 생각하지 못했던 방향이었기에
그땐 엄마가 왜 이렇게 화를 내는지
뭐가 잘못된 건지 몰랐다.
신발이야 그럴 수도 있는 거 아닌가?
음료수는 나도 먹고 싶긴 했는데.
정말 용기를 내서 딱 한 마디를 했던 것 같다.
"엄마. 사실 나도 음료수나
아이스크림 먹고 싶었던 거 맞아."
"그 많던 요구들이 전부 다 네가
먹고 싶어서 그런 거였어?"
"... 응"
긍정의 대답을 해야 할 것 같아서
눈치를 보다가 응이라고 했다.
물론 나도 몇 번 먹고 싶긴 했지만,
언니들이 나에게 요구했던 그만큼은
아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엄마의 눈치는 내 얄팍한
거짓말에 넘어가지 않았고
결국 옆에 계시던 이모할머니는 한숨을 쉬며
"지켜보는 내가 다 답답하다"라고 했다.
"자. (슈붕)아. 다 집어치우고,
엄마랑 연습하자. 거절하는 연습."
"???? 응?? 그건 나도 할 줄 알아.."
"아니. 넌 모르고 있어. 엄마 따라 해.
누가 너에게 요구를 했는데 그 요구가
싫다고 느껴진다면 이 말을 하는 거야.
싫어! 그건 네가 해!"
"싫어..그건 네가 해.."
"더 크게!!! 눈에 힘 뽝!! 주고!
배에 힘! 주고! 자신감 있게!
싫어! 너나 해!"
"부끄러워..이걸왜 하는 거야..."
"어허! 빨리 하라니까!"
"싫어..!너나 해..!"
"아냐 아직 틀렸어! 더 자신감 있게 하라니까!"
"엄마한테 이걸 말하는 것 같아서 싫어.."
"그럼 엄마보고 하지 말고벽 보고해."
"혼자 말하는 것 같아서 좀..."
"쓰읍! 얼른!!"
"싫어..!!너나 해!!!!"
"그렇지 잘 하네! 한번 더!"
그렇게 연습을 하고 있을 때 아빠가 돌아왔다
아빠는 나와 엄마를 보며
뭐 하고 있는 거냐고 말했고
엄마는 아빠에게 자초지종을 설명했다
"(슈붕)아..그런 친구들은
너에게 진짜 친구가 될 수 없어.
너에게 항상 요구만 하는 애들은
자신의힘으로 뭔갈 할 수 없는 애들이야. 굳이 네가 그런 애들과 힘들게 놀 필요 없어.
만약에 그 친구들과 멀어지게 되더라도 엄마와 아빠는 항상 너의 편일 거고, 너는 새로운 친구를 사귀면 되는 거야." 나도 친구를 잃고 싶지 않은 마음에 정말 작은 목소리로 얘기했다. "그렇지만.. 그 언니들이랑 노는 게 재밌는걸.." "재밌는 건 재밌는 건데, 네가 항상 이렇게 누군가한테 맞춰주는 건 정말 잘못된 거야 그러니 게네들 말고도 그 시간에 놀이터에 있는 친구 한 두 명 정도는 있을 테니까. 그 애들이랑 놀려고 노력해 봐. 너는 성격이 좋으니까 잘 사귈 수 있을 거야." "응.!" 아빠가 무서웠지만 그 시절에도 아빠가 멋져 보이고 같이 있을 때 즐겁고 좋았던 순간들이 참 많은데 이 사건이 그중 하나였다. 그렇게 저녁을 먹고, 엄마에게 "그래도 걔랑은 놀고 싶은데..." 라고 하니까 "정 그러면 걔랑은 놀아도 상관없는데 그 언니라는 작자랑은 놀지 마."
"응 알았어!"
그렇게 다음 날이 되었고,
나는 그 언니에게 무섭지만
살짝씩 반항하면서
동갑내기 친구만 챙기고 놀았다.
아무래도 나보다 나이가 많으니까
무서운 건 어쩔 수 없었다.
그러다가 엄마는 나에게
'예의가 없는 행동이다.'라고
알려줘야 한다고 했던 내용을
그애에게 알려줬다.
그 애는 며칠 동안 나를 좀 불편해하다가
또 나랑 곧 잘 놀았다.
결국 나의 이런 행동으로 인해
나를 포함한 이 3 총사는 분열됐다.
정확히는 그렇게 있다가
다른 애가 새로 와서 놀 때마다
내가 걔네들이랑
놀았기 때문이었다.
그렇게그 언니와 그 친구 2명
나 1명 이렇게 분리됐다.
그 언니들이 아닌, 이번에 같이 놀게 된
친구들은 나에게 요구하거나
그런 일도 없었다.
그냥 조그만 부탁정도?
참 신기한 일이었다.
난 이상한 실이 꼬여있는 것 같은
불편함과 불쾌함은 없어지고,
그 애들과 편하고 재밌게 놀았다.
나는 그렇게 멀어진 그 친구가 계속 맘에 걸렸다. 그래서 그 친구한테 조심스럽게 말을 걸었던 기억이 있다. "요새 잘 놀고 있어..?" 사실 그 친구도 그 언니의 독단적인 행동에 지쳐있는 친구였다. 언니한테 이리저리 끌려다니면서도
그 언니 몰래나를 챙겨주던 친구였다. 그 친구는 "어 잘 놀지.."이러고 짤막한 대화가 끝이 났다. 아무래도 불편한 만남이었기 때문이었을까 말을 제대로 할 수가 없었다 엄마한테 "걔한테 말 걸어봤는데. 잘 놀고 있대."라고 하니까 엄마랑 아빠는 의외로 시큰둥하게 "어 그래?"라고 하면서 엄마가 "넌 걔네들이랑 떨어졌으니 됐어~ 그렇게까지 신경 썼으면 안 써줘도 돼. 이제 끝난 거야."라고 했다. 그날 저녁은 그 애들과 노는 것만큼 불편했다. 왜 그런 기분이 들었는지는. 추측하건대, 나랑 친해서 엄마도 그 친구를 챙겨주는 모습을 봤었는데. 엄마가 갑자기 이렇게 시니컬하게 나온 게 어린 마음에 불편했던 게 아닐까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