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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부모 육아, 저도 하고 싶었는데요.

잠시 좋은 꿈을 꾸어보았던 하루

by 김작가

이틀 연속 아이의 코를 찔렀다. 나 역시도. 검사 결과는 음성이었고, 결국 오늘은 출근을 해야했다. 아이를 누구에게 맡길까 했는데 남편이 이제 어머니를 얘기했다.


울 엄마 연차 25개야, 엄마한테 연차 써서 봐달라고 하자.


아들래미들의 말 본새는 우째 이렇게 초딩같은지 모르겠지만, 여튼 우리보다 연차부자신 어머니께 전화를 드렸다.


어머니~ 괜찮으실까요? 힘드시겠지만 부탁드릴게요, 감사해요.


할 수 있는 모든 말들을 끌어서 했다. 이미 남편의 결재 요청 이후였기 때문에 결재권자의 어머니가 승인한 걸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나는 참조로 전달받아 내가 출근할 시간, 그리고 어머니가 와주셔야 할 시간을 전달드렸다.


아이에게는 애앵할머니와 할아버지(친할아버지, 할머니가 소방서 근처에 사셔서 애앵이라는 애칭을 붙여드렸다.)가 오신다고 전달했다. 지금 코로나 때문에 비상사태니까 애앵할머니가 와주실 거야~! 했더니, 아이는 응! 할머니랑 할아버지 자고 가? 나도 옆에서 자야돼? 한다. 아니, 잠은 엄마랑 자면 돼! 했더니 그럼 됐어! 한다.


아침 일찍 평소에는 조금만 더 잘까 하고 끄던 알람에 눈이 번쩍 떠졌다. 냉장고를 이렇게 정리해볼까. 화장실을 오전에 청소하면 시끄럽겠지. 세탁물은 다 세탁기에 넣어버리자. 이차저차 깔끔하진 않아도 더럽지는 않게 집을 만들어야겠다는 생각에 나름 분주히 움직였다.


아이 간식 챙기느라 정신없어서 어머니 아버님 식사는 죄송하지만 점심에 배달시켜드리기로 했다. 아이가 할아버지 할머니에게 떼를 쓰면 어쩌지 싶은 마음에 단단히 당부를 해뒀다. 그리고 어떤 간식은 안되고, 어떤 간식은 안되고 말씀드려야지 하는데, 어머니가 아버님과 같이 오느라 생각보다 좀 늦으셔서 어머니! 아버님, 저 갈게요! 아들 잘있어! 하면서 인사만 하고 가게 됐다.


그러자 아이가 소파에 누워서 안뇽 엄마~ 한다.

KakaoTalk_20230512_164050277.jpg 할아버지의 강한 유전자는 아들에게로, 그리고 손자에게로 강하게 내리꽂혔다. 엄청 닮은 두 사람이 붙어있으면 어머니와 나의 유전자의 존재감은 대체 뭘까? 싶을 때가 있다.


아침에 편안한 모습을 오랜만에 보는 터라 흐뭇하게 웃음짓고 가려는데, 아버님이


이녀석~! 인사는 여기까지 나와서 하는거야.

하고는 며느리 배웅을 하러 현관까지 나와주신다. 누워있던 아이가 웅? 하더니 애앵할아버지의 말에 이내 수긍하듯 털레털레 신발장까지 나와서


엄마 잘가~


한다.



조부모육아가 과연 아이의 버릇을 망가뜨릴까? 라는 의문이 들었다.



물론 조부모 육아시에 포기해야 할 것도 많다. 바로 간식... 안돼 하는 엄마보다 괜찮아, 괜찮아 하는 할머니에게 아이는 꼭 애교를 부린다. 아이스크림이요, 초콜릿이요!

예전에 엄마가 올라와서 아이를 2일 정도 보고 내려갔을 적에 남편이 귀가했는데도 보는둥마는둥하는 아이에게 기함해, 다녀오셨냐고 인사를 꼭 하라고 가르쳐주고 갔다. 그 뒤로 아이는 아직도 아빠가 문 열고 들어오는 소리가 들리면 다녀오셨어요 하고 인사를 잘 한다. 우리는 그저 아이가 본체만체 할 때도 에이, 인사해야지~ 라며 너털웃음 짓고 우리가 먼저 다가갔는데. 엄마는 단호하게 그건 아니지! 했다. 씽씽할머니(외할머니의 애칭이다)의 단호한 표현에도 아이는 전혀 상처받지 않고, 오히려 그렇구나! 하고 무슨 말인지 이해했다. 지금 나와 남편이 나름대로 하고 있는 민주적(이라고 쓰고 허용적이라고 읽어야 할)인 육아방침에 경종을 울린 것 같았다.


