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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작가 Dec 15. 2023

문을 나온 너에게 (너를 기다리는 동안_황지우)

열었는지, 닫았는지와는 상관없이 오롯이 문을 나온 너에게 바치는 찬사

네가 오기로 한 그 자리에
내가 미리 가 너를 기다리는 동안
다가오는 모든 발자국은
내 가슴에 쿵쿵거린다
바스락거리는 나뭇잎 하나도 다 내게 온다
기다려 본 적이 있는 사람은 안다
세상에서 기다리는 일처럼 가슴 애리는 일 있을까
네가 오기로 한 그 자리, 내가 미리 와 있는 이곳에서
문을 열고 들어오는 모든 사람이
너였다가
너였다가, 너일 것이었다가
다시 문이 닫힌다
사랑하는 이여
오지 않는 너를 기다리며
마침내 나는 너에게 간다
아주 먼 데서 나는 너에게 가고
아주 오랜 세월을 다하여 너는 지금 오고 있다
아주 먼 데서 지금도 천천히 오고 있는 너를
너를 기다리는 동안 나도 가고 있다
남들이 열고 들어오는 문을 통해
내 가슴에 쿵쿵거리는 모든 발자국 따라
너를 기다리는 동안 나는 너에게 가고 있다.



-황지우 <너를 기다리는 동안>


문 닫고 나왔어, 열고 나왔어?     



요즘 들어 아이에게 자주 물어보는 질문이다. 첫째 엄마들이 둘째를 낳고 나서, 첫째에게 엄마 (자궁) 문 열고 나왔는지, 닫고 나왔는지 물어보는 용으로 자주 쓰이는데, 희한하게도 첫째들이 전부 “열고 나왔다”고 답한다는 것이다. 과학으로 가득 찬 세상에서 아직 논리로 설명하기 힘든 일이 있다는 것은 몹시 신비한 일이다.     


아이는 닫고 나왔다고도, 열고 나왔다고도 얘기하지 않았다. 다만 무척이나 갑갑했고, 어두워서, 엄마를 만났을 때 기뻤다고 얘기했다.      



엄마를 만났을 때 기뻤구나.

그 말이 너무 좋아서, 아이에게 계속해서 묻는다. 문 열고 나왔어, 닫고 나왔어?

엄마를 만난 게 기뻤니? 너도 기뻤니?     


아이의 10개월만큼이나 길었던 나의 10개월을 생각하자, 나는 너를 만나기까지 얼마나 담담했고, 기뻤고, 평안했고, 불편했는지를 생생하게 얘기해주지 못해 안타깝다고 생각했다. 너를 엄마가 언제부터 사랑했는지 알려줄 수 없어서 안타깝다고.

왜냐면 나도 모르기 때문이다.     



처음 아이의 존재를 알았을 때, 이미 나보다 내 주변 사람들이 더 많은 변화를 감지하고 있었다. 남편은 신혼에 놀고 싶은데 항상 아내가 자고 있다고 잠이 많은 아내라며 놀려댔고, 회사 동료들은 자꾸만 살이 찌시는 것 같다며 조심스럽게 말을 건넸다. 회사 미화여사님은 피부가 까칠한데 혹시 애 들어선 거 아니냐고 물었다.     



설마설마하고 맞이한 두 줄은 생각보다 얼떨떨했다. 이벤트를 그리 좋아함에도 정말 깜짝 놀랄만한 삶의 이벤트는 어떠한 반응도 하지 못하고 어버버하고 애꿎은 남편을 불러대며 넘어갔다.     



