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소중하고 작은 어머니들에게
어린이날은 최대한 동선이 짧아야 한다. 다행히 아이가 집돌이 성향이 있어 안심하고 야외나들이보다는 집에서 노는 계획을 세웠다. 양가에서 유일한 어린이라 듬뿍 사랑을 받는 아이의 오늘(재작년에 쓰인 글이라는 걸 이해해주길 바란다.) 일정은 친가 식구들을 만나는 것이다.
친가, 외가라니.
약간 차별적인 명칭이라 개인적으로는 섭섭하다고 생각되서, 나는 아이의 친가 쪽을 소방서 근처에 있어 애앵할머니, 애앵할아버지라고 부르고, 외가 쪽은 기차를 타고 와야 만날 수 있으므로 씽씽할머니라고 부르기로 했다. 시어머니께 슬쩍 지나가는 듯이 요즘엔 외가라고 안한대요~ 하면서 명명하는 이유를 말씀드렸더니 당신께서도 자신을 애앵할머니라고 부른다. 그래도 지나가는 모든 말들을 기억하는 아이는 일전에 어머니가 외할머니라고 씽씽할머니를 부른 기억이 나는지, 씽씽할머니를 가끔씩 왜할머니(외라는 개념보다는 왜의 개념으로 이해한 것 같다.)라고 부르곤 한다. 때로는 차를 타고 가다 라디오에서 원할머니 보쌈 노래가 나오면 얼추 왜할머니의 발음과 비슷하게 들리는지, 왜할머니 보쌈~ 하며 킥킥대며 따라부른다.
그러나 문제는 내가 아이에게 친가와 외가를 지칭할 때 친가, 외가 입에 붙은 말들을 떼지 못하는 것이다. 아이는 아직 어리니 애앵할머니, 씽씽할머니 라고 거침없이 부를 수 있지만, 나는 애앵과 씽씽을 말하기엔 동심을 많이 잃고 순수를 더 많이 잃었다. 그래서 자연스럽게 친할머니, 외할머니 했다가 아차 싶어 다시 부르는데, 그 말을 지나칠 수 없는 아이는 그게 무슨 뜻이냐며 묻는다.
명명은 참으로 어려운 것이다. 구남친 현남편의 엄마인 시어머니를 맨처음 만날때 어머니~하는 애교스러운 호칭이 참 어려워서 일부러 부를 수 있는 기회는 다 눙치며 불렀었다. 친구 어머니한테는 어머니~어머니~하고 살갑게 굴면서 막상 남자친구 어머니한테는 어려워서 어쩔 줄 몰라했다. 더 잘 보이고 싶은 사람에게는 왜 자꾸 더 어색하게 구는지 모를 일이지만, 그 때는 어머니께 말 붙이는 것도 세번을 생각하고 네번을 다물었다.
지나고나니 어머니는 잔소리는 좀 많으시지만 은근히 귀여운 구석도 많고, 무엇보다 나랑 취향이 비슷했다. 그래서 어머니는 아버님을 만났고, 나는 남편을 만났나. 어마어마한 육식파인 아버님과 남편을 같은 자리에 놓고 볼 때면 어머님과 나는 흉보는 것도, 칭찬하는 것도 제법 쿵짝이 잘 맞는 편이다. 입맛도 비슷해 어머님 입맛에 맛있다 싶으면 남편보다 내 입맛에 잘 맞는다. 가끔씩 어머님과 걸을 때 팔짱을 낄까 말까 고민하다가 훅 끼기도 하는데, 그렇다고 해서 입에 발린 것처럼 구는 살가운 며느리는 아닌 것 같고, 그냥 헤헤거리고 덤벙대는 아직도 애같은 며느리다.
그렇다고 엄마한테 살가운 딸도 아니었다. 우리 집에서는 살갑고 애교많은 엄마의 원픽 아들이 존재하기 때문에 나는 엄마와 그렇게까지 돈독한 관계도 아니었고, 전화가 걸려오면 그냥 엄마의 한탄이나 한숨섞인 애환을 들어주는 정도에 그쳤다. 감정적으로 기댈 수 있는 딸이 되느라, 감정적으로 섬세한 딸까지는 못되어드렸는데 마찬가지로 엄마도 내게 그렇게 섬세하진 않았다. 그럼에도 나는 엄마가 항상 애틋하고 안타까웠다. 장남에게 시집와 명절날이면 시댁 뒤치다꺼리를 하느라 친정에 가볼 생각은 하지도 못하고 심지어 친정도 형편이 좋지 않아 갈 만한 곳도 없었다. 고생한 엄마에게 고생했다, 말 한마디 내뱉는 게 인색하던 엄마의 엄마와 오빠는 다소 싸늘했다. 그럼에도 외가는 외가인지 나는 그렇게 외할머니가 좋았다.
엄마와 닮은 얼굴에 엄마와 닮은 손길에, 무엇보다 외할머니는 그 싸늘한 표정임에도 나를 무척이나 사랑하고 아끼는 게 느껴졌다. 엄한 목소리에 조금은 괴팍하다고 회고되는 성정까지, 지금 생각하면 엄마에게는 꽤나 엄한 엄마였을 것이다. 그러나 나는 음식솜씨도 없고 맛있는 것을 내주지도 않는 외할머니가 참 좋았다. 우리집 장손입네 하고 오빠만 챙기지도 않고, 여자라고 상차림과 상치우기를 요구하지도 않았다. 어리다는 이유로 내 말을 무시하지도 않았고, 내가 외할머니 앞에서 무슨 연극을 하거나 글을 써도 온 친척들 앞에 들고나와 킥킥대며 우스갯거리 삼지도 않았다.
잘 웃고 다정했던 엄마는 점점 나이가 들수록 싸늘한 외할머니를 닮아간다. 더 이상 친구와 만나고 있는 내게 오빠 끼니는 어쩌고 밖에 나왔냐고 혼내지도 않고, 오빠는 예민하고 까탈스러운 게 엄마를 닮았으니 네가 잘 돌보고 신경쓰라고 얘기하지도 않는다. 그저 내 남편과 내 아이의 안부를 묻고 싶어하고, 무엇보다 영상통화에서 보이는 내 얼굴의 까칠함에 대해서 언급하고는 항상 몸을 잘 챙기라고 엄포를 놓는다. 내가 어쩌다 공부했다고 자랑할 양이면, 공부를 놓지 말라고 응원한다. 그럴 때면 나는 엄마에게서 외할머니의 얼굴을 본다. 그러면 나는 다시 어린 시절로 돌아가서 자고 있는 외할머니를 깨워 할머니, 나 등 긁어줘. 이러면서 새벽녘에 할머니를 괴롭게 하고 싶다.
나는 장손도 아니었고 유일한 아이도 아닌 채로 살아왔기에, 사회통념상 차별이라 언급될만큼 친과 외의 호칭에서 느껴지는, 불쾌하고 편파적인 감정을 그대로 흡수했다. 나는 우리 어머니에게도, 우리 엄마에게도 친과 외의 구별을 두어 차후에 속상하게 하고 싶지 않다. 그리고 내 아이가 나처럼 외가에서는 안락함을 누리고, 친가에서는 경직됨을 바라지도 않는다. 그저 내 아이는 어머니와 엄마의 사랑받는 첫손주이고, 자랑거리이자 웃음보따리였으면 좋겠다. 그러나 애앵할머니와 씽씽할머니라고 부르기 창피해지는 나이가 오면 어떡하지. 그때는 아메리칸식으로 가야하나. 다소 고민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