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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doctor flotte May 03. 2024

살아가는 것의 살아 있음

– 이 고마운 생명에 대하여

어리석은 나날들이 지나가고 그런 날들을 후회하다가도 그냥 피곤해 잠이 든다. 다음 날 피곤한 몸으로 장거리 운전을 하며 다시 살아간다. 잠시 쉬어야 한다는 것을 알면서도 무리해서 계속 운전을 한다. 커피를 많이 먹다보니 속이 쓰린데 유산균을 먹으니 조금 괜찮은 것 같다. 커피를 먹기 위해 유산균을 먹는다. 철학책을 읽는 것과 사랑스런 아이와 노는 것 중에 무엇이 더 소중한 것인지 알 수 없어 아이와 노는 것을 택한다. 그나마 나중에 덜 후회하기 때문이다. 나이가 꽤 들었다. 읽어야 할 책도, 해야 할 생각도, 써야 할 책도 많지만 작년 이맘때 죽은 프레슬러의 쇼팽연주를 듣다 보면 내가 더 뭘 생각하고 써야 하는지 회의감이 든다. 다 거기에 있는 것 같기 때문이다. 이 모든 것들이 아무것도 해결되지 않았는데 다시 소파에 앉아 핸드폰이나 끄적인다. 피곤해서 일단 쉬어야 할 것 같기 때문이다. 시간은 흘러가든 말든.


생각해 보면 삶은 아무리 작은 파편들을 모아 이렇게 대충 던져 놓아도 언제나 한 가지 모습을 보여준다. 살아가고 있다는 사실 말이다. 우선 나는 계속 몸을 사용하고 있었다. 피곤함을 느끼고, 커피를 마시고, 웃기기 위해 바보 같은 표정을 짓고, 음악을 들었다. 살아가는 것은 몸을 쓰는 것이 분명하다. 그리고 내 몸은 아직 차갑지 않다. 체온이 있기 때문이다. 열을 만들어 내며 꿈틀 대고 있다. 살아있는 것이다. 결국 살아간다는 것은 어쩌면 살아있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 삶이란 ‘살아가는 것의 살아 있음’이다.


말장난이 아니다. 삶이라는 장난에 대해 생각해 보자. 삶에 대해 생각하기 위해서는 살아 있어야 한다. 살아 있기 때문에 삶에 대해 생각할 수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삶은 이제 내가 생각할 어떤 대상이 아니라, 생각이라는 것의 전제조건이 된다. 아니 이 말도 맘에 들지 않는다. 내가 살아 있다는 것은 시간적으로나 공간적으로나 생각에 앞선 어떤 조건들이 아니기 때문이다. 생각할 때에도 나는 살아 있다. 살아 있지 않은 상태에서 내가 생각을 한 적이 없다면 생각은 그 자체가 살아 있다는 사실이 된다. 생각은 삶에 대해 생각할 수 없는 것이다. 어떤 경우에도 생각과 살아 있다는 것을 구분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런데 자꾸 문제가 되는 것은 그 살아 있다는 사실이란 내가 이해하거나 멈추거나 바꿀 수 없는 것이어서 분명 어떤 의미로든 나를 앞서고 있다는 점이다.


살아 있다는 것은 내가 온 몸으로 언제든 직접 느낄 수 있는 것이지만, 무엇인지 결코 알 수 없는 것이 된다. 생리학이 말하는 생명이 내가 살아있다는 사실을 설명해 주지 못한다. 아니 더 속 시원히 말하자면 생명은 처음부터 생리학이나 의학의 대상이 될 수 없다. 지금 우리가 고민하는 생명은 탄생을 모르는 생명이고 죽음을 모르는 생명이기 때문이다. 생과 사가 중요하지 않다는 것이 아니라, 그에 앞서 문제가 되는 이 알 수 없는 살아 있다는 사실이 탄생의 기쁨과 죽음의 슬픔보다 더 깊다는 것이다.


우리에게는 살아 있는 동안만 삶에 대한 고민이 허용되었다. 그러나 그 장난은 정도가 심해서 이제는 포기하고 그만 나오라고 아무리 소리쳐도 나오지 않는다. 살아 있다면 나는 그 대가로 영원한 술래가 되는 것이다.


살아간다는 것은 살아 있다는 것이고 그 둘은 구분이 되지 않는다. 이것은 당장은 어떤 철학적 혼란을 야기하는 것처럼 보일 테지만, 내가 하고 싶은 말은 사실 이것이다. 살아간다는 것과 살아 있다는 것을 생각하며 혼란스러워 할 수 있다는 것이 바로 철학의 원천이 된다는 점이다. 원천이 되고 뿌리가 되고 동기가 되고 위안이 된다. 내가 철학을 하지 않을 수 없는 ‘생각하는 사람’이 되게 하고 그렇게 살아갈 수 있도록 내 일상에 힘을 주는 원천이 되고 가끔은 위험하게 한쪽으로 기울지 않도록 지탱해 주는 고마운 뿌리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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