출근하는 길 내내 아이의 늦장부리던 모습과 편안한 웃음이 떠올랐다. 내가 아는 맞벌이 부부 중 하나는 아내쪽에서 본가를 정리하고 합가를 해 아이를 4살까지 가정보육했다. 그 때 나는 답답하겠다는 생각을 했었는데, 지금은 그 결정을 내린 게 조금 이해가 됐다. 만약 내가 다른 아이들을 보며 내 아이가 따라가야 하는 인지 수준, 감성 수준에 대해서 고민할 때, 어른들은 자연히 사회성을 챙겨줄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맞벌이 부부의 외동아들에게서 흔히들 부족할 수 있는 사회성. 그것은 조부모 육아로 채워질 수 있겠구나.




오전에 일을 하고 있으면서 어머니께 전화 한 번 드려볼까 하는 생각을 안한 건 아니었지만, 오히려 감시당한다고 생각하실까봐 일부러 참았다. 그러다 어머니께 전화가 먼저 걸려왔다.



"아니, 얘가 뭘 찾는데, 내가 어딨는지 아나~ 무슨 뜯는 테이프라는데 그게 뭐니?"

"뜯는 테이프요..? 어머니 오니 좀 바꿔주세요. 오니야 뭐 하게 테이프 필요해?"

"만들기 하려구요!"

"아 알겠다. 할머니 다시 바꿔주세요~"

"응~ 얘가 뭘 찾는거야?"

"아 어머니, 그 테이프... 손으로 뜯는거... 제가 서재에 놔뒀거든요? 그... 날카로운 걸로 테이프 알아서 뚝뚝 끊는...!"

"아 여깄네, 스카치 테이프 말하는거니? 오니야. 여깄다."



스카치 테이프가 기억이 안나서 스무고개 식으로 설명한 엄마가 과연 아이의 인지수준에 대해서 고민한다고 말해도 되는 것일까...? 여러모로 할머니가 더 나은 것 같은데... 아이가 어려서 엄마껌딱지였다는 것 하나로 육아에서 경력자의 경험을 무시했던 게 좀 부끄러워진다.




집에 도착하니, 저녁먹자고 기다리고 계셨다. 아침에 뭐가 어디있고, 어디있고 알려드리질 못했으니 쌀이 어딨는지도 못찾아서 밥도 못해뒀다며 어머니가 미안하단 듯이 웃으셨다. 6인용 밥솥은 아침/점심/저녁까지 연이어 책임지기엔 너무 작았다. 두 끼 연속 느끼한 배달음식은 죄송해서, 밥을 안치고 반찬을 꺼내서 후닥닥 차리는데, 아이가 계속 부엌으로 온다. 엄마한테 오늘 하루 뭔가를 말하고 싶은가 보다.


어머니가 아이를 달래서 가시려다가 이내 당신도 하루종일 말할 상대가 필요하셨으니 오셔서 내게 말을 거신다. 어머니와 아이의 이야기를 각각 들으면서 가뜩이나 못하는 요리를 하며 저녁을 차리려니 난이도가 상당히 높다.


요리를 하는 둥 마는 둥 하면서 아이고, 이를 어쩌나 난감해져서 건너편을 보니 아버님은 소파에서 주무시고 계셨다.


저녁을 먹고 나서, 아이를 씻기는 것까지 보고 가시겠냐니, 어머니가 손사레를 치며 먼저 돌아가시겠다고 한다. 당신도 내일 출근하셔야 하고, 아버님도 많이 피곤하시단다. 남편만 돌아오면 남편 차를 타고 돌아가시겠다고 한다.

아버님이 그렇게 시계를 많이 보시는 건 처음 봤다. 하루 종일 에너제틱한 손주에게 시달리셨으니 확실히 지쳐보이시긴 했다.


마침내 남편이 야근 후 돌아왔고,


가자! 엄마, 아빠. 데려다줄게!


하는 부름에 용수철처럼 일어나셨다.


고생하셨어요, 조심히 가셔요



인사 드리고 잠시 적막에 쌓인 집을 한번 돌아보며 감사하단 생각을 덧붙인 것도 잠시


설거지통에 쌓인 설거지는 나를 부르고,

할머니 할아버지를 떠나보낸 손주도 나를 부르고,

하루 종일 이리저리 흩어진 장난감들도 나를 불렀다.


오늘 하루, 우리 모두는 굉장히 잘 잠들 예정이라는 확실한 예측이 뇌리를 스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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