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7_아쉬움이 다음을 만드니까

떠오르는 태양

by 한경환

덜컹.


비행기가 가볍게 흔들리는 진동에 잠에서 깨어났다.

아직 완전히 눈이 떠지지 않은 채로 조용히 숨을 고르며 창밖을 바라보았다.

창밖은 여전히 어둠을 머금고 있었지만 저 멀리 수평선 너머로 아주 희미한 빛이 서서히 번지고 있었다.

밤과 새벽이 맞닿은 경계에서, 하루가 천천히 시작되고 있었다.


어둠과 빛이 맞닿은 경계선 위에서 태양은 천천히 세상을 물들이고 있었다.

푸른빛이 아련하게 퍼지고, 그 위로 연한 분홍빛이 덧칠되었다.

이내 붉은 기운이 차올랐고 마침내 황금빛의 태양이 모습을 드러냈다.

거대한 불덩이가 지평선 위로 떠오르는 순간, 구름은 황홀한 색으로 물들었고 하늘은 서서히 밝아졌다.

마치 어둠이 물러나는 것을 허락이라도 하듯, 태양은 천천히 세상을 깨우고 있었다.


기내에는 여전히 잔잔한 숨소리가 가득했다.

하지만 그 숨소리 사이로 누군가 작게 기지개를 켜는 소리도 들려왔다.

몇몇 사람들은 창밖을 응시한 채 아무 말 없이 앉아 있었다.

어떤 이는 눈을 비비며 물을 마셨고, 어떤 이는 조용히 손목시계를 확인했다.

여행의 끝자락에서 모두가 각자의 방식으로 아침을 맞이하고 있었다.

간간히 셔터음이 들려왔다.

마치 이 순간을 붙잡아 두려는 듯, 누군가 조용히 사진을 찍고 있었다.

나 또한 그 순간을 남기고 싶었지만, 아쉽게도 태양은 우리가 앉은 쪽과는 반대편에서 떠오르고 있었다.


잠시 망설이다가 열심히 사진을 찍고 있는 옆자리의 승객에게 말을 걸었다.


“혹시 해 뜨는 모습 사진 찍으셨나요?”

“네, 몇 장 찍었어요.”


그녀는 고개를 끄덕이며 자연스럽게 휴대폰을 내밀어 보여주었다.

화면 속에는 금빛으로 붉게 물든 하늘과 태양이 선명하게 담겨 있었다.

나는 감탄하며 말했다.

“와, 예쁘네요! 괜찮으시면 제 핸드폰으로도 찍어주실 수 있으실까요?”

“엇, 지금은 이미 해가 다 떠버려서요. 대신 제가 찍은 거 에어드롭으로 보내드릴까요?”

“정말요? 감사합니다!”


사진이 내 핸드폰으로 전송되는 동안 우리는 짧은 인사를 나누었다.


“여행 다녀오신 거예요?”


그녀가 물었다.

나는 가볍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네, 친구들하고 같이요. 내려서 바로 출근해야 해요.”

“그래도 좋은 기억을 많이 가져가셨길 바라요.”


조금은 우울한 듯 대답한 내게 그녀도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


“네 덕분에 좋은 기억이 하나 더 생겼네요.

오늘 좋은 하루 보내세요.”

“당신도요.”


잠시 후, 기내 방송이 흘러나왔다.

곧 인천공항에 도착한다는 안내였다.

비행기가 착륙하자 창밖으로 익숙한 풍경이 눈에 들어왔다.

희뿌연 아침 공기 속에 차가운 공항의 조명이 반짝이고 있었다.

새벽의 잔향이 남아 있는 듯한 공기, 아직은 잠들어 있는 듯한 땅, 그리고 그 위를 부드럽게 감싸는 아침빛.

우리는 조용히 벨트를 풀고, 앞줄부터 차례로 비행기에서 내려 가기 시작했다.

우리가 출발하던 날과는 반대의 과정을 밟고 있었다.

비행기에서 내려 게이트를 지났다.

이제 여행이 완전히 끝이 났음이 서서히 실감 나기 시작했다.

모든 것이 다시 제자리로 돌아온 듯했지만 마음 한편에는 어딘가 조금 달라진 것이 남아 있었다.

반짝이는 청춘을 품은 채였으니까.


입국심사도 무리 없이 통과했다.

심사대 앞에서 여권을 스캔하는 동안에도 별생각이 없었지만 입국장이라는 글자를 본 순간, 다시 한국으로 돌아왔다는 사실이 선명하게 와닿았다.

이제 더는 여행자가 아니었다.

다시 일상을 살아가야 하는 사람일 뿐.

우리는 캐리어가 나오는 곳을 향해 이동했다.

긴 컨베이어 벨트 위로 여행자들의 짐이 하나씩 흘러나왔다.

우리는 캐리어를 기다리며 조용히 서 있었다.

별다른 대화는 없었다.

각자 마음속으로 여행의 끝을 정리하는 듯했다.


세희의 캐리어가 가장 먼저 컨베이어 벨트 위에 모습을 드러냈다.

8시 반까지 출근해야 했던 세희는 우리와의 짧은 인사를 나누고 서둘러 발걸음을 옮겼다.

민아는 공항버스 정류장으로 향하며 피곤한 얼굴로 손을 흔들었다.

출발하던 날처럼, 우리는 각자의 일상 속으로 흩어졌다.

민정이와 나는 함께 지하철역으로 내려갔다.

바퀴가 굴러가는 소리만이 침묵 속에서 길게 이어졌다.


지하철이 출발하고 창밖으로 풍경이 스치듯 지나갔다.

어둠을 밀어내고 완전히 떠오른 태양이 차창 너머로 부드러운 빛을 드리우고 있었다.

새벽에 마주했던 황금빛 태양이 이제는 일상 속으로 스며들고 있었다.

우리도 이렇게 떠오르는 태양처럼, 여행에서 받은 따뜻한 빛을 품고 다시 앞으로 나아갈 것이다.


그렇게 우리는 각자의 자리로 돌아갔다.

아쉽지 않다면 거짓말이겠지.

하지만 마냥 아쉽지만은 않았다.

우리가 만들어 온 추억이 남아있으니.

우리가 그 추억을 떠올릴 때마다 그 순간들이 우리 안에서 빛을 낼 거라는 것을 알고 있다.

때로는 무심코 지나치는 일상 속에서, 때로는 지친 하루의 끝에서, 우리는 그 빛이 밝혀주는 길을 따라 다시 나아갈 것이다.


칠흑 같은 어둠을 밀어내고 가장 먼저 떠오르던 황금빛 태양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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