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만의 색으로 빛나는 청춘
청춘은 흔히 붉은색에 비유되곤 한다.
뜨겁고, 강렬하며, 모든 것을 태울 듯한 에너지의 색.
하지만 정작 청춘이라는 단어에는 ‘푸를 청(淸)’이 담겨 있다.
왜일까?
왜 이 불타는 시절의 단어가 푸른빛을 품고 있을까.
나는 이것이 우리가 흔히 간과하는 청춘의 또 다른 모습을 담고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붉은색이 청춘의 타오르는 열정을 상징한다면, 푸른색은 그 열정이 뿌리내린 깊이를 이야기한다.
푸른빛은 단순하게 차분한 색이 아니다.
때로는 짙푸르게 가라앉고, 때로는 투명하게 변하며 그 자체로 많은 감정을 품고 있는 색이다.
하늘이 매일 같은 색으로 머물지 않듯, 바다가 언제나 잔잔한 것이 아니듯이, 청춘도 마찬가지이다.
오직 뜨겁게 불타기만 하는 시간만이 청춘이 아니다.
고민하고, 방황하며, 나만의 길을 찾아 헤매는 푸른빛의 시간 역시 청춘이다.
그리고 더 나아가 푸를 청을 품은 것은 청춘이 단 하나의 색으로 정의될 수 없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붉은색으로만 정의하기엔 너무나도 다양한 모습과 감정들이 청춘 속에 담겨 있다.
기쁨과 슬픔, 기대와 두려움, 희망과 불안.
마치 저녁노을이 어둠 속에 스며들어 별빛이 되는 것처럼.
우리의 청춘은 각기 다른 색으로 빛나며, 그 모든 색이 모여 인생이라는 커다란 캔버스를 채운다.
그러니 지금 당신의 청춘이 붉지 않다고, 어딘가 부족하다고 느껴진대도 괜찮다.
청춘은 원래 단 하나의 색이 아니니까.
당신의 청춘은 당신만의 색으로 빛나고 있다.
그 빛은 세상 어디에도 없는, 오직 당신만이 지닌 특별한 색이다.
그리고 그 색은 다른 이들의 청춘과 어우러져 더 다채롭게 빛나는 세상을 만들어간다.
푸른빛처럼 넓고 깊게, 노란빛처럼 따뜻하게, 당신만의 색을 그려나가는 모든 순간이 청춘이다.
어쩌면 우리는 흔하게 말하는 붉은색 청춘을 이미 지나왔을지도 모른다.
뜨겁고 강렬했던, 젊음이 가득한 그 시기는 분명 다시 돌아오지는 않을 테니까.
하지만 청춘은 한 번 빛났다가 꺼져버리는 불꽃놀이 같은 것이 아니다.
우리는 앞으로도 계속해서 타오르고 희미해지기를 반복할 것이다.
겨울이 지나고 돋아나는 새싹처럼, 밤이 깊어질수록 더욱 선명해지는 별처럼.
모든 것을 태울 듯한 붉은빛은 아니겠지만 우리만의 색으로 반짝반짝 빛날 것이다.
붉은색 청춘의 시절을 지나고 있는 이들이 우리를 보고 샘을 낼 만큼.
청춘이란 결국, 기억 속에서 살아남는 순간들일 것이다.
오늘 우리가 나눈 이야기들, 함께 바라본 풍경, 같은 곳에서 느껴졌던 감정들.
그것들이 언젠가 우리 각자의 삶이 더 바빠지고 더 단단해진 후에도 이 시간을 떠올리게 해준다.
그리고 그때, 우리는 오늘의 이 순간을 청춘이라 부르게 될 것이다.
청춘.
그것은 언제나 이름답다.
의심할 여지없이 사실일 것이다.
타오르는 햇살보다 눈부시고 밤하늘의 별빛보다도 빛이 난다.
가진 것이 넉넉하지 않더라도, 화려한 옷을 입고 있지 않아도 그 자체로도 충분히 아름답다.
그러나 우리는 대부분이 그 시절의 아름다움을 인지하지 못하고 지나쳐 버린다.
그리고 그 빛이 꺼질 때쯤 그제야 비로소 눈치챈다.
나도 그랬으니까.
하지만 이제는 알고 있다.
청춘이라는 빛은 꺼지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그저 시간이라는, 삶이라는 무게에 먼지가 쌓였을 뿐이라는 것을.
먼지가 쌓이는 것을 막을 수는 없다.
하지만 쌓인 먼지는 그저 가볍게 털어내면 그만이다.
깨끗하게 털어내고 닦아주면 언제든 빛날 수 있는 것이 청춘이다.
우리는 앞으로도 무수히 빛이 나고 희미해지기를 반복할 것이다.
그리고 다시 빛을 내는 일은 오롯이 나의 몫이다.
어떤 사람은 시간이 흐를수록 빛을 잃었다고 생각하며 아쉬움 속에 머무르고, 어떤 사람은 먼지를 가볍게 털어내고 다시 반짝이기를 선택한다.
우리가 청춘을 잃었다고 느낄 때, 어쩌면 그것은 사라진 것이 아니라, 다시 빛을 내기 위한 시간이 필요한 것인지도 모른다.
그러니 당신의 청춘이 자주, 밝게 빛이 나기를.
그 흔한 붉은색이 아닌,
오직 당신만의 색으로 환하게 빛나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