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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플루티스트 정혜연 Apr 12. 2023

파리지엔느와 히키코모리 그 사이 어딘가 Ep.16

16. 아빠와의 여행

 나는 유학을 가기 전에 부모님께 이야기했다.

 혹시라도 나를 보러 온다면 둘이 따로 와달라고. 한 번에 두 분을 같이 보고 오랜 시간 못 보고 사는 것보다, 한분씩 두 번을 보는 것이 나는 더 좋을 것 같다고.


 그렇게 내 첫 번째 여름방학에 아빠가 파리에 왔다. 공항에서 아빠와 반갑게 인사하고 나의 작은 집으로 왔다. 내 방을 들어선 아빠는 “이렇게 작은 데서 어떻게 사니”라고 말씀하셨다.

 침대에서 고개를 돌리면 바로 싱크대가 보인다. 침대와 싱크대 사이는 작은 테이블 하나가 들어간다. 아빠는 파리에 머무는 동안 그 작은 공간, 바닥에서 잠을 잤다.


 아빠는 와인을 좋아하신다. 와인 공부를 하시기 때문에 우리의 첫 프랑스 여행은 와이너리 투어가 됐다.

 보르도와 부르고뉴 일대를 돌며 아침 열 시부터 와인 시음을 하는 여행이란.


 뜨거운 여름날 바깥을 돌아다니다가 Cave로 들어가면 그 시원함과 함께 갖가지 와인을 시음하는 재미가 좋았다.


과거 와인 시음잔을 그대로 옮겨놓은 곳


 와인 여행 중 가장 좋았던 생테밀리옹이다. 워낙 작은 도시여서 이곳에 머무는 동안 마음이 편안했다. 넓은 포도밭을 보고 있자니, 치열했던 파리 생활에서 벗어났음을 몸소 느낀다.





 우리는 잠시 파리로 돌아왔다.

 유학 1년 차였던 나는, 미술관을 가본 적이 없었다. 경험도 공부인데, 아무래도 관광도시라서 그런지 그 유명한 루브르 박물관 등을 가는 것이 나에게는 놀러 가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그러나 아빠가 함께 박물관을 가자고 했을 때, 집에서 쉬고 싶다고 혼자 다녀오라고 한 것을 보니, 나는 그냥 귀찮아서 안 갔나 싶다.


 지금 생각해 보니 왜 그때 아빠 혼자 그곳을 가게 했을까, 너무 후회가 된다.

 보르도 - 부르고뉴 여행 후 조금 지치기도 했고, 우리는 파리에 이틀정도를 머물고 다시 이탈리아로 넘어가는 여정이었다. 이 여행 가운데 끼인 파리는 나에게 그저 집에서 쉬는 일정으로 다가왔다. 그러나 아빠에게는 여행의 연장선이었고, 특히나 파리에 사는 딸과 함께 그 도시를 즐길 기회였는데, 못난 딸은 아빠를 혼자 내보내고 집에서 쿨쿨 잠만 잤더랬다.


 그러나 쉬는 동안 충전을 했기에 남은 이탈리아 여행도 무리 없이 다니지 않았나 싶다. 100km 울트라 마라톤도 완주하는 아빠와 내 체력은 하늘과 땅 차이이기 때문에..^^




 그렇게 넘어간 이탈리아, 기억에 남는 것은 성당들이다. 내 종교가 가톨릭이라서? 성당이 아름다워서? 아니다. 그 당시 이탈리아는 뉴스에 보도될 정도로 역대급 더위를 기록했다. 에어컨이 거의 없는 유럽에서 그 극강의 더위를 피할 곳은 오직 오래된 성당뿐이었다. 성당 안은 서늘했으며 조용했다.


트레비 분수 앞.


 바캉스 시즌답게 사람도 넘쳐나던 로마. 이 많은 인파와 더위속에 정신이 흐릿해지면 본능적으로 근처 성당을 찾는다. 그곳에서 잠시 숨을 고르고 내 귀를 쉬게 한다.


 프랑스 여행에서 가장 좋았던 곳이 생테밀리옹이라면 이탈리아에선 시에나였다.


호텔에서 바라본 시에나의 모습.


 이탈리아 여행 중 가장 정적인 도시였다. 아빠 역시 가장 좋았던 도시들에 대한 생각이 나와 같다. 역시 그 아빠의 그 딸인가 보다. 


