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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즈쑤 Aug 19. 2024

적절한 거리를 유지할 것


시간이 오래 지났지만 생각나는 직장 동료가 있다. 박 부장은 나보다 직급은 높았지만, 나의 상사는 아니었기에 동료라는 표현이 맞을 것 같다. 나는 지금도 박 부장 생각만 하면 약간의 울렁거림을 느낀다. 


관리팀이었던 나는 리더인 전무님 밑에 세 명의 팀원으로 구성되어 있던 팀의 일원이었다. 내가 입사했을 당시엔 팀원이 두 명이었고 박 부장과 이 차장이었다. 전무님을 포함하여 이 세 명은 이미 10여 년을 함께 근무해 오고 있었다.


오랜 시간을 함께 근무한 관계이다 보니 팀 분위기가 따뜻하게 느껴졌다. 가족같이 이해하고 서로 챙겨주는 모습도 인상적이었다. 이런 팀에서 함께 일하게 되어 다행이란 생각이 들었다. 나는 빨리 이들과 친해지고 싶었다.


그런데 출근한 첫날 점심식사를 함께 한 후였다. 박 부장이 나에게 질문했다. “너는 전에 어디에서 일했니?” 나는 순간 주위를 둘러보았다. 나에게 한 질문처럼 느껴지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아 네, 저는 전에 영국계 회사에서 근무했었습니다.” 얼떨결에 대답은 했지만, 기분이 유쾌하지 않았다.


박 부장은 출근한 첫날부터 오래 알고 지낸 선 후배 사이처럼 나를 대했다. 직급은커녕 존댓말 한번 사용하지 않았다. 박 부장의 그런 말투가 처음엔 당황스러웠다. 하지만 이내 적응이 됐다. 오히려 모든 게 낯설었던 나를 여러모로 챙겨줘서 고마웠다. 


나는 박 부장, 이 차장과 함께하는 시간이 많았다. 업무시간 중에 틈틈이 함께 티타임을 갖었다. 점심을 함께 먹기도 했다. 가끔은 박 부장 차를 이용해서 맛집을 찾아가기도 했다. 함께 하는 시간이 많아질수록 둘의 사이가 생각했던 것보다도 가깝다고 느꼈다. 


한 번은 셋이 함께 점심을 먹고 차를 타고 사무실로 돌아가고 있었다. 나는 뒷자리에 앉아 있었다. 앞에 앉은 두 사람이 농담을 주고받으며 대화했다. 그때 갑자기 박 부장이 “야 너는 좀 맞아야겠다.” 그러면서 주먹으로 이 차장의 머리를 몇 대 때리는 것이었다. 나는 깜짝 놀라서 쳐다봤다. 근데 정작 이 차장은 웃으며 “아 뭐예요. 진짜.” 이러고 말았다. 


며칠 후, 업무시간 중이었다. 이 차장 자리는 내 왼쪽이었다. 이 차장과 박 부장은 파티션을 사이에 두고 마주 앉아 있었다. 갑자기 이 차장이 자리에서 일어나 박 부장에게 속삭였다. 속삭이는 말투에서 언짢음이 느껴졌다. 왜 그러냐고 물어보니 박 부장이 코 푼 휴지를 자기 책상으로 던졌단다. 그 말투에는 박 부장의 행동을 감싸주는 뉘앙스가 있었다.


언제부터인가 나는 이들이 주고받는 말과 행동에 화가 나기 시작했다. 지나칠 만큼 친하게 지내다 보니 두 사람 사이에 경계는 무너져있었다. 박 부장은 이 차장에게 직장에서 상상할 수 없는 말과 행동을 했다. 그러면서도 미안해하지 않았다. 당연하다고 생각하는 것 같았다. 이 차장 역시 박 부장에게 정색하며 화를 내지 않았다. 공과 사를 분명히 하면서 서로 지킬 건 지켜야 한다고 생각하는 나만 화가 났다. 


내가 직접 겪은 일도 아닌데 화가 나는 내가 우습기도 했다. 신경 쓰지 말아야지 하다가도 혼자 씩씩거리며 화를 내고 있는 내 모습을 발견하기도 했다. 그러다 한편으로는 남매 같은 두 사람 사이에서 나만 거리감이 있는 것 같은 소외감을 느꼈다. 속으로는 화가 나면서 겉으로는 즐거운 척 같이 맞장구를 쳤다. 나는 이들과 좋은 관계인 것처럼 보이고 싶었다.




