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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난달 Apr 25. 2024

17화 단비에 초록의 잔치 열린 내변산_변산반도국립공원

남여치-월명암-직소폭포-자백이 고개-관음봉삼거리-내소사

남부에서부터 이미 비가 시작되었다는 소식을 듣고 출발한 버스에서는 회원들의 의견이 분분하였다.

대체로 변산반도국립공원은 격포해변에서 고사포해변까지  채석강, 적벽강을 낀 바닷가의 둘레길이 좋으니 안전하게 걷자는 의견과 산이 그리 높지 않으니 비가 오더라도 코스를 줄여서 함께 산행을 하자는 의견이다.

결론은 코스를 줄여서  C코스를 하나 더 만들어 대 부분의 회원들이 C코스를 택하고 12명 정도의 회원이 B코스,  몇몇은 A코스를 강행하기로 했다.

산행시작 시간이 11시경이라 5시간 내에 어느 코스를 택하던 4시까지만 안전하게 도착하면 무리 없이 상경을 할 수 있다는 계산이다.


나는 B코스다. (남여치-월명암-직소폭포-자백이 고개-관음봉삼거리-내소사)

다행히 산행이 시작할 무렵에는 우의를 벗어도 될 만큼 비가 많이 오지 않았고, 2시부터 3시간까지 두 시간 정도는 비가 소강상태라는 예보가 있다.

언젠가 한 번쯤 언급한 적이 있듯이 비의 양이 많지 않다면 나는 은근히 우중산행을 즐기는 편이다.

우의와 커버등 장비를 챙기는 것이 번거로워서 시작이 어렵지만 시작만 하면 우중산행의 묘미가 제법 쏠쏠하다. 일단 사람들이 많이 없어서 생각과 만나는 시간이 길어지고, 위로하듯 온 세상을 토닥토닥 부드럽게 때려주는 빗소리에 일상에서 해소되지 못한 스트레스가 해소가 된다. 특유의 비릿한 내음과 형체를 적당히 지워주는 안개는 로맨틱한 분위기를 느끼게 해주는 덤이다.


곡우(穀雨)가 좀 지나긴 했지만 이때에 내리는 비는 만물을 살찌우는 단비이다.

단비가 변산을 적시자 연한 아기궁둥이살 같이 부드럽고 촉촉한 초록의 새싹들이 나올 때를 놓치지 않으려는 듯 가지마다 앞다투며 부드럽게 돋아나고 있다. 땅에도 이름 모를 풀과 야생화들이 비의 양분을 빨아 마시며 쑥쑥 자라고 있다.


깊은 숲에서부터 따라온 진한 더덕향기가 우리와 한참을 동행하다 비가 굵어지면서 숲으로 돌아갈 즈음에  오른쪽 머리 위로  드러난 거대한 지붕 하나!

월명암이다. 서해의 낙조를 볼 수 있는 풍광이 좋기로 유명한 곳인데 비가 오니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다

내리는 비에 서둘러 산사로 들어서니 커다란 삽살개 한 마리가 비 떨어지는 처마밑에 앉아서 산사의 고요함 깨뜨린 이방인들을 점잖게 맞이해 준다. 비를 피해서 처마 밑에서 잠시 쉬려는데 산사의 보살님이 따뜻한 차 한주전자를 내어오면서 쉬어가란다. 방도 내어 줄 테니 공양도 좀 하고 가란다.

월명암에서 수행하는 자의 달빛처럼 밝고 따스한 배려이다.


음식 냄새로 산사의 청량함을 오염시키지 않을까 하는 염려보다는 비 걱정 없이 편안히 맛난 점심을 먹을 욕심에 사양치 못하고 산사의 오찬을 즐긴다.

곡차도 슬쩍!

분위기가 반찬이 되니 무엇을 먹든 꿀맛이 따로 없다.

다시 산행 준비를 하며 보살님들께 고맙다는 인사를 전하려 했는데 어디로 가셨는지 보이지 않는다.

감사의 마음으로 합장하고 다시 산행을 재촉한다.


직소폭포까지는 제법 거리가 많이 남았다.  부지런히 발을 옮겼다.

