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애플펀치 May 17. 2023

보이지 않는 허들이 더 무섭다

소설 <허들>과 멈추지 않는 허들

우리가 마주치는 수많은 허들


열심히 사는 사람들이 많이 보인다. 갓생 살기, 미라클 모닝, 각종 동기부여의 글들 모두 다 각자의 골인선을 향해 달리기를 하고 있다. 가는 길에는 허들도 있고 골인선까지 못 갈 것 같은 마음도 존재할 것이다.

허들을 넘고 목표을 이루면
그다음 허들이 기다리고 있다.

허들을 넘고 자신의 목표를 이루면 그다음 허들이 기다리고 있다. 예를 들어 죽을 둥 살 둥 대학을 졸업하고 취업의 길에 들어섰더니 이제 자리도 잡았으니 좋은 배우자를 만나 결혼해야지라는 것 말이다. 물론 삶의 안정을 추구하는 방식이 평범한 직장과 결혼이라면 훌륭한 허들이 될 수 있다.



타인이 세워 놓은 허들에 넘어지지 말자


내 허들은 내가 정한다. 그 허들에 넘어질 권리도 애초에 넘지 않을 권리도 나에게 있다. 타인이 세워 놓은 허들이 보편적이고 다수가 따르는 것이라도 신경 쓰지 말자.


타인의 허들은 내가 넘고 나서 보상이 기다릴지 또 다른 고통이 기다릴지 알 수가 없기 때문이다. 심지어 허들을 넘다가 넘어지면 쓰러진 허들은 다시 세우면 그만인데 넘어지면서 남긴 내 상처는 오래간다.


넘어진 허들은 다시 세우면 그만이지만
 내 상처는 오래간다


한때는 나도 금융권 회사에서 일하기를 꿈꾼 적이 있다. 부모님은 사기업은 안정적이지 않다며 반대를 하셨고 면접 날 아침까지도 그런데를 가서 뭐 하냐고 잔소리를 하셨다. 결국 나는 그날 아침 한 숟갈도 안 뜨고 집을 뛰쳐나갔고 사기업의 꿈을 접고 부와 명예가 기다리고 있을지도 모를 고시공부의 길로 접어들게 되었다.


그렇게 고시촌 바닥에서 3년을 오르내린 것 같다. 첫 해는 입문단계라 괜찮다며 위로했고 다음 해는 노력이 부족하다고 느껴 앞만 보고 공부시간과 문제의 양으로 덤볐다. 하지만 공부를 하면 할수록 앞은 보이지 않았고 논술형, 서술형을 요구하는 시험문제는 새로운 유형 앞에 번번이 무릎을 꿇게 만들었다.


3번의 창의적인 방법으로 고배를 마셔보고 뒤늦게 깨달았다. 세상은 노력만으로는 안 되는 게 존재한다는 것이고 뒤로 물러나는 것도 엄청난 용기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고시생활은 마치 늪과 같아서 빨리 탈출하지 못하면 발이 더욱 깊게 박혀버린다. 문제는 정신을 차리고 나오려고 할 때는 경험을 쌓아서 탈출하는 것이 아니라 내 옷을 하나라도 더 벗어던져야 나올 수 있다는 것이다.


그렇게 빠져나오려고 부모님께 공부를 그만두었다는 말도 하지 않고 조용히 원서를 쓰기 시작했다. 결국 똑같은 말이지만 나는 이 회사에 적합한 인재입니다라는 말을 은유법의 달인처럼 열심히 써 내려갔다. 고시공부를 하던 가락이 먹는지 운 좋게 필기시험들을 합격하고 몇 군데 면접을 보러 가게 되었다.


그런데 면접에 가니 나를 보여줄 수 있는 게 없었다. 저는 노력파입니다. 뭐든 열심히 합니다. 대감집 노비를 뽑는 것도 아닌데 노력과 성실함을 보여주고 있었다. 직무와 상관없는 나의 자기소개들은 그래서 뭘 잘하는데 라는 질문을 불러일으켰고 전부 고배를 마셨다.


그때 깨달았다. 경험을 쌓자. 래 하고 싶었던 금융권을 경험해 보기로 했다. 하지만 그때 당시 내 나이는 이미 사기업에서 안쓰러운 눈초리를 받을 때라 금융공기업 위주로 인턴을 준비했다. 내가 지원한 금융공기업도 이미 신입직원들이 나보다 몇 살 어렸지만 팀장님은 나를 뽑으셨다.

"ㅇㅇ씨가 다른 회사에 합격하면 오래 안 있고 나갈 것 같았지만 지금 우리 부서에서 가장 잘 융화될 거 같아서 뽑았어요."


팀장님의 예언대로 나는 낮에는 인턴생활 밤에는 취업준비로 초인적인 스케줄을 소화했고 인턴 3개월 차에 현직장에 취업하여 평범한 직장생활을 하고 있다.


험난하고 다사다난했던 20대를 마치고 허들을 넘어 현직장에서 나는 행복한가? 내가 최종면접에 합격했을 때 안정적인 공기업이라는 부모님의 허들은 넘었기에 어머니는 진심으로 기쁨의 눈물을 흘리셨다. 나도 좋은 게 좋은 거라고 그래 부모님 걱정을 덜었으니 한 고비는 넘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요즘 퇴사 열풍이다. 특히 안정적인 직장으로 꼽히는 공무원과 공기업 쪽에서 균열이 발생하고 있다. 원인은 여러 가지지만 급격한 인플레이션으로 인한 상대적 임금 박탈감도 있을 것이고 경직된 조직문화가 원인일 수도 있다. 수많은 퇴사고민을 하는 사람들이 나만의 허들을 넘다가 넘어졌을 수도 있고 타인의 기대를 넘다가 길을 잃었을 수도 있다.


글을 쓰다 보니 20대의 실패담까지 넘어왔는데 결론은 타인의 허들에 휘둘리지 말자는 것이다. 타인의 허들은 내 길이 아닐뿐더러 길을 잃었을 때 제자리로 돌아오는 데 오래 걸린다. 하지만 내가 택한 나의 허들은  능력에 맞게 세팅이 되어 있다. 비록 넘어지더라도 금세 원인을 파악하고 다시 일어날 수 있다. 그리고 허들을 넘는 것은 허들 뛰기 선수만 해도 된다. 허들을 피해 그냥 달리는 것도 나만의 길이 될 수 있다.




매거진의 이전글 연극이 끝난 후 해야 하는 것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