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작가 Oct 20. 2023

미워하는 미워하는 미워하는 마음 없이

없을 수가 있나. 그냥 없다 생각하고 바쁘게 사는 거지.

아주 예전은 아니지만, 한 때 미운 사람이 있었다. 그 사람이 이제는 밉지 않아졌다. 별달리 한 것은 없다. 만나서 한 행동 때문에 미울때는 한없이 밉더니, 아무것도 하지 않고 만나지도 않은 탓일까. 적절한 거리두기는 미움마저 퇴색시킨다.


카카오톡의 다정한 기능 중 하나는 사람의 생일을 표기해주는 것이다. 그리고 손쉽게 선물할 수 있게 해주고. 싫지 않아진 그 사람의 생일이라고 알림이 뜨기에 요새 우울함의 시기를 지나고 있는 걸 알고 있어서 생일축하 겸 응원의 선물 하나 보냈다. 받는 사람이 어떤 마음이든 상관없다. 그냥 내가 주고 싶어서 주었으니 예전처럼 아무 답변이 오지 않아도 괜찮다.      


미움이 작아진다는 건 그 사람의 존재가 내 안에서 작아진다는 뜻이기도 하구나. 무관심이 애정의 반댓말이라는 게 무슨 뜻인지 알 것 같다. 미움은 어떻게 보면 애정의 반댓말이라는 것도. 항상 내 미움은 내 감정이 상대방의 감정보다 더 컸을 때, 내 배려가 상대방의 배려보다 더 컸을 때. 어쨌거나 이모저모 내가 기대하는 바에 미치지 못했을 때 출현하고는 했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지극정성으로 싫어할 수 있는 능력은 없고 노력은 하기가 싫어서 그냥 에이, 안 보고 말지. 해버리다가, 정말 안 보다보면 사랑도, 미움도 점진적으로 퇴색된다. 그러다 다른 일을 하면서 아예 잊혀진다. 그래, 그런 적도 있었지. 그런 일도 있었지.

흘러가는 시간 속에서 


현재는 갈수록 걍팍함에도, 과거는 계속해서 미화되기에 미래는 나날이 기대된다. 


그래서 겨우 살아가는 걸지도 모른다.

아무것도 변하지 않고, 감정이 생긴 그대로 고인 채라면 사람들은 미쳐버릴 지도 모른다.




생각해보면 다행히도 누군가를 싫어하면서 그 감정을 꾸준히 가져간 적이 없다. 그게 내가 끈기가 없는 탓이거나 단호하지 못한 탓이라고 생각했는데, 뜻밖에 산만함 때문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더 이상 특정 사람에게 집중할 수 있는 에너지가 남아있지 않다는 것. 

아니면 그 뒤로 생겨난 다른 독보적인 빌런 덕분일지도 모른다. 그 빌런에 비하면, 이 사람은 나에게 서투른 사람에 대한 나의 오해이지 않았나? 정도.


표현하지 못한 감정은 계속 내게 남는다. 어쨌건 생겨난 감정은 소화시키는 데 시간이 걸렸다. 그래도 지금은 다행히 겨우 소화되고 흡수됐다.


나는 단호하지 못한 나 스스로를 참 쉬운 사람이라고 생각했는데, 산만한 나라면 얘기가 달라진다. 

그건 노력해도 고칠 수가 없지. 

나를 이루는 특색 중 가장 확고한 성향이니까.      

기왕 사는 거 귀엽고 산만하게 살자...!

조금 관점을 바꾸려고 애써보니 단호하지 못한 내가 아니라 남에게 쓸 시간이 없는 내가 되서 좀 기분이 우쭐해진다. 남에게 관심없는 나라는 타이틀을 스스로에게 처음 붙여봐서 신기하고 우월한 마음이 들었다. 그러거나 말거나 진짜 남에게 관심없는 사람들은 내게 관심이 없을 테지만.      


위악적인 척하는 싫은 사람들을 보면 왜 저렇게까지 할까 했었는데, 남들에게 쿨한, 남들과 상관없는, 나 자신만 신경쓰는 나라는 타이틀에 도취되는 거였겠구나 싶다. 싫었던 사람들의 마음을 조금이나마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 


어, 그런데 이러면 남에게 관심없는 나라는 타이틀이...     


잠시 약 3분간 위악적인 나에게 도취되었다가 깼다. 자연스럽게 싫어했던 사람에게 고맙다는 카톡이 온 채팅창을 본다. 미소지어진다. 


그래, 일장춘몽이었다.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잖아. 어떻게 남에게 관심을 안 가질 수가 있겠어. 



                    

매거진의 이전글 그냥 해, 제발!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