길목마다 아름다운 소나무와 잘 어울리는 연갈색 바위들이 조화를 이루고, 멀리 그리움이 겹겹이 쌓여 만들어진 산 그림자는 변산반도가 괜히 국립공원으로 지정된 것이 아니다는 생각이 들게 하는데 충분했다.


2-3km 정도 걷다 보니 멀리 보이던 호수가 크고 작은 소가 되어 눈앞에 담겨 있다.

분옥담이다.

분옥이라는 이름은 꾸밈없고 수수한 시골아가씨의 이름이 연상되는데,  내변산의 다채로운 초록들이 물에 담겨  값을 매길 수 없는 영롱한 옥구슬처럼 빛나고 있다.

비 오는 날이라서 우리가 독점하고 있는 아름다운 이 시간의 추억 역시 값을 매기기 힘든 호사가 아닐까?


시간이 훌쩍 지났다. 더 이상 시간을 지체할 수 없다.

 내변산 신령님의 술잔을 채우는 막걸리주전차처럼  곧게 떨어지는 직소폭포의 아름다운 물줄기는 비망록에 오를 배경으로 남기고 서둘러 자백이 고개를 거쳐 관음봉 쪽으로  발걸음을 재촉하면서도 멀리 봄이 파도처럼 밀려오는 변산반도의 풍경을 놓칠 수는 없었다.


변산의 산과 바다에 여전히 단비가 내린다. 관음봉삼거리를 올라서서 변산반도의 연둣빛 초록의 향연을 보고 있으니 젊은 시절의 내가 떠올랐다.

거칠고 말랐던 나의 젊은 시절 단비처럼 만난 여인이 지금의 아내 희우(喜雨)이다.

딸아이가 어릴 적 가족취미로 서예를 했었다. 어느 정도 지나니 호(號)가 필요했고, 그때 나는

가뭄 끝에 내리는 단비 같은 사람이라 생각해 왔던 터이라 아내의 호(號)를 "희우(喜雨)"라고 지어줬다. (맘에 드는지 닉네임을 "단비"로 사용하고 있다.)


오늘 이곳 변산에서 사랑하는 나의 단비와 우리의 삶에 등장해 주신 소중한 이들과 함께 또 하나의 소중한 추억을 만들며 행복한 동행을 했다는 벅찬 감동을 느끼며 일행들이 기다리는 버스주차장으로 합류한다.

밥 먹으러 가자~

젓갈정식이지 아마???

일단 사람들이 많이 없어서 생각과 만나는 시간이 길어지고, 위로하듯 온 세상을 토닥토닥 부드럽게 때려주는 빗소리에 일상에서 해소되지 못한 스트레스가 해소가 된다.


땅에도 이름 모를 풀과 야생화들이 비의 양분을 빨아 마시며 쑥쑥 자라고 있다.
깊은 숲에서 빠져나온 진한 더덕향기가 우리와 한참을 동행하다 비가 굵어지면서 숲으로 돌아갈 즈음에  오른쪽 머리 위로  드러난 거대한 지붕 하나!  월명암이다.
산사로 들어서니 커다란 삽살개 한 마리가 비 떨어지는 처마밑에 앉아서 산사의 고요함 깨뜨린 이방인들을 점잖게 맞이해 준다
분옥이라는 이름은 꾸밈없고 수수한 시골아가씨의 이름이 연상되는데,  내변산의 다채로운 초록들이 물에 담겨  값을 매길 수 없는 영롱한 옥구슬처럼 빛나고 있다.
내변산 신령님의 술잔을 채우려  곧게 떨어지는 직소폭포의 아름다운 물줄기는 비망록에 오를 배경으로 남기고
변산의 산과 바다에 여전히 단비가 내린다. 관음봉삼거리를 올라서서 변산반도의 연둣빛 초록의 향연을 보고 있으니 젊은 시절의 내가 떠올랐다.  거칠고 말랐던 나의 젊은 시절...
가뭄 끝에 내리는 단비 같은 사람이라 생각해 왔던 터이라 아내의 호(號)를 "희우(喜雨)"라고 지어줬다.
오늘 이곳 변산에서 사랑하는 나의 단비와 우리의 삶에 등장해 주신 소중한 이들과 함께 또 하나의 소중한 추억을 만들며 행복한 동행을 했다는 벅찬 감동을 느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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