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늦었다고 생각할 때가 가장 늦었지만 뭐 어때

중요한 것은 꺾이지 않는 마음이거나 꺾였어도 그냥 하는 마음이랬어

by 김작가

글을 쓰라고 독려해주는 친구들이 있다. 이 친구로 말할 것 같으면, 같이 해외봉사를 다녀오고 내 절친한 친구와 함께 연극동아리도 했으며, 이제는 내가 그 절친한 친구와 친한 것보다 그 친구의 사생활 구석구석 개입되어 있을 정도로 훨씬 친한 친구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친구가 나와 개인적인 만남을 가졌던 적은 없다.


스타일이 맞지도 않고, 취향이 같지도 않고, 같은 활동을 해도 겹치는 시간도 없었으며 같은 친구를 만나도 같이 만나 본 적도 없다. 친구라고 부르기에도 사실 마땅한 친분이 없어 민망하지만 나는 그녀를 친구라고 부른다.



글을 쓰라고 격려하는 사람이 내 주변엔 많지 않다. 글을 쓴다는 것에 회의감을 느꼈거나, 글을 쓰면서 밥벌이를 하기가 힘들다는 걸 알고 있거나, 아니면 아예 글에 관심이 없거나 하는 사람들이 많다. 나 역시도 그랬다. 글로 과연 뭘 할 수 있을까. 글로 대체 뭘 남길 수 있을까. 그러면서 기록하고, 남기는 사람들에 대한 어렴풋한 동경과 나는 할 수 없을 거야 하는 자괴감, 그리고 살기 너무 바쁘잖아 하는 자기 위안까지 꽁꽁 동여매고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끔 나의 재기발랄했던 시절을 떠올리며 이미 늦었지, 하고 생각할 때가 많았다.

어려서 작가라는 꿈을 가졌을 때, 아빠는 항상 내 글을 읽고 평을 하고 검열을 했었다. 일기를 써도, 소설을 써도 몰래 다가와 몰래 보곤 했다. 가끔씩 술기운에 다른 사람들 앞에서 유머러스하게 그 자리의 분위기를 눙친답시고 나를 불러놓고 얘가 쓰는 글들은 어쩌고저쩌고 하면서 평을 달곤 했다. 술자리의 우스갯거리가 되는 경험이란 예나 지금이나 돌이켜봐도 너무 끔찍하다. 누군가의 잠시잠깐의 즐거움을 위해 내가 소비되는 것도 꺼림칙한데, 심지어 농담거리로 소비되는 일이란.


그 뒤로 나는 가까운 사람에게 내 글을 읽히는 걸 두려워했다. 내 안에서 만들어지는 이야기가 누군가의 입에서 내 인성에 대한 비판과 내 생활에 대한 비유로 사정없이 구겨지게 될까봐, 그래서 결국은 만들어낸 이야기가 나와 동일시되어서 아무것도 아닌게 될까봐. 그러다보니 가장 두려운게 평가였고, 그러다보니 더 자기검열이 세졌다. 아무것도 할 수가 없었고, 아무것도 해낼 수가 없었다. 남들 눈에 내가 어떻게 비쳐보일까를 신경쓰다가 아무것도 보이고 싶지 않아졌었다.



그러다 글을 끼적거리게 된 건 아이를 낳고 기르면서부터였다. 어릴 때처럼 소설을 쓰진 못한다. 그냥 SNS에 지금 내 이야기를 쓰고, 아이의 반짝거리는 순간을 적고, 남편과의 재밌던 순간을 끼적거렸다. 그게 생각보다 재기발랄했던 과거의 순간을 돌이켜보게 했다. 그땐 그랬지. 왕년엔 그랬지, 하는 순간


이 친구가 짜잔하고 등장했다.


한없이 작아져있고 별 것 아니라고 생각하는 내게 의외의 응원을 해주는 사람이다. 네 글은 반짝거려, 하고 실상 말하지 못하는 말들을 해준다. 세상에 이렇게 상냥한 이가 존재할까 싶었는데 실제로는 더 상냥한 것 같다. 추측인 이유는 실제로 연락하는 사이도 아니기 때문이다. 그래도 내 절친한 친구에게 전해듣는 소식으로는, 그래 상냥하다.


그녀는 종종 sns에서 글쓰는 모임만 보면 나를 태그해준다. 또 어떻게 글을 써야하는지를 카톡으로 보내주기도 한다. 때로는 내가 쓴 글을 공유해주기도 한다. 그러면서 내가 쓰는 것들, 내가 사랑하는 것들에 대한 다정한 시선을 보내준다. 그 덕분에 나는 내 글에 대해서, 나 자신에 대해서, 내가 사랑하는 것들에 대해서 더 이야기할 수 있다. 더 쓸 수 있다.

캡처.PNG 실상은 스마트폰으로 쓰지만, 공책을 가지고 다녀야겠다. 어디서든 쓸 수 있게

늦었다고 생각할 때가 가장 늦었다는 말이 있다. 맞다, 늦었으니까 늦었다고 말하는 거겠지. 실제로 글로 성공을 거두고 싶었던 재기발랄했던 시절에 비해 지금은 확실히 둔감하다. 그리고 조심스럽다. 날카롭게 어떤 지점을 찔러서 누군가를 감동시킬 수 있는 화살촉은 혹시나 내게로 향할까 혹은 내 아이에게로 향할까 이미 많이 둔감해졌다. 그렇지만 대신에 나는 화살대를 만져본다. 뭘로 만들었을까, 시위를 당기기까지 얘는 얼마나 긴장하고 있을까, 놓는 타이밍은 어떻게 되야 할까. 그런 나도 나쁘지 않다. 빠른 이들보다 늦기에 할 수 있는 일들이 있다.


그냥 한다. 한차례 꺾였어도, 몇차례 꺾였어도 그냥 하기로 결심했다.

중요한 건 꺾이지 않는 마음이랬나.

꺾였어도 그냥 하는 마음이랬나.



남들과 소통하는 듯 하면서도 한 켠에 숨겨놓았던 내 자아는 상당히 비대해져서 나 외의 다른 것들에 대해서는 이해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같은 맥락에서 그녀가 왜 이렇게까지 내게 응원을 보내는지는 모르겠지만,

나는 별다른 친분 없는 그녀를 친구라고 부르기로 했다. 내가 말하고 싶은 것, 내가 보여주고 싶은 것에 가장귀를 대고 눈을 열고 있는 그 이에게, 내가 쓴 글을 가장 먼저 보여주고 싶어졌기 때문이다. 그 이는 내가 쓴 하찮은 글도 반짝거리는 눈으로 읽어줄 것이다. 그리고 얘기할 것이다.


김작가야, 글 써. 글을 써. 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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