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춘의 조각 남기기
로비 한편에 나란히 놓인 캐리어의 손잡이를 감싸 쥐었다.
이 낯선 나라에서 우리는 꽤 오랜 시간을 보냈고 이제 다시 익숙한 곳으로 돌아갈 시간이다.
호텔의 유리문이 부드럽게 열리자, 밤공기가 얼굴을 스쳤다.
적당히 따뜻하고 적당한 습기를 머금고 있는 공기.
낮에는 그토록 덥게 느껴졌던 이 공기가 지금은 유난히 포근한 온기로 다가왔다.
호텔 앞에 서 있던 택시 기사님은 우리의 짐을 받아 조심스럽게 트렁크에 실었다.
힘을 주어 들어 올리고, 천천히 내려놓는 손길이 낯설지 않았다.
이곳에서 우리가 만난 사람들은 하나같이 그랬다.
서두르지 않지만 결코 게으르지 않은 태도. 여유롭지만 허투루 하지 않는 손길.
여행 내내 마주했던 이 도시의 모습이 그 안에 담겨 있었다.
택시에 오르기 전, 숙소를 돌아보았다.
이곳에서 보냈던 시간이 스쳐 지나갔다.
비를 잔뜩 맞으며 들어섰던 입구, 맥주와 함께 저물던 밤, 아침을 가득 채웠던 수영장, 그리고 그 속에서 함께 웃던 우리들까지.
손을 흔들며 마지막 인사를 건넸다.
담담하게 서있는 호텔을 뒤로하고 택시에 올랐다.
차는 조용히 도로를 달리기 시작했다.
창밖으로 비엔티안의 마지막 밤이 흘러갔다.
거리에는 여전히 사람들의 온기가 남아 있었다.
반쯤 내려간 셔터 사이로 희미한 불빛이 새어 나오고, 가게 앞에 놓인 작은 의자에는 주인장이 앉아 담배를 피우고 있었다.
어디선가 흘러나오는 라오스 노래가 밤공기를 가로질렀다.
도로 한쪽에는 낮 동안 장사를 마친 노점들이 조용히 자리를 잡고 있었다.
무심하게 포개어진 테이블과 의자들, 덮개를 씌운 수레, 그리고 그 곁을 느긋하게 거닐던 고양이 한 마리.
이곳에서의 밤은 마치 하루를 정리하는 누군가의 노트처럼 조용하고 담담했다.
도시를 빠져나간 이후에도 택시는 여전히 천천히 달렸다.
처음 이곳에 도착했을 때는 이 속도가 답답하게 느껴졌었다.
하지만 지금은 다르다.
더 이상 이 느긋함이 지루하게 다가오지 않았다.
오히려 이곳의 속도에 자연스럽게 몸을 맡기고 있는 나를 발견했다.
우리는 이제 이 도시를 떠나고 있었지만 마음은 여전히 이 도시의 박자에 맞춰 흐르고 있었다.
공항에 도착한 택시가 부드럽게 멈춰 섰다.
기사님은 트렁크에서 우리의 짐을 하나하나 꺼내어 주었다.
우리는 하나씩 짐을 받아 들고 공항 안으로 걸어갔다.
6일 만에 다시 돌아온 공항이다.
처음 이곳에 도착했을 때의 설렘과 낯설었던 공기가 이제는 익숙한 온도와 향기로 바뀌어 있었다.
공항에서 짐을 찾으며 느꼈던 묘한 긴장감, 첫걸음을 내딛던 순간의 떨림을 아직도 기억하고 있다.
공항의 풍경은 변하지 않았지만 우리가 마주하는 감정은 달라져 있었다.
여행이란 그런 것이다.
같은 길을 걸어도, 같은 장소를 지나도, 마음에 담기는 것은 전혀 다른 것이 되는 것.
출국 심사를 앞두고 우리는 차례로 줄을 섰다.
번쩍 들어 올린 캐리어를 저울에 올렸다.
캐리어 안에는 기념품만 들어 있는 것이 아니었다.
우리가 함께 보낸 시간들, 여행의 순간들, 밤새 나눈 대화와 웃음소리까지.
그 모든 것들이 짐 속에 차곡차곡 쌓여 있었다.
그래서였을까, 민아의 캐리어가 적정 무게보다 조금 더 무거웠다.
짐을 빼야 하나 걱정했지만 다르게 무사히 통과할 수 있었다.
차례가 다가오자 한 명씩 여권을 내밀었다.
심사대 앞에서 여권을 건네는 친구들의 얼굴은 한결 여유로워 보였다.
한참을 기다리며 낯선 공기에 긴장을 했던 입국때와는 다른 얼굴이었다.
심사를 마친 우리는 출국장에 나란히 앉아 비행기를 기다렸다.
꾸벅꾸벅 졸고 있는 민정이, 기념품 가게를 기웃거리는 민아, 휴대폰 속 사진을 넘기며 미소 짓는 세희.
창밖으로 공항의 활주로가 펼쳐져 있었다.
먼 곳에서 비행기 한 대가 다가오고 있었다.
“이제 정말 갈 시간이네.”
아쉬움이 묻어나는 한 마디가 작은 침묵을 만들었다.
모두가 조용히 창밖을 바라보았다.
여행을 마치고 돌아가는 이 순간, 우리는 무엇을 얻었을까.
그저 몇 장의 사진과 기념품만 남은 것은 아니었을 것이다.
우리는 서로에 대해 더 많은 것을 알게 되었고 함께한 시간 속에서 서로를 더 깊이 이해하게 되었다.
민정이는 무서워하면서도 끝까지 걸어가는 사람이라는 것, 세희는 조용히, 하지만 꾸준히 앞으로 나아가는 사람이라는 것, 민아는 어떤 상황에서도 웃음을 잃지 않는 사람이라는 것.
비엔디안의 밤하늘 아래, 우리는 우리만의 청춘을 쌓아 올렸다.
그리고 각자만의 색으로 빛나는 청춘을 품었다.
여행지에서의 시간은 길지 않았지만 그 시간들은 오래도록 우리의 마음속에 남을 것이다.
우리가 다시 일상으로 돌아가더라도, 어떤 순간에는 불현듯 이곳의 기억이 떠오를 것이다.
“다음에도 다 같이 오자.”
“좋아!”
“진짜로 꼭 같이 오자.”
그 말이 농담처럼 들리지 않았다.
정말로 그렇게 될 것만 같았다.
우리 비행기의 탑승을 알리는 소리가 공항에 퍼졌다.
우리는 조용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이제 이곳을 떠날 시간이었다.
창밖에는 여전히 비엔티안의 밤이 흐르고 있었다.
떠나가는 우리와는 달리, 도시는 한결같이 그 자리에 남아 있었다.
우리가 떠나도 이곳에서 보낸 시간은 여전히 이곳의 밤공기 속에 머물고 있을 것만 같았다.
그래, 언젠가는 다시 라오스에 돌아올 수 있을 것이다.
울퉁불퉁한 비포장 도로를 달리던 툭툭이, 이름처럼 푸르른 블루라군이, 산속을 날아다니던 집라인이, 목을 차갑게 식혀주던 시원한 라오비어가 그리울 때면 말이다.
떠나는 것은 라오스가 아니니까.
라오스는 늘 이 자리에 그대로 있을 테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