잔잔함은 강렬함을 이기지
우린 참 많이도 빛났고 또 많이도 부딪혔지.
어느 날엔 깨어졌고
또 어느 날엔 숨 막힐 듯 아름다웠어.
너는 가끔 내게 말했지.
내가 너무 잔잔한 호수 같다고 말이야.
나는 웃으며 대답했어.
그럼 너는 내게 일어난 물결 같은 사람이라고.
잔잔한 나에게 일어난 작은 사건 같다고 말이야.
나는 네가 살랑이는 바람에
부드럽게 일어난 물결인 줄 알았는데
짓궂은 날씨가 일으킨 너울이었어.
네가 일으킨 너울은
시간이 한참은 지나서야 잔잔해지더라.
모든 것을 집어삼킬 것 같던 파도도,
나를 어지럽히던 너울도
끝끝내는 잔잔함만이 남더라고.
우리의 혀가 뒤엉키고
맹렬히 몸을 섞던 순간보다
윤슬같이 빛나던 미소가 기억에 남는 것처럼
잔잔함은 언젠가 강렬함을 이긴다.
나무들이 여러 번 옷을 갈아입은 지금쯤
너에게 나는 어떤 사람일까.
웃음을 잃어버린 내가, 마침내 그것을 되찾은 순간에
그토록 잔잔했던 내가
그제야 네게 강렬히도 타오르기를.
그때서야 잔잔함이 강렬함을 이겨내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