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가을이라 쓰는 일기

이보다 더 좋을까

by 나철여

주말이라 가고

주 중에도 갈 기회가 생기면 간다. 당일치기 가을여행.


작년까지 소위, 황혼육아를 도맡았다.

막내 손자가 다섯 살이다. 이젠 유치원 등ㆍ하원만 시키면 된다. 아침 등원과 오후 하원사이 반나절은 자유시간이다. 도서관 갈 시간여유도 생겼다.


작년까지 소위, 남편의 보호자로 살았다.

걸핏하면 응급실行이었고 두어 달씩 입원하다가 이젠 조금 불편한 항암 후유증만 남아 같이 가을 소풍도 갈 수 있다.


이 얼마나 좋은가.



환경을 지배할 수 있는 나이가 되었다.

사시사철 꽃을 키울 수도 볼 수도 있지만 철마다 제철 꽃과 단풍에서 인생을 배운다. 모든 게 다 때가 있나니, 그 타이밍을 놓칠 리 없다. 어제도 며느리가 일찍 퇴근한다기에 잽싸게 검색했다.

대구에서 한두 시간의 바운다리? 거리 컴퍼스를 먼저 돌리니 양산이 반짝 들어왔다. 80년도 부산에서 살 땐 자주 다녔던 통도사 외에 몰랐던 물금리라는 지역이었다.

황산공원이다.

맨 먼저 댑싸리가 우릴 반겼다.

남편의 얼굴에 홍조가 띠고 지팡이를 흔들어 댄다. 좀체 사진 찍기를 좋아하지 않는데 언새 댑싸리 한복판에 들어가 한 손은 지팡이 다른 한 손은 머리에 얹고 먼 하늘을 쳐다보는 올드폼 oldform을 잡는다.

한컷 또 한컷...

지방자치제 이후로 너무나도 많이 달라진 모습 중 하나다.

허허벌판을 조성해 도심 속에서도 얼마든지 마음만 먹으면 힐링할 수 있다. 가을의 여왕은 뭐니 뭐니 해도 국화다.

국화로 성도 짓고, 펭귄도 회전목마도 자동차도 꾸며놓았다.

천지가 국화향기로 진동하고 모처럼 눈호강이다. 이보다 더 좋을 순 없다.

올해처럼 가을단풍이 기다려지는 때가 있었나 싶을 만큼 올 가을 단풍은 걸음이 느리다. 이러다 낙엽으로 떨어져 버리는 건 아닐 테지 하는 노파심으로 운전 중에도 눈여겨 살핀다.

'앗, 단풍이 시작되네!'

윤복진 시인의 시와 나운영이 작곡한 가곡으로,

가을의 정취와 계절의 변화를 섬세하게 노래한

'아 가을인가' 콧노래가 절로 나온다.


이제 글 마무리 하고 지금 손주등원 시키러 간다.

아침기온 체크는 기본, 꽤 쌀쌀하다.

12층 아파트에 창문을 열고 내려다보니 어제보다 더 물든 오늘 단풍이 곱기도 하네.

오늘도 참 좋다.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