“부장님, 여기 그릇 있어요. 제가 덜어드릴게요.” 다 같이 근처 식당으로 점심을 먹으러 갔다. 큰 그릇에 동치미가 나왔다. 덜어먹을 수 있는 작은 그릇 네 개와 국자도 함께 나왔다. 박 부장이 큰 그릇에 있는 동치미를 숟갈로 뜨려고 했다. 나는 서둘러 작은 그릇을 내밀며 동치미를 덜어주겠다고 말했다. 


그런데 박 부장은 이런 건 다 같이 떠먹어야 제맛이라며 손사래를 쳤다. 그러더니 숟갈로 동치미를 퍼먹었다. 나는 짜증이 솟구쳤다. 냄비에서 팔팔 끓이는 전골이라면 그나마 이해가 갔을까. 동치미를 다 같이 떠먹는다는 말에 열받는 표정을 숨길 수가 없었다.


그런 내 표정을 눈치챘는지 박 부장이 사태를 수습하려는 듯 말했다. “야, 괜찮아 괜찮아. 너 이런 거 같이 먹어본 적 없어?” 나는 전골도 아니고 동치미를 누가 같이 떠먹냐고 대답했다. 그랬더니 박 부장이 한심하다는 듯 말했다. “얘는 뭘 모르네. 야 너는 왜 그렇게 세상을 각박하게 사냐. 우리 집에서는 가족끼리 칫솔도 같이 써. 그 정도는 친밀함이 있어야지.”


가족끼리 칫솔을 같이 쓰는 걸 친밀함이라고 했다. 그 얘기를 듣는 순간 속이 울렁거렸다. 밥을 먹는 둥 마는 둥 하다가 식당에서 나왔다. 화가 났다. 더럽다고 한마디 해주면 속이 시원할 것 같았다. 하지만 나는 이들과 좋은 관계로 보이고 싶었고 아무 일도 없는 듯 웃으며 걸어갔다.


처음 보자마자 야라고 부르며 반말로 친근함을 표현한다. 머리를 때리고 코 푼 휴지를 던지며 친근함을 표현한다. 친근함을 위해 동치미도 같이 떠먹었다. 친근한 가족끼리는 칫솔도 같이 쓴다. 


이런 친근함을 가진 그에게 나는 점점 화가 났다. 좋은 관계를 유지하고 싶어 화가 나지 않은 척하는 내 모습에 화가 났다. 내 속마음을 시원하게 얘기하지 못해 화가 났다.




염세주의자로 잘 알려진 독일 철학자 쇼펜하우어는 자신의 저서 <소논문집과 보충논문집 Parerga und Paralipomena>에 고슴도치와 관련한 우화를 남겼다.


추운 겨울날 고슴도치들이 모여 있었다. 고슴도치들은 가까이 다가가면 서로를 찔러서 떨어질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추위는 고슴도치들을 다시 모이게 만들었고, 똑같은 일이 반복되었다. 이러한 과장을 통해 고슴도치들은 서로 최소한의 간격을 두는 것이 가장 좋은 방법이라는 것을 깨닫게 됐다. 


나는 박 부장의 말에 화가 나면서도 좋은 관계를 유지하려고 애썼다. 가까이하면 아프고 멀리하면 추운 고슴도치가 나의 모습과 같았다. 너무 가까우면 상처를 받아 아프고 너무 떨어지면 춥고 외로워서 힘들었다. 겨우내 뭉쳤다 흩어지기를 반복하며 적당한 간격을 유지하는 고슴도치처럼 나는 박 부장과 적당한 거리 두기가 필요했다. 


이제 나는 나를 화나게 하는 사람과 적당한 거리를 둔다. 좋은 관계로 보이기 위해 무조건 내 화를 참지 않는다. 화나는 마음을 더 잘 알기 위해 글로 써본다. 거리 두기에 필요한 마지노선을 설정해 둔다. 0부터 10까지 숫자를 정해서 내가 어느 단계인지 수치화해 보는 것도 유익하다. 그러다 보면 내가 얼마만큼 화가 났는지 인지할 수 있다. 내가 화가 났음을 인지하는 것이 시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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