 아빠와 단 둘만의 여행은 처음이었다. 우리는 생각보다 여행 스타일이 잘 맞았다. 뮤지엄과 역사가 깃든 곳을 방문하길 좋아하고, 무엇보다 저녁마다 술 한잔 하는 즐거움을 좋아한다. 그러나 부딪치기도 정말 많이 부딪쳤다. 그중 가장 큰 이유는 식사였다. 아빠는 원래 소식가에 식사를 잘 안 하신다. 그러나 나는 때가 되면 배가 고프고, 여행의 묘미는 먹는 것이라 생각한다. 이런 아빠와 다니다 보니 점심은 가볍게 빵하나로 때우고, 근처를 더 구경하려는 아빠와, 뮤지엄 하나 안 가도 되니 맛있는 식사와 여유로운 시간을 원하는 나는 뜻이 맞지 않을 때가 많았다.

 그러나 여행을 할수록 이것도 점차 맞아갔다. 어떻게 맞춰졌냐고?


 바로 엄마에게 전화해 아빠가 밥을 안 준다고 한마디를 했을 뿐이다.


 아빠가 나를 조금만 힘들게 한다 싶으면 엄마에게 쪼르르 전화해 일러바치는 나는, 얄미운 딸이다. 아마 아빠는 이런 내가 힘들었으리라.

 그러나 엄마의 파워는 상당해서, 여행 막바지를 갈수록 음식의 퀄리티가 높아졌다.




 다시 파리로 돌아오고 마지막 하루를 보낸다.

 아빠는 나와 친한 친구들까지 불러 만찬을 즐기게 해 주었다. 그리고 조그마한 방, 열악한 주방 환경에도 불구하고 아빠표 음식들을 맛있게 만들어주었다.


주방뿐만 아니라 테이블 역시 열악하기 짝이 없다.


 그렇게 2주간의 시간이 흐르고 아빠가 다시 한국으로 떠나는 날이 다가왔다. 아빠를 맞이하러 설레는 마음으로 공항으로 향했을 땐, 2주 뒤 이런 슬픈 순간을 겪을 줄 몰랐다.


 아빠가 파리에 도착했을 때, 우리는 내가 다니는 한인 성당에 함께 갔다. 그 당시 나는 성당 친구들과의 일들로 한창 힘든 시기를 보내고 있었다. 그런 나에게 너무나 외롭고 힘든 장소를 아빠와 방문하니 그렇게 든든할 수가 없었다.


 ‘다들 잘 봐, 나도 혼자가 아니야, 나도 완전한 내편이 있다고’


 이런 마음을 가지고 아빠와 함께 기도를 하다 보니 눈물이 왈칵 쏟아졌다. 그런데 이런 아빠가 다시 내 곁을 떠난다. 나는 다시 혼자가 된다.


 나에게 아빠와의 시간은 여행 그 이상이었던 것이다. 외롭고 쓸쓸했던 공간을 따스히 감싸주고 기댈 어깨를 내어준 안식의 시간이었다. 아빠가 곁에 있는 한 두려울 것이 없었다. 그런 아빠가 떠나가는 모습을 난, 눈물로 가려져 보지 못했다.


 아빠를 보내고 집으로 돌아오는 지하철 안에서 한 시간을 내리 울었다. 집에 도착해서 텅 빈 방안을 보니 내 마음도 함께 텅 빈 것만 같았다.

 그리고는 이내 아빠의 사랑의 흔적이 보이기 시작했다. 혼자서 잘해 먹길 바라는 마음으로 사다 놓은 식재료들과, 무거워서 들지 못할 쌀 몇 가마니와 물들..

 그중에서 가장 눈에 띄는 것은 오랑주리 미술관에서 기념으로 사 온 스카프다.


 파리에 있는 동안 혼자 이곳저곳을 다닌 아빠는, 오랑주리 미술관을 구경하고 나와 엄마를 위한 스카프를 기념으로 사 왔다. 그런 나는, 스카프를 받고 투덜댔다. 예쁘지도 않고 비싸기만 한 이런 걸 뭐 하러 사 왔냐고.

 어디  곳도 아니고 바로 코앞인 미술관을 함께 가지는 못할 망정, 아빠에게 투덜대기나  나는 나쁜 딸이다.

 그렇게 그 스카프를 껴안고 울면서 엄마에게 전화를 했다.

 “아빠가 갔어.. 아빠 갔어.. 나는 나쁜 딸이야..”

 엄마 전화를 끊고도 스카프를 손에 놓지 못한  지난 시간을 자책하며  시간을 내리 울었더랬다.




 나는 정말 착한 딸은 아니다. 매일 뭐가 그렇게 불만인지, 이러쿵저러쿵 온갖 사족을 다 갖다 붙이면서 엄마 아빠를 괴롭힌다. 좋을 때만 좋고, 기분이 나쁘면 뒤돌아선다. 이기적인 딸이다.

 그럼에도 늘 내 곁에서 무한 사랑을 퍼주는 부모님께 감사하다. 지난 시간을 되짚어보며 그 사랑을 다시 확인한다.


 존재의 이유이자, 나의 기둥인 부모님께 사랑의 인사를 전한다.


문제의 오랑주리 스카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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