같이 갈래?
라오스에 가야겠다.
언제가 좋을까.
전에는 자유롭게 떠나버리던 여행도 청춘이 끝나버린 지금은 꽤나 까다로운 절차를 밟아야 한다.
뭐가 이렇게 할 일이 많은지.
공강에 맞춰 떠나면 끝이었던 그때와는 다르게 이제는 연차도 있어야 하고 회사 일정과 과장님 눈치도 봐야 한다.
청춘을 함부로 끝내버린 것에 대한 대가일까.
반짝반짝 빛나던 그 시절과는 달라도 너무 다르다.
그냥 적당한 비행기를 찾고 스티커가 덕지덕지 붙은 캐리어에 옷가지만 쑤셔 넣으면 끝이었는데.
라오스에 가야겠다는 결심이 무서울 정도로 높은 현실의 벽에 가로막혀 희미해질 무렵 기회가 찾아왔다.
그것은 조금 뜬금없게도 대학교 친구들의 단톡방에서였다.
최근 어린이집에 취업한 세희가 일 년 치 휴가를 한 번에 짜야한다며 혹시 여름 즈음에 다 함께 시간을 맞춰 여행을 가는 게 어떠냐는 것이었다.
단톡방에는 총 4명이 있는데 세희와 나를 제외한 민아와 민정이는 모두 대학원생들이다.
여름휴가를 이용한다면 시간을 맞추는 일이 비교적 쉬운 편이었다.
몇 번의 대화 끝에 날짜는 정해졌다.
날짜는 8월 중순.
여름의 한가운데였다.
하지만 진짜 문제는 어디를 가냐는 것이었다.
이미 나의 마음속 행선지는 라오스였지만 다른 아이들의 생각은 모르는 일이었다.
우리의 대화 속에서 여러 나라들이 등장했다.
만만한 일본과 제주도부터 세부, 하이퐁, 방콕, 하노이, 싱가포르, 타이베이, 쿠알라룸푸르, 코타키나발루…
그리고 라오스.
기쁘게도 라오스를 먼저 꺼내준 이는 세희였다.
어떤 여행이든 티켓을 담당하는 이는 나였기에 각 나라별로 저렴한 티켓들을 찾아 올리고 투표를 진행했다.
치열했던 투표가 끝나고 살아남은 여행지는 세부, 하이퐁, 하노이였다.
아, 나의 라오스, 나의 노스탤지어.
세희의 입에서 라오스가 나왔을 때 운명인가 싶었지만 어쩌겠는가.
졸업여행 가는 셈 치고 다녀오리라 마음을 접었다.
우리가 졸업을 앞둔 2020년, 예전부터 졸업기념으로 여행을 가기로 했었지만 코로나로 인해 어느 곳도 가지 못했었다.
미루던 졸업여행을 이제야 간다고 생각하니 굳이 라오스가 아니어도 상관없겠다 싶었다.
우리가 함께 떠난다는 것이 중요하니까.
여행지가 3개로 줄여졌으니 이제는 만나서 함께 의논해 보는 것이 좋다는 생각이 들어 그 주 주말에 만나 회의를 하기로 했다.
민아는 갑작스러운 학교 행사로 오지 못했지만 카톡의 실시간 중계로 인해 빈자리가 크게 느껴지지는 않았다.
우리는 망원의 한 카페에 모여 앉아 각자 나왔던 여행지들을 검색해 보고 서로의 생각과 의견을 공유했다.
여러 의견들이 오고 갔다.
하노이를 이미 여러 번 방문한 민아의 의견에 따라 하노이가 탈락하고 남은 두 나라에 대해 조사해보고 있을 때였다.
“근데 라오스는 왜 싫어?”
라오스에 대한 미련이 아직 남았던 내가 세부와 하이퐁에 대해 찾아보다가 무심코 뱉은 말이었다.
하이퐁은 그다지 끌리지 않았고 세부 또한 다른 아이들의 반응이 시큰둥했기 때문이었다.
세부에서 즐기는 물놀이와 하이퐁의 자연경관.
그 두 가지를 모두 갖춘 곳이 라오스라는 생각이 들었다.
“사실 라오스에 뭐가 있는지 잘 몰라…”
민정이의 말이었다.
라오스에 뭐가 있는지 모른다고?
가고 싶지 않은 것이라면 이해할 수 있다.
하지만 몰라서 안 간다는 것은 참을 수 없었다.
마치 미리 준비라도 한 양, 라오스에 대한 브리핑이 시작되었다.
저렴한 물가와 음식들, 자연경관, 버기카, 액티비티 등.
그리고 마지막으로 노트북을 열어 블루라군을 검색한 뒤 화면을 돌려 세희와 민정이에게 보여 주었다.
화면을 본 민정이와 세희의 눈이 반짝였다.
마치 5년 전 나와 친구들이 작은 티브이 화면 속에서 처음으로 블루라군을 보았던 그때처럼.
그렇게 우리의 의견은 라오스로 노선을 틀었다.
민아 또한 블루라군의 힘으로 설득할 수 있었다.
다시 그곳으로 가게 되었다.
가장 빛나던 시절의 내가 있던 곳, 라오스.
내가 잃어버린, 지켜주지 못한 애틋한 나의 청춘.
이미 한참 전에 사라져 버렸지만 그곳에서 만큼은 여전히 빛나고 있었다. 이미 소멸해 꺼져버렸지만 너무 멀리에 있어 아직도 빛나고 있는 저 하늘의 어느 별처럼.
쇠뿔도 단김에 빼라 했던가.
내친김에 우리는 티켓도 결제하기로 했다.
여름휴가 기간에 떠나는 일정이라 좀 더 늦어지면 티켓을 구할 수 없을지도 모른다고 판단했기 때문이었다.
따로 결제하겠다고 한 민아를 제외하고 우리 셋의 티켓을 결제했다.
여름휴가기간에 겹쳐있기 때문인지 다른 달보다 훨씬 비싼 가격이었지만 라오스는 분명 우리에게 그 이상을 돌려줄 것이라 확신했다.
티켓의 가격보다는 라오스에 간다는 설렘이 내게는 더 크게 다가왔다.
청춘 위에 잔뜩 쌓여버린 먼지를 한 겹 벗겨낸 기분이었다.
이렇게 한 겹씩 벗겨가다 보면 언젠가는 다시 예전처럼 반짝반짝 빛날 수 있겠다는 희망이 샘솟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