그리고 나서 병원에 갔고, 들려오는 심장소리에 그저 어머 뛰네, 했다. 첫 번째 출산이라는 말에 의사선생님도 성별의 압박이 없어 다행이라며 웃었고, 나와서 엄마아빠와 시부모님께 전화드렸다. 아니 내가 벌써 할머니가 된다고!?!?하면서 엄마는 타박 반, 축하 반의 인사를 건넸다. 엄마에게는 친구보다 늦은 나이에 엄마가 됐으니, 할머니라도 대강 비슷한 나이에 되면 좋지 않겠냐고 눙쳤다. 어머니도 대충 그런 반응이셨겠지만, 어쨌든 살면서 축하를 그렇게 많이 받은 건 처음이었을 거다.     



우연히 찾아온 아이를 언제부터 본격적으로 기다리고, 사랑했을까. 모르겠다. 

언젠가 잠 못 드는 외로운 밤에 발로 묵직하게 엄마, 나 여기 있어. 하고 속삭였을 때일까.

아니면 치통으로 오래 앓던 날 조금만 기다려줘, 하고 배를 두드렸을 때 네가 손을 마주한 것 같았던 때일까.

지독한 진통 끝에 12시간을 버티고 기어이 끝나버린 끔찍한 통증만큼이나 크게 울던 너를 품에 안았을 때일까.

마치 세상에 태어난 목적이 오로지 나 밖에 없는 것처럼 조그만 손으로 가슴팍을 헤쳐오며 엄마의 젖을 찾을 때였을까.

동그란 두 눈이 나를 똑바로 마주하면 배시시 웃음을 지었을 때일까. 맘마, 맘마, 하다가 엄마라고 처음 외쳤을 때일까.



그 모든 순간에 도달하기까지 비록 매 순간이 찬란하고 영광스럽지는 못했지만,

돌이켜보면 모든 순간이 다 찬연하다.      



아이가 문을 닫고 나왔는지, 열고 나왔는지는 사실 내게 중요하지 않다.

내게 중요한 것은 네가 문을 열기까지 얼마나 엄마를 기다렸을지. 네가 문을 열기까지 행여나 무섭지는 않았는지다.     


사실 겁많던 엄마는 조그맣던 네가 있어줘서 고요한 아침길, 무서운 밤길을 혼자 걸어도 무섭지 않았다고.     

항상 외롭던 엄마는 네가 함께 있어줘서 잔잔히도 그렇게도 외롭던, 동이 터오던 새벽, 혹은 이미 동이 트고 난 아침, 뭘 먹어도 더부룩하고 퉁퉁 부어있던 저녁 그 어스름, 잠도 오지 않고 눈도 감기지 않던 별들로 가득했던 밤들. 그 시간들이 너무도 버겁지 않았다고.

누군지도 모를 동생을 위해 네가 문을 쾅 닫고 나왔는지, 활짝 열고 나왔는지보다, 엄마에게 오는 그 걸음걸음이 너에게 너무 고되지 않았기를.


한 번 더 그 시간들을 겪어야 한다고 해도

그게 너라면 나는 그 시간들을 위해, 기꺼이 보다 더 기다릴 것이라는 것을 말해주고 싶다.      


부디 엄마의 무수히 많은 사람들이 해주는 무수히 많은 덕담과 축하와 인사로 인해

엄마에게로 오는 그 무수했던 발걸음이 좀 더 무섭지 않았길.

      


아이에게 사랑한다는 말을 하루에 한 번 씩은 꼭 하려고 애쓰지만, 바쁜 하루 동안 잊어버릴 때가 있다.

“엄마가 오늘 얘기했던가? 사랑한다고?”

“응!”하고 답하는 아이의 표정은 아주 당당하다.

하지만 때로는 “아니!” 하고 뾰루뚱한 채로 얘기하는 아이의 입에 입을 꼭 맞추고 몰래 말한다.     

“사실 엄마가 정말 많이 사랑해.”

아이는 응! 한다.

응! 하는 그 목소리는 가슴 속에 쿵하고 박힌다.

쿵. 쿵. 쿵.

사랑을 알리는 심장 박동처럼, 언제나 너였다가, 너였다가, 너일 것이므로.


#읊